2022년 12월 7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화석류 나무
슥 1:7~17
<나무에 대하여>
오늘 설교 제목이 “화석류나무”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나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저는 어린시절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입니다.
☞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순간 우리의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세계관, 인생관을 비롯하여 가치관이 바뀝니다.
이제 “나무”에 대한 심상(心象), 이미지도 바뀌어야 합니다.
첫째, 나무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둘째, 나무로 십자가를 만듭니다.
셋째, 예수님이 나무에 못 박히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사람의 아들, 인자(人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몸소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면 물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어린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눈높이늘 낮춰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을 구하시려고 스스로 피조물인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피조물 나무에 못 박히십니다. 할렐루야!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 합창단>
115년 전인 1907년, 프랑스에서 어린이들로 조직된 합창단이 만들어졌습니다.
가난한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모았습니다. 그들에게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부르게 했습니다.
그 합창단이 바로 “파리 나무십자가 합창단”입니다.
피아노 한 대만 달랑 놓고 대부분 아카펠라로 노래합니다. 딱 100명의 단원으로 구성됩니다.
변성기 전의 어린이들이 소프라노와 알토, 변성기를 지난 어린이들이 테너와 베이스.
남자 아이들 합창단이지만 혼성 4부 합창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 오늘 본문에 마침 한가지 나무이름이 등장합니다.
(8절)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스가랴에는 스가랴 선지자가 보는 환상 8가지 서사가 나옵니다.
그중에 첫 번째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여기서 붉은 말은 어떤 의미인가?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분은 누구인가?
여기에 대해서 설교하기 전에 “화석류나무”에 대해서 먼저 설교합니다.
“나무”가 참 반갑잖아요!
그 중에서도 화석류나무, 사실 우리는 처음 듣는 나무입니다.
자료를 조사해 봤습니다. 영어로는 ‘머틀 나무 Myrtle’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하다스 הדס”입니다. 영어 이름이나 히브리어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금새 까먹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그렇다는 것만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 이름입니다.
화석류 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은매화 나무’로 번역했습니다.
오늘 설교를 위해서 제가 주보에 화석류나무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나무로 한국의 제주도에 자생하는 ‘소귀나무’가 있습니다.
소귀나무는 비슷하지만, 화석류, 은매화나무와는 다릅니다. 은매화는 이스라엘에 자생합니다.
화석류는 꽃, 잎, 줄기에서 좋은 향기가 납니다. 향수의 원료나 차(tea)로 이용됩니다.
고대 시대 유대 처녀들은 남자를 만나러 갈 때, 신발 속에 이 잎을 넣어 갔다고 합니다.
사뿐사뿐 걸을 때마다 잎이 비벼져 향기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였답니다.
<초막을 지을 수 있는 5가지 식물 중 하나>
이스라엘 민족의 3대 명절 중 하나가 초막절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방랑하던 선조의 역사를 되새기는 명절입니다.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을 놔두고 초막을 짓고 거기서 기거합니다.
초막을 지을 때, 아무 나무나 쓰지 않습니다.
느 8: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느헤미야서에서 초막을 지을 때 쓰는 5가지 식물을 나열합니다.
그중의 한 나무가 화석류나무 즉, 은매화나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무입니다.
오늘 나무 이야기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중입니다.
은혜가 되십니까?
성경에 화석류나무는 모두 6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 스가랴서에 3번 나옵니다.
그리고 금방 읽은 느헤미야에서 1번 나왔습니다.
화석류나무는 초막절 초막을 지을 때 쓰는 귀한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2번 남았습니다. 화석류나무가 이사야에서 2번 거론됩니다.
사 41:19~20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나무를 보면 처음 어떤 이미지를 가져야한다고 했지요?
~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피조물이다 이 말씀입니다.
사 55: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고,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 이 말씀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종말론적 변화의 상징>
창 3:18~19a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우리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을 때는 얼굴에 땀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에 먹기좋고 맛있는 과일이 사시사철 주렁주렁 열려있습니다.
배고프면 언제든지 가서 따 먹으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러나 아담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사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인류는 돈을 벌어야 먹고삽니다.
“우리가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뭔가 꼬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부터 꼬였습니까? ~ 아담 하와때부터 꼬였습니다.
그들의 선악과 범죄 때문에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시덤불과 엉겅퀴 때문에 사람들이 땀을 흘지 않게 되는 때가 옵니다.
그때가 종말의 때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입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55장 13절은 바로 그 때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사 55: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가시덤불 대시 잣나무로 채워집니다. 맛있고 기름진 잣 열매를 무시로 먹을 수 있습니다.
엉겅퀴 찔레 대신 화석류나무로 채워집니다. 참으로 향기로운 냄새로 충만합니다.
화석류나무, 은매화나무, 머틀나무, 하다스나무.
참으로 귀한 나무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잣나무와 화석류나무는 천국을 상징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영원한 복락과 기쁨만이 있는 곳, 파라다이스, 낙원을 상징하는 두 나무가 잣나무,
그리고 화석류나무입니다.
<화석류나무는 천국을 지향하는 교회를 상징>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8절)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종말이 오기 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도달하기 전,
누릴 수 있는 낙원, 그곳이 어디입니까? ~ 이거 매우 중요합니다.
…
“교회” 에클레시아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마지막 소망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이 시대 오직 소망은 교회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 교회를 ‘화석류나무’가 상징하고 있습니다.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사람, 그가 누구이겠습니까?
주전 6세기 스가랴가 활동할 때는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사자, 메신저를 사람의 모습으로, 천사의 모습으로 선지자에게 보였습니다.
주전 6세기 당시 스가랴는 하나님이 보낸 사자를 보았습니다.
그 사자는 성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그때 하나님의 사자로 현현하여 스가랴의 환상에서 화석류나무 아래 서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로부터 500년 후 이 땅에 피조물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공생애를 마치고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기관인지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교회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