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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1일(수) 마태복음 5:43~48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 새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오늘은 마태복음 5:43~48 말씀을 중심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48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율법적인의 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는 자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정한 요구와 명령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또 좌절하곤 합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여, 그 말씀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48절의 말씀인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도 자칫 우리가 그렇게 여겨질 수 있는 말씀들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우리말 성경 그대로 읽을 경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완벽한 삶’을 요구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데, 영어성경의 표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 굳어집니다. KJV이나 NIV, RSV 등 모든 영어 성경이 “온전하라”는 말을 “be perfect”(완전하라) 혹은 “must be perfect”(완전해야만 한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perfect’(온전한)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완전무결함’ ‘결점이 없음’ ‘완벽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헬라어 ‘텔레이오스’ 역시 더 이상 어떤 것을 보충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결함이나 오점이 없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우리에게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8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이 말씀이 앞에 나온 교훈의 결론으로 주어졌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올바른 의미를 찾으려고 앞의 구절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의 43절 이하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웃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43절 말씀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 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44절에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특별히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44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면서 45절에 한 비유로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 즉 선인에게만 햇빛과 비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 즉 악인에게도 동일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46~47절에서 너희가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고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우리가 이방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바로 45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착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는 사랑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한 예를 보여주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편벽됨’이 없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흠이 없이 완벽해 지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고, 차별이 없는 온전함을 요구합니다. 그 ‘온전함’은 원수까지라도 포용하는 넓은 사랑입니다. 그 ‘온전함’은 우리를 박해하고 핍박하는 원수까지라도 품을 수 있는 넓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43절에서 예수님께서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 당시 유대인들은 원수는 원수일 뿐 자신들의 이웃은 아니라고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산상수훈에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가르치시면서 심지어는 너희 원수까지도 이웃에 포함시키시면서 이웃의 범위를 지금 그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확대시키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으로 하여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게 했던 어떤 율법사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묻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율법사의 이 질문은 그에게 있어 이웃의 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질문에 대해 길가다 강도만난 자에게 ‘사랑을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눅 10:25-37). 이는 곧 우리의 삶 속에서 “누구는 이웃이고 누구는 원수라고 구별할 것이 아니라, 네가 가서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면 그들의 다 너희의 이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원수까지라도 포함하는 사랑,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온전한 사랑’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친히 우리를 죄에게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하심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시며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온전함의 기준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국 크리스찬 투데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5가지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1. 원수를 용서하라 입니다.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할 최고의 일이자 첫 번째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상처준 사람들을 용서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게 받은 상처와 공격들로부터 자유해질 뿐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2.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우리를 해롭게 하고, 공격하고, 비방하고, 못되게 하고, 우리의 명예를 훼손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받은 상처의 치유와 상대방을 회개로 이끌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그들도 역시 희생자임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뭐가 그들이 희생자야?라고 생각할 수있지만, 그들도 사단마귀에게 속아서 악한 일을 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될 때 이런 관점을 갖고 그들도 죄로부터 자유해지고 그들에게 임하는 사단의 역사가 그치도록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4. 지혜로운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해 비방과 수근거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해롭게 한 사람들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나오려고 할 때, 침묵하고 대신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무너뜨리지 말고 좋은 말을 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변호하시는 변호자이심을 기억해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못된 모든 말들에 대한 심판자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눅6:37). 5. 기회가 되는 대로 그들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벧전 4:8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온유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회개케 하시는지 생각해볼 때 왜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잘 대해주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선행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선하심이 원수였던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롬2:4; 눅6:28; 마5:44). 바라기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원수까지라도 품고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