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게도 놓쳤구나. 스무 방망이를 때렸어야 할 것을, 이 방망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오직 작가를 만나기 어려울 뿐이니라.”
승천종(承天宗)이 염하였다.
“하늘에 가득한 그물을 펴는 이는 모름지기 설봉이어야 하고, 범의 굴에 깊이 들어가는 이는 삼성이라야 된다. 대중들 중에 어떤 이는 헤아리기를 ‘설봉은 그물 안에 있고, 삼성은 그물 밖에 있다’하니, 애달프구나. 옛 사람을 몹시도 모욕했다. 만일 이 두 분 작가가 아니었다면 천하를 설치고 다니지 못했으리라.”
법진일(法眞一)이 염하였다.
“삼성은 집이 부유하니 아기들이 귀엽다 하겠고, 설봉은 아기를 귀여워 하다가 추한 줄을 모른다. 만일 점검해 보건대 놓쳐서는 안 되느니라.”
대위철(大潙喆)이 염하였다.
“삼성은 용문산(龍門山) 만 길 높이에 평소에 나그네 노릇을 했다 하겠고, 설봉은 흡사 맹상군(孟嘗君)이 문을 열어 놓은 것과 같으니, 어찌 높은 손님을 두려워하리요?”
진정문(眞淨文)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장하고, 쾌활하도다. 마치 한 마리의 매와 같으니, 놀라지 말라. 나〔保寧〕는 그러지 않으리라.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하니,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거든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하였는데, 그가 다시 ‘1천 5백 사람의 선지식이면서도 화두도 모르시는군요’하였을 때, 주장자를 들어 삼문 밖으로 때려 내쫓았어야 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하였다.
“몹시 쾌활하구나. 흡사 한 마리의 범과 같으니, 움직이지 말라. 선덕(禪德)들아, 말해 보라. 나 보녕(保寧)의 쾌활이 삼성의 쾌활과 어떤가? 쾌활한 자는 없는가? 나와서 판정해 보라.”
양구(良久)했다가 할을 한 번 하고 말하였다.
“손을 잡고 끌어도 머물지 않는다.”
오조연(五祖演)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대중들 중에서 어떤 이는 ‘설봉과 삼성은 종파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 계합되지 않았다’하고, 혹은 ‘삼성은 작가이므로 설봉이 그 뜻을 통달하지 못했다’하니, 이런 해석이 무슨 관계가 있으랴. 갑자기 어떤 이가 나 오조(五祖)에게 묻기를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한다면, 노승은 그에게 ‘좋은 물음이다’하리라.”
이어 다시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설봉의 것과 같은가, 다른가? 그대들에게 설명할 수 없으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다음과 같이 송했다.
골짜기에 구름 없고 천지가 있으니
복사꽃 비단 같고 버들은 연기 같도다.
신선들은 세월을 따질 줄 모르니
돌 문드러지고 소나무 마르면 1년이라 한다.
운문고(雲門杲)가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두 존숙이 한 사람은 거칠기가 산 같고, 한 사람은 섬세하기가 쌀가루 같다. 이렇게 거칠고 섬세함이 같지 않으나 달아보면 무게는 똑같도다. 내가 오늘 진실로 알리노니, 여러분은 행여라도 거북의 껍질이나 기와 쪽으로 점을 치려 하지 말라.”
백운병(白雲昺)이 염하였다.
“설봉(雪峰)은 하늘의 관문을 움직였고, 삼성은 땅의 주축을 흔들었다. 여러 싸움터를 겪은 이가 아니면 어찌 달리는 화살을 이 사이에 물 줄 알리오. 듣지 못했는가? 남의 소 한 마리를 얻고는 남의 말 한 마리를 갚느니라.”
자항박(慈航朴)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미세할 줄도 알고 드러날 줄도 알며, 부드러울 줄도 알고 강할 줄도 알아, 만 장부의 소망이 되는 것은 설봉이 감당할 것이나, 삼성이 아니었다면 작가 축에 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육왕이 그 때에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라는 것을 보았다면, 불자를 들어 때렸을 것이다. 무슨 까닭이겠는가? 금을 팔려면 금을 사는 사람을 만나야 되기 때문이니라.”
그리고는 불자로 선상을 때렸다.
또 상당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들어 물었다.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라는 물음에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거든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만 리에 한 가닥의 쇠줄이니라.”
다시 물었다.
“‘1천 5백 사람의 선지식이면서도 화두도 모르시는군요’한 말에 대하여 설봉이 대답하기를 ‘늙은 중이 주지 노릇하기가 번거롭구나’하였으니, 범을 잡으려는 함정일까요? 아니면 창과 방패로 맞선 것일까요?”
선사가 대답하였다.
“이 두 끝에 있지 않으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끝내 어디에 떨어집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새매가 신라로 지나갔느니라.”
“나중에 보복이 말하기를 ‘다투면 부족하고, 사양하면 여유가 있다’고 한 뜻은 또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한 시각 늦었느니라.”
다시 물었다.
“설봉은 가히 등 뒤로 손을 넘겨 무쇠 활촉을 뽑고, 몸을 솟구쳐 각궁(角弓)을 당긴다 하겠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절대로 말과 이름을 잘못 붙이지 말라.”
개암붕(介庵朋)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설봉에게는 교룡(蛟龍)을 베고 범을 사로잡는 기개가 있고 삼성에게는 바퀴를 멈추고 물을 막는 작용이 갖추어져 있다. 마치 나란히 달리는 준마〔鵔〕와도 같아서 앞도 뒤도 없다. 비록 그러나 점검해 보건대 아직 한 곳의 잘못이 있다. 설봉이 ‘늙은 중이 주지 노릇하기가 번거롭다’한 뜻은 또 무엇인가? 알고자 하는가? 강 위에 석양이 들어 한 폭의 그림 같을 때, 어부는 삿갓 하나를 쓰고 물가로 돌아오는구나.”
32) 송(宋)의 합안석(合安石)이 여혜경(呂惠卿)에게 속아 강산을 방황하면서 지난날을 후 회하여 곳곳에 복건자라는 글을 썼으니,지난날을 후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說 話
그물〔綱〕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진로망(塵勞網)으로서 덮어씌우는 것〔籠罩〕이요, 또 하나는 방편망(方便網)으로서 건져내는 것〔撈摝〕이다. 또 방편망에 세 가지 뜻이 있다. 양차공(楊次公)이 이르기를 “황금진인(黃金眞人)이 세 종류의 그물을 생사의 바다에 던지는데, 그 하나는 4목망(目網)이니 여래께서 4성제의 법을 설하셔서 성문이란 고기를 건지시고, 둘째는 12목망(目網)이니 여래께서 12인연의 법을 설하셔서 연각이라는 고기를 건지시고, 셋째는 6목망(目網)이니 여래께서 6바라밀을 설하셔서 보살이라는 고기를 건진다”고 하였다.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透綱金鱗〕”는 모든 그물을 다 벗어날 수 있는 놈이다.
“밥〔食〕에는 네 종류가 있는데, 단식(搏食)·촉식(觸食)·사식(思食)·식식(識食)이니, 법부들의 밥이다. 또 다섯 가지 선열식(禪悅食)이 있는데, 법식(法食)·희식(喜食)·원식(願食)·증식(證食)·해탈식(解脫食)이니, 성인의 밥이다.
그물을 꿰뚫고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먹는 것이 있을까, 없을까? 이미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라면 먹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밥을 삼습니까?〔未審以何爲食〕”한 것은 먹는 것을 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임을 내세운 것이다.
만송(萬松)이 이르기를 “삼성(三聖)이 질문의 실마리를 터뜨려 가시덩굴 숲에서 아교 동이를 끌어낸 것은 무방하다 하겠으나 설봉이 서른 걸음 앞 질러서서 그가 스스로 달라붙고, 스스로 숨기는 것을 보고는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거든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待汝出綱來卽向汝道〕’고 하였으니, 기이하고 괴이함이 마치 국수(國手)가 바둑 한 점을 놓을 때 몇 수를 미리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거든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한 것은 허공에서 다시 한 겹의 그물을 던져 그가 벗어나는가,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살핀 것일까?
삼성이 그렇게 물은 것은 그물 밖의 주장이요, 설봉이 이렇게 대답한 것은 그물 안의 주장이리라. 그러므로 벽암(碧巖)이 “비록 하나는 나오고 하나는 들어갔으며, 하나는 어루만지고〔挨〕하나는 다그쳐서〔拶〕승부는 가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설두(雪竇)의 송은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도 살아 움직이는 용이 있다는 뜻이다.
해인(海印)의 송은 “장삼(張三)”은 삼성이요, “이사(李四)”는 설봉이다.
천동(天童)의 송에서 “물결이〔浪級〕……양념 독에……〔虀瓮〕”는 삼성의 경지요, 나머지는 모두가 설봉의 경지이다.
보복(保福)의 염은 삼성은 다투면 부족한 격이요, 설봉은 사양하면 남는 격이라는 뜻이다.
설두(雪竇)의 염은 삼성을 긍정하는 것인가, 삼성을 긍정하지 않는 것인가?
승천(承天)의 염은 그물 안에 있건, 그물 밖에 있건 옳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만일 그렇게 이해한다면 어찌 꿈엔들 두 사람의 속마음〔落處〕을 알겠는가 함이니, 천하를 휘젓고 다니는 도리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란 뜻이다.
진정(眞淨)의 상당에서 “장하고〔俊哉〕……놀라지 말라〔驚着〕”함은 삼성이 그물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요, “주장자를 들어〔拽拄杖〕……”는 자취를 남기지 않은 뜻이다.
그물 안에 있다는 티가 있는 듯하므로 “흡사 한 마리의 범〔恰以一隻虎〕……”이라 했으니, 용맹스럽게 땅에 걸터앉은 자세요, 이것이 보녕의 쾌활함이다.
“……는 없는가?〔莫有〕”함은 삼성의 줏대를 세워 주기 위함이요, “할을 하다〔喝〕”함은 자기의 설 곳을 뜻한다.
“손을 잡고〔把手〕……”는 삼성의 준수하고 쾌활함을 폄하하는 뜻이다.
오조(五祖)의 상당에서 “대중들 중에서〔衆中〕……”는 득(得)과 실(失)을 면치 못했다는 뜻이요, “좋은 물음〔好箇問頭〕”은 삼성의 경지 밖에 딴 경계가 없다는 뜻이며, “골짜기에〔洞裏〕……”는 삼성의 뜻을 밝힌 것이다.
운문(雲門)의 상당에서 “거칠기가 산 같다〔麁似丘山者〕”함은 설봉이요, “섬세하기가 쌀가루 같다〔細如米末〕”함은 삼성이다.
“활을 당김〔彎弓〕은 삼성이요, ”화살을 물음〔齧鏃〕“은 설봉이며, ”남의……를 얻고는〔得人〕……“이라 함은 양쪽이 모두 우열이 없다는 뜻이다.
자항(慈航)의 상당에서 “미세한 줄도 알고〔知微〕……감당할 것이나〔以之〕……”는 법조문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이요, “불자를 들어〔拈拂〕……”는 불자의 활용이니, 삼성의 안목을 바꿔 놓기 위함이며, “금을 팔려면〔賣金〕……”은 삼성의 분상(分上)에 벌써 그러한 소식이 있었다는 뜻이다.
또 상당(上堂)한 데에서 "만 리에〔萬里〕……“라 함은 말뚝을 박기 어렵다는 뜻이요, ”있지 않으니라〔不在〕……신라로〔新羅〕……“는 더듬어 찾을 길이 없다는 뜻이다.
“한 시각 늦었느니라〔遟一刻〕”함은 보복의 그런 말이 한 시각 늦었다는 뜻이요, “절대로……하지 말라〔切忌〕……”는 여전히 부질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개암(介庵)의 상당에서 “설봉에게는……가 있고〔雪峰有〕”와 “삼성에게는……이 갖추어져 있다〔三聖有〕”함은 법조문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이요, “지여〔只如〕……”는 설봉이 그렇게 말한 뜻이 매우 알기 어려우나 그 뜻이 무한하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강 위에 석양이 들어〔江上晩來〕……”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