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80년대 언술특성
2. 역할 갈등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 여성의 삶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아성장 내지 자아실현이며, 다른 하나는 현모양처로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지난 5천 년간 전통적인 성역할과 신사임당과 같은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스스로 지배적 봉건적 가치관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교육받고 길들여져 왔는데,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동참하면서도 자아실현의 욕구에 대한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여성수필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직장 생활과 가정 일을 병행하면서 슈퍼우먼의 꿈을 키우는 것이다. 신세대 미혼 여성과 주부들은 전문직 수행과 사회 참여를 통한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특히 신세대 주부들은 자녀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가정에 소홀함이 없이 자아를 성장시키려는 이른바 '수퍼우먼'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중년 주부들은 신세대 주부처럼 수퍼우먼보다는 주부와 직장 여성 어느 한쪽도 달가워하지 않는 중간 입장에 서는 사람이 많다. 한국 여성의 또 다른 부류는 남편과 자식을 위한 헌신과 희생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 내지 가치를 느끼며, 이를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삶는다. 이러한 경향은 대체적으로 나이든 세대에서 나타나며 경제적 능력, 교육 수준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저하게 드러나는 현상은 한국 여성 의 대부분이 자기중심적 ․개인주의적 삶을 지향하며 자아성장 내지 자아실현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독신 여성의 증가, 여성의 취업 증가, 특히 기혼 여성의 취업증가 등의 현상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전업주부들이 자아성장과 사회참여에 대해 높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로움보다 정신적 풍요로움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반면에, 남편의 성공과 자녀의 학업성적을 주부의 책임으로 느끼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작가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시야의 변화를 겪으면서 본질적인 변화 또한 가능하다고 믿지만 이전과 동일한 상황에 다시 처해 있음을 발견하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주어진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여성 정체성의 발현 차원에서 보면 그 정도가 모호하다고 할 수 있는 여성 의식의 특성을 ‘역할 갈등성’이라 명명하고, 그 속성을 모성의 자립성과 모순적 양면성으로 나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전자는 생물학적 모성을 견고히 함으로써 전문적 모성으로 그 역할이 상승함을 나타낸다는 측면에서 배타적 정체성을, 후자는 여성의 주체를 말하다가 다시 여성의 자리로 돌아오는 후퇴성을 보임으로써 논리의 모순적인 진술을 통해 모성의 역할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여성들을 화해시킨다는 측면에서 중도적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