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윤과 이영윤
이경윤(1545-1611)
이영윤(1561-1611)
이경윤과 이영윤은 성종의 5세 손으로 왕족이다. 문인-사대부이다.
이경윤이 활동한 시기는 선조 대이고, 임진왜란 때(1593) 산 속으로 피란을 갔다고 하여 추모를 당한 기록이 선조 실론에 실려있다. 그 외에는 뚜렷하게 전해지는 기록이 없다.
이경윤은 양반 사회에서 왕족으로서의 대우를 받았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도 알려졌다. 그에 관한 기록을 보면 젊었을 때부터 산천 유람을 즐겼다고 하였다.
동생인 이영윤은 화조화를 잘 그렸다. 아들들도 화가였다.
이경윤의 그림 평으로 ‘고상한 가운데 정취가 있고, 고고한 가운데에 고운 자태가 있다.’라고 하였다. 산수화 이외에도 묵죽, 매화, 화조, 영모 모두 잘 그렸다.
이경윤의 ‘시주도’는 중국풍 노인이다.
산수 인물도는 절파 그림으로, 조선 중기에 유행한 양식이 절파 화풍이다.
이영윤은 남아 있는 그림이 거의 없고, 이경윤의 동생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영윤의 그림으로 전하는 것도, 중국 화가의 그림을 모방한 것이다. 중국 화가의 그림(원나라 땡의)이 명나라 화가의 모방작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조선화 그림으로 바뀌는 중간 과정의 그림을 그렸다고 본다.
(*미술사에서 이름을 거론해주는 화가가 되려면 남을 본뜬 그린이 아닌 자기 양식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들 형제는 자기 양식이 아니고, 중국서 유행한 그림을(절파 양식)을 모방하여 그렸다고 본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그냥 그리기를 취미로 즐기기 위한 것이므로, 자기 양식을 만들어내니 하는 데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첫댓글 오늘은 '시주도'라는 그림을 보고
동냥하는 내용을 그린 것을 '시주도'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냥하는 사람의 옷차림도 고급지고
손에 든 도구가 가치있는 도자기 같습니다.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잘 배웠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을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붓을 놓치 않고 이어져 온 선조들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건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