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분갈이 / 김순경
잠깐의 방심이 사고를 불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한동안 바라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 맞추며 함께한 세월이 얼마였던가. 답답하고 좁은 공간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더니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
베란다 화초들이 쓰러져 있다. 더위에 시든 것이 아니라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변한 것도 있다. 혹시 내가 잘못 봤나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군자란처럼 잎이 넓은 화초들은 대부분 말라 죽었고, 산세비에리아와 관음죽같이 잎이 두껍거나 질긴 것은 잎을 돌돌 말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전쟁터처럼 화초들이 열기를 피하지 못하고 밤새 초주검이 되었다.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다. 유리 너머 화초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몸부림쳤지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며 애지중지 길렀던 분신들이 초주검으로 나를 쳐다본다. 날마다 눈인사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오늘은 눈을 맞출 수가 없다. 매년 분갈이하고 다듬었던 화분이 맞나 싶다. 한 번이라도 베란다에 신경을 섰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자책을 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사소한 방심이 화를 부를 때가 많다. 생산 현장 관리자였을 때 일이 생각난다. 장갑을 끼고 회전체를 만지다 손이 말려 들어가고 신호를 잘 보지 않고 중량물을 운반하다 대형사고가 난 적도 있다. 심지어 안전 울타리를 쳐 두었지만 뛰어넘고 질러가다 다시는 올 수 없는 저세상으로 가는 경우도 보았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다가 일어난 사고가 대부분이다. 안전 장구를 착용해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냥 탱크나 하수구에 들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리자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계소음이 심해 난청이 될 수 있으니 귀마개를 꼭 착용하라 해도 그냥 다닐 때가 많았고, 안전모를 들고 현장을 돌아다니거나 방진 마스크를 하지 않고 탱크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다. 현장 작업자를 교육하고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도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가르치는 사람이 더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 같았다.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며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다. 여름이면 당연히 지나가던 태풍도 더운 기운에 밀려 올라오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리 더워도 가끔은 시원한 비를 뿌려주던 소나기마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일반 채소나 고춧값이 두 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한다. 과일도 작황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밭작물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고 식수원도 녹조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시골집에 갔더니 마당이 벌겋다. 빈집을 지키는 마당의 잔디는 심은 지 이십 년이 지났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원형 탈모증처럼 마른 부분에다 비료를 주고 물을 흠뻑 붓는다. 얼마나 말랐던지 한참 지나서야 표면에 물기가 조금 서린다. 며칠만 일찍 와도 이렇게 타지는 않았을 텐데 싶어 쉽게 물을 잠그지 못하고 호스를 들고 있다.
식물은 대부분 잎부터 마른다.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잎이 먼저 마르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수분을 많이 증발시키는 잎을 스스로 떨어뜨려 자신의 몸통과 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잎은 다시 돋아나지만 뿌리나 줄기는 한 번 마르면 다시 소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물은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동안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할 줄 알면서도 화분에 물을 준다. 잎은 말랐지만 뿌리는 살아 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자꾸 물을 준다. 까맣게 탔든 시들었든 개의치 않고 평소처럼 물을 주다 보니 자책하며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다. 회생할 가망이 없는 것은 가위로 잘라내고 생사 구분이 애매한 것만 그대로 두었다. 대부분 줄기까지 말랐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물을 주던 화분을 한곳에 쏟았다. 뿌리와 줄기의 상태를 보고 선별했다. 잎은 다 죽었지만 뿌리는 멀쩡한 것이 많았다.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만 골라 가지와 줄기를 다듬고 잔뿌리도 정리했다. 거름이 적당하고 배수가 잘되는 흙을 구해 산세비에리아와 관음죽부터 심었다. 말복이라 분갈이 계절은 아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정성껏 심었다. 뜨거운 열기에도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 그때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흙을 다졌다. 힘차게 뿌리 내려 다시 활짝 웃기를 기대하며 그늘에다 놓는다.
흙을 갈아주고 가지를 잘라주자 조금씩 생기를 되찾는다. 몇 개 남은 뿌리가 줄기를 향해 물을 빨아올리고 잎부터 만든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좌절하지 않고 번식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은 만물의 공통점인 것 같다. 얼마나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강력한 햇살을 등에 업고 죽을힘을 다해도 예전처럼 자라지는 않는다. 언젠가 상처가 허물처럼 벗겨지고 새잎이 돋아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 같아 최선을 다한다.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챙길 수는 없다. 물리적 현상이나 능력이 닿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 쓰고 한 번만 더 돌아보면 될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밤새 베란다의 화초들이 더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갔듯이 돌아보면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갈수록 배려하고 양보하기보다는 자신의 안녕과 영달에만 매진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달이 밝을수록 주위는 더 어둡게 보인다.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본적인 삶도 누리기 힘든 사람도 많아진다. 언제나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창문 밖 베란다에서 말라죽은 화초들처럼 누군가가 호사를 누리면 다른 곳에는 고통에 신음한다.
비 오듯 땀이 흐르지만 깔끔한 화분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든다. 물을 흠뻑 머금은 화초가 싱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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