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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엊그제 우리 금요일 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절기적으로 네 벌써 입동이 왔습니다. 입동을 지나면 겨울을 준비하는 김장철이 이제 시작된다라고 보통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벌써 김장을 준비하는 그래서 겨울을 준비하는 시즌이 온 것 같아요. 요즘 교회적으로는 말씀을 통독하고 또 다니엘 기도회를 함께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굉장히 분주하게 여러분들 시간을 보내고 계실 텐데 아마 이 기간이 이렇게 쑥 지나가고 나면 벌써 또 이제 2025년을 마무리하는 연말을 우리가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요즘 시간이 화살과 같이 지나간다. 쏜 화살과 같이 지나간다 이 말이 실감이 되는 그런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빠른 흐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삶을 좀 뒤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쳇바퀴만 돌다가 그냥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 그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이제 d데이가 며칠 안 남았는데 우리 수험생들 이번 주 목요일이면 고3 수험생으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이제 감당하는 이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죠.
또 여러분들 가운데는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할 사명이 있고 또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여러분들이 맡고 있는 사명들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남녀노소 다양한 삶의 모습 가운데 있지만 우리 모두의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주신 똑같은 사명이죠.
그 사명이 뭘까요? 모르시나요?
네 한번 따라 해보겠습니다. 전도 부담스러워서 말을 못하시나요?
사명인데 이거를 말하자니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리스도인인 모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명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과정 속에 있지만 우리에게 주신 성경 곳곳에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사명은 바로 전도입니다. 그래서 이 사명을 우리가 정말 성경의 말씀처럼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데 오늘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좀 찾아봅니다.
에스겔 3장 18절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가령 네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핏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아멘 짤막한 구절이지만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우리의 손에서 핏값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악인들은 그 죄악 중에 죽게 되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지 않은 핏값을 찾게 된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죠.
누가복음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우리 막 찬양하잖아요. 다양한 우리의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요소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 중에 하나는 전도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신앙적으로도 우리는 이게 당연하게 공식처럼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후반부의 말씀을 봐도 하나님은 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하나님이 짠 나타나셔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냥 딱 눈에 보이고 막 바로 잘못하는 사람 바로 혼내주고 막 잘하는 사람 바로 칭찬해 주고 그러면 모두가 다 그냥 하나님 믿을 것 같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으셨어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여러분 지금 이렇게 나열한 이 성경 구절들 이미 많이 들어봤고 여러분들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전도를 우리는 부담으로 느끼고 있죠. 오늘 제목도 그렇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부담스럽지만 감당해야 할 사명 전도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아주 간혹 계시지만 대부분은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도는 사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명이라는 말은요. 맡겨진 임무 명령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에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늘 거기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명이라는 것은 그냥 쉽게 하는 걸 사명이라고 하지 않죠?
숨 쉬는 걸 사명이라고 하나요? 밥 먹는 걸 사명이라고 하나요?
그냥 쉽게 하는 건 사명이 아니에요.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의 환경 속에 전도하기가 넉넉지 않은 환경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도에 대해서 늘 부담스러워요.
특히 코로나 이후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 전도라는 말은 마치 입에서 꺼내면 좀 부담스러운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부담스러운 전도 사명 전도를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이유를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함께 발견하고 우리가 한번 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사도행전 18장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리스길라, 아굴라 그리고 신라 그리고 디모데 이렇게 기라성과 같은 그러한 팀이 신앙인들이 팀을 이루어서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만 들어도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잖아요. 브리스길라, 아굴라, 실라, 디모데 그런데 이렇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서 복음 사역을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분위기를 보면 이렇습니다.
6절을 보시면 6절 초반부에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그러니까 지금 능력 있는 사람 거기에다 사도 바울까지 하나님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씀 사역을 하는데 복음을 증거하는데 대적하고 비방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상황을 좀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 이 고린도라고 하는 지역에 대한 배경을 좀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기 앞을 보십시오. 이 고린도라고 하는 곳은요. 지금 우리로 따지면 그리스 이쪽인데 지금도 그리스 남부 쪽에 지금 보면 저렇게 바다와 바다 사이에 연결 부위같이 생긴 빨간 점 저기가 고린도입니다.
그런데 저 지역이 양쪽에 아주 중요한 항구가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지금은 이곳을 이렇게 뚫었어요. 그래가지고 여기에 운하가 생겨가지고 그 운하의 배들이 통과를 하면서 굉장히 이제 중요한 운화입니다. 물론 큰 물류 선박들이 움직이지 못하지만 지금은 이제 관광용으로 많이 쓰인대요. 그래서 이렇게 운하를 직접 뚫은 겁니다. 한 6km 7km 정도 되는 구간이라고 해요. 성경에 기록될 당시에도 운하를 나름대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기술도 없었고 또 이걸 해낼 수 있는 능력도 자원도 없었습니다. 근데 이 당시에 이 이렇게 물과 물을 뚫어서 우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때 신기한 방법으로 이 고린도 지역을 지나다니는 모습을 포착하게 되는데 요거예요.
이게 지금 뭘로 보이시나요?
예 지금 물이 보이고 길로 보이죠. 길 그러니까 물까지 다 뚫어가지고 배가 다닐 수는 없지만 기술력이 떨어져서 이 당시에 이렇게 길을 만들어놓고 저기에 나무들을 쭉 놓고 사람들이 배를 끌어가지고 통과를 시키는 거야 지금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무식한 짓이고 어떻게 그게 가능해 그러는데 그 당시에는 노예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인력은 돈도 안 주고도 쓸 수 있으니까 아마 그런 식으로 배를 육지로 끌고 가는 그런 이제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왜 이렇게까지 굳이 하냐 아까 전에 지도를 보세요. 지금 보시면 이렇게 고린도 지역을 아테네에서 이렇게 통과해가지고 지나가면 저렇게 끌고 가도 일주일이면 통과를 한 대요.
근데 이 밑에 지역으로 이렇게 펠레폰네소스 반도 이쪽으로 돌아가면 한 달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도 많이 세이브가 되지만 특히 요 밑에 쪽은 굉장히 파도가 거칠고 좀 바다가 험한 바다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위험 요소도 많은 거예요. 지금 같으면 날씨를 미리 알 수도 있고 또 바다의 지형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 뱃길이 이렇게 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바다는 좀 두려움의 대상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고린도 지역이 이런 상황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 고린도 지역에 이제 배를 딱 대놓고 배를 끌고 가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뱃사람들은 이때 뭐 하고 있을까요?
뱃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할 일이 없어요. 그러면 이 지역에 뭐가 발전할 수 있을까요?
상상력을 발휘해 보세요. 네 숙박업 그렇죠 일단 자야 되니까 그리고 요식업 먹고 마시고 자고 거기에다가 좀 더 더 하면 유흥까지 그래서 특히 고린도 지역의 언덕 위에 아주 유명한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에 거주하는 신전의 사제 여사제가 천 명이 넘게 있었다고 그래요.
근데 이 아프로디테 신전의 사제들은 거의 매춘과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또 나름 돈이 있으니까 여기서 흥청망청 쓰고 매춘하고 유흥하고 일주일을 지내다가 가는 거예요.
근데 그 여사제들하고 그렇게 관계하는 과정 속에서의 의미는 여사제와 그런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을 축복하고 기도해 주면 안전하다. 그러니까 이거는 자기들이 볼 때 꼭 먹고 알 먹고가 되는 거죠.
근데 신앙인의 관점으로 볼 때 이 고린도 지역은 어떤 도시였을까요?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굉장히 뭔가 상업적으로 발전하고 사람들이 막 북적북적하고 뭔가 축제 같은 그런 도시였지만 그러한 신앙적으로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 그렇게 기라성과 같은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복음을 증거하는데 반응이 어땠다고 아까 말씀드렸어요. 대적하며 비방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어쩌면 지금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전도라는 걸 해야 되는 걸 알고 있고 또 나름대로 여러분들이 전도를 하려고 도전도 해봤을 겁니다.
전혀 시도하지 않은 분들은 아마 없을 거예요. 근데 우리가 이런 상황들을 맞이하는 거죠. 우리 나름대로 준비했고 또 그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돌아오는 게 비방이고 대적하는 그러한 부정적인 모습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너무나도 대단하게 보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십시오. 6절 이제 중반부를 보세요.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옷을 턴다는 이 표현은 어떤 표현일까요?
난 너희들하고 상관없어. 아무리 내가 좋은 걸 갖다 줘도 니네들이 이렇게 거부하고 비방하고 이렇게 대적하는 너희들, 나하고 이제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이어서 말하잖아요.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오. 나는 깨끗하다.
그러니까 사도바울도 그냥 한마디로 이 사람들을 거의 포기하는 수준까지 이제 간 거예요.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이 사람들에 대해서 전도가 이게 되는 모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불편한 것이죠. 이렇게 복음의 그 은혜가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것 같은 도시가 바로 이 고린도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말씀으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10절의 후반부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한번 따라 해볼까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시각으로 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환경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만 있지는 않은가 안 돼. 내가 지금 뭐 이게 한두 회도 아니고 내가 지금 10년 20년을 기도하고 그 사람 초청하고 있는데 안 돼. 사람들 코방 기도 안 껴 거기다 심지어 우리 교회는 삼각 교회인데 뭐 사람들 오려고 생각도 안 해 혹시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마음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닫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근데 그 하나님이 뭐라고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여러분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 함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그 시선을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바꾸고 계시는 거예요.
니가 볼 때는 없지 다 비방하고 대적하지. 하지만 이 백성들 중엔 이 사람들 중엔 내 백성이 너무 많아 나는 그들을 구원하고 싶어
하나님의 마음이신 거죠.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죠?
신발을 파는 영업사원이 아프리카로 파견을 받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쭉 돌면서 이제 수요를 파악을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보고를 합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보고를 해요. 아프리카에 가보니 신발 신고 다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네요. 다 맨발로 다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기는 신발을 팔 수가 없어요. 수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 여기 가지도 맙시다고 말을 해요.
근데 한 사람은 뭐라고 말을 했을까요?
아프리카에 가보니 신발을 신고 다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까지 똑같죠.
근데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황금 어장입니다.
신발을 신고 다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이 사람들에게 신발을 신기기만 하면 이 사람들이 신발이 편리한 것만 알면 신발을 다 신게 될 황금 시장이라는 거예요.
누구 말이 통했을까요?
두 번째 후자의 이야기가 통했겠죠. 똑같은 걸 봤는데 시선이 다르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도 우리가 사도 바울이 아까 전에 그렇게 표현한 것처럼 옷을 털어버리고 내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저 사람한테 복음을 증거해 봐야 되지도 않는데 그냥 포기해버리고 내가 그냥 그렇게 내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길 원해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여러분들 지금 여러분들 주변에 우리가 전도 대상자들을 뭐라고 부르죠? 찾느니라고 불러요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찾는이
옛날에 태신자라는 말도 썼는데, 요즘 제가 태신자라는 말을 조금 이렇게 생각해 보다가 요즘에는 안 쓰는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너무 오래 품고 계셔요. 보니까 아니 10개월이면 출산을 해야 되는데 1년 2년 3년 10년 20년을 품고 계신 분들이 계셔서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어서 성경적인 단어들을 찾다가 찾는 이라는 단어가 참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요.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갈급한 심정을 가지고 찾는 이들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냥 자연스럽게 믿어져서 오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러분들 가운데도 심령이 막 갈급해가지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서 정말 애절한데 그때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여러분들을 이끌어준 누군가에 의해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찾는 이들이에요. 우리가 그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내 언변으로 전하는 게 아니라 내 능력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이들을 발견하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를 향해서도 말씀할 거예요.
이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요즘 다음 세대들도요. 지금 복음화율이 거의 미전도 종족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전도 종족이라는 말은 거의 3% 이하의 복음화율을 이야기해요.
근데 지금 거의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으로 표현했잖아요.
근데 이걸 역으로 뒤집어놓고 표현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만큼 우리가 전도해야 될 대상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시선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제가 이번 주에 초청할 사람들을 다음 주에 초청 주일이기 때문에 기록하고 제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는 광고를 드렸는데 아마 여러분들 안에 각자의 반응이 있었겠죠. 한 주 동안 부담만 가지고 살다가 오신 분도 계실 거고 또 어떤 분들은 그건 내가 하는 거 아니야 매번 하는데 별로 효과가 없어 하고 그냥 잊어버리고 지낸 분들도 계셨을 겁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말씀 속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시선의 변화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도 바울은 어떻게 이제 반응했을까요?
11절에 보니까
1년 6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아멘, 금방까지 부정적이었던 그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했다는 겁니다.
다음 주 주일은 우리가 추수감사주일로 해피데이 초청 주일로 예배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이번 한 주간 특별히 더욱더 기대와 소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품고 작정하며 기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도 이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의 심령에 변화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전도가 부담스럽지만 우리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이유 두 번째는 바로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있음에 내가 너와 함께 있음에 여러분 전도함에 있어서 이게 가장 먼저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러한 신앙의 여정을 지금 지내고 있는 거 그게 먼저 우선이라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내가 누군가를 초청하는 것 그 자체도 불가능하지만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겠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승천하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계시죠?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시작
아멘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어요. 근데 앞에 전제되는 게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함께 하겠다라고 하신 게 아니에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복음 증거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
라고 약속하고 계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과 함께하시겠다라고 말씀하실까요?
전도는 우리 인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면 당연히 하나님이 더 그 가운데 함께하시고 그 가운데 능력을 그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을까요?
굉장히 단순한 두 가지를 오늘 말씀드렸습니다. 전도가 부담스럽지만 우리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인 이유 두 가지 첫 번째 따라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들이 있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 기도하면서 우리 찾아갑시다.
하나님 오늘도 찾는 이를 만날 수 있는 은혜를 주세요. 오늘도 나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찾는 이들을 만나는 역사를 허락해 주세요.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지금 이 시대에 찾는 이들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내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당케 하심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두 가지만 기억해도 우리가 조금 더 이 전도에 대해서 조금 우리 마음이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 9절 말씀을 한번 다시 보겠습니다. 빨간 글씨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예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이곳에 8년 전에 하늘 소망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근데 우리가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냥 알아서 자연스럽게 이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런다면 그건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건 두려워할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하지 않는데 교회가 채워져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데 교회가 세워져요. 그건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감사와 기쁜 일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복음이라는 것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점점 상실되게 됩니다. 변질되고 만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그 복음은 증거하지 않으면 변질이 되거나 후퇴한다는 거예요.
소돔성의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멸망된 성이죠. 그 소돔성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 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요지부동 아무도 그 노인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는 거예요.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 하고 있다고 이 노인을 향해서 소리지릅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동은 쓸데없는 짓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변화되기를 바람으로 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나는 외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아는 것 같고 또 많은 것들을 말로 합니다. 성경의 가장 중심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 나라이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한다. 우리는 알고 있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그냥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먼저는 말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보십시오. 안 돼 안 돼 생각으로 그것을 멈추지 마시고 아까 말씀하신 말씀처럼 침묵하지 말고 입을 열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찾는 이들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하십시오. 말하지 않고 나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입을 닫고 행동만 하는 것은 자세히 보면 의미 없고 무가치한 경우들이 참 많아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먼저 우리의 입술을 열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길 원합니다. 특별히 다음 주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그리고 초청 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번 한 주간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붙여주신 찾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가며 우리 한번 기도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우리의 입을 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주보에 태신자 작전 카드를 다 이렇게 기록해 놨는데 제가 요 근래는 우리 교회에 119라고 해가지고 한 사람씩 작정하는 거를 해놨는데요. 이번엔 좀 칸을 세 칸으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작정하실 때 내가 볼 때 올 것 같은 사람을 거기에 원래는 그렇게 써가지고 다음 주에 선물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에 기도하면서 마음이 좀 다른 마음을 주셨어요. 이걸 보면서 그것도 내가 제안하는 것 같아서 여러분들 주변에 여러분들이 볼 때 이 사람은 좀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나 이 사람이 좀 찾는 사람 같다라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거리가 멀리 떨어진 사람도 괜찮습니다. 꼭 우리 교회로 와야 되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우리 교회를 채우기 위해서 전도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들이 볼 때 여러분들 주변에 찾느니라고 생각되는 이들이 있다면 적으십시오. 오늘 적어서 제출하는 분들은 이번 한 주간 내내 새벽에 우리 새벽에 기도하는 분들에게 나누고 또 여러분들 우리 교재 방에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나 혼자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동력자들이 전심하여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기도 제목을 보고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입술에 열고 말하는 그 과정 속에 역사하게 되실 줄 믿습니다.
정말 이번 한 주간 포인트를 이곳에 맞추세요. 또한 다음 주는 추수감사주일로 우리가 드림상 나눔상을 이제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추수감사주일의 나눔상은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나눈다고 광고를 드렸는데요. 이것도 관심을 가지시고 최선을 다해서 동참해 보십시오. 그 가운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함에 확장함이 풍성하게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