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회개하라!(계2:12-17)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계시록-묵시는 박해시대의 문학입니다. 신앙 박해가 심할 때 성도들이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이겨나가도록 격려했습니다. 구약에서는 다니엘,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묵시에요. 요한계시록은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낸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편지를 한꺼번에 써서 보낸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나누어서 보낸 것들이에요. 계시록 2장과 3장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이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일곱 교회에 각기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각 교회의 형편이 달랐고, 박해를 이기는 정도도 달랐습니다.
각기 상황이 다르니 예수님이 어느 교회는 칭찬만 하시고, 어느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겸하여 하시고, 어느 교회는 책망만 하셨습니다. 각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각기 다르셨어요. 에베소 교회에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교회와 지도자들을 지켜보시고 촛대를 움직이시는 분), 서마나 교회에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였습니다.(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는 교회에 부활의 소망을 주심) 오늘 본문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12절,“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주님이 이런 모습으로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2. 버가모는 에베소 이전에 세워진 로마 제국 치하의 오래된 도시였습니다. 서머나에서 북동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에베소는 규모에서 컸고, 서머나(이지미르)는 아름다웠고, 버가모는 로마가 중시하는 도시였어요. 그래서 버가모에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센터가 있었습니다. 이곳에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이 주전 29년에 세워졌습니다. 로마 제국이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고 했던 전략이었습니다. 일본 왕이 이것을 배워서 자신도 신으로 여기며 숭배하도록 했습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입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신사에 가서 참배하죠. 수상도... 아직도 그들 속에는 세계 침략을 향한 야욕이 속에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형편을 보고 아시면서 먼저 칭찬해주셨습니다. 13절,“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선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주님은 버가모에 황제숭배의 센터가 있는 것을 아셨어요. 주님의 충성된 제자 안디바가 황제숭배 앞에 배교를 h하지 않고 당당히 살다가 순교를 당한 사실도 주님은 아셨습니다. 이것을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보고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3. 예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형편을 정확히 보고 아십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정확히 보십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자녀로서, 그의 제자로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버가모 교회가 당당히 이겨내기를 원하셨어요. 교회를 향한 주님의 기대감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1차 시험에는 합격했어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산참배에 응했습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결의도 했습니다.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가 이렇게 결했습니다.
다른 교단들은-천주교회나 감리교회 등은 벌써 동조했으나 우리 장로교단도 버티지 못하고 일제의 총칼 앞에(총회 장소에 일본 경찰이 총칼을 들고) 굴하고 말았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황제숭배에 굴하지 않고 잘 이겼는데, 그들 가운데 물리치지 못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14-15절,“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4. 버가모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것은 발람의 교훈을 지킨 것입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같은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출애굽사에서 등장하는 발람은 유명한 이방 종교인이었는데 돈의 욕심 때문에, 발락 왕의 초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의 입술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데 실패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말았어요. 이후 그가 발락 왕에게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비법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남자들을 우상숭배 자리에 초대해서 우상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한 것입니다. 옛날 우상숭배에는 이 두 가지가 항상 따랐어요. 신전에는 성창이 있었고요.(남창/여창-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유혹)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발람의 교훈이 하나님 앞에 큰 걸림돌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젊은 제사장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음행하는 남녀를 죽임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종교 행위를 하는 이들이 버가모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5. 그들이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버가모 교회 성도들을 황제숭배의 자리로 오게 해서 유혹에 빠지게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에 빠지게 하였어요. 버가모 교회 안에 두 그룹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디바와 같이 신앙을 지키며 순교를 했던 성도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 두 부류가 공존했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 신앙인들의 자세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한 교회 안에서 이렇게 신앙을 지키는 자세가 전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책망 속에 담긴 버가모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실마리
6. 버가모 교회에는 두 부류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황제숭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이것을 즐기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과거 출애굽 도상에 있던 이스라엘 남자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버가모 교회도 그랬어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타협할 때 쓰는 말이에요. 우리가 진리를 지키는 일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마음이나 행위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어요.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습니다. 타협과 양보가 불가능한 것이 진리를 지키는 것이에요. 우상숭배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디바와 같이 순교를 당하는 가운데에도,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어요. 여기까지가 내 인생이라고 판단하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기도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처절하지만, 이렇게 인생을 마치는 것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스데반도 그랬잖아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
7.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는 중심지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실수를 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런 상황에 있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였어요. 보통 칼은 한쪽에만 날이 있는데, 주님이 들고 계신 검은 양쪽에 날이 있었어요. 주님의 확실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누구도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에요. 자기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다가왔던 우상숭배와 음행의 유혹을 철저하게 이기고 승리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하겠다는 으름장만 놓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16절,“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버가모 교회를 향한 주님의 소원은 그들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영적인 전쟁을 두려워하고, 육신의 생명을 두려워하며지지 않기를 원하셨어요.
복음 제시
8. 예수님은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는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주실 것을 말씀하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17절,“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더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아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성령이 임한 사람들은 이 말씀이 귀에 들려왔을 것입니다.
오늘도 그래요. 성령이 임하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야 복음을 믿고 영원히 죽지 않는 만나를 받습니다. 곧 영생을 누립니다. 또 하늘에서 새 이름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몬을 베드로라 불러주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는 무엇이라고 불러주실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개봉박두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세상 쾌락-유혹을 이기고 영생을 누리며 새 이름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대
9. 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세 번째 교회에 편지하는 말씀을 나누며, 오늘도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전쟁을 분별하게 됩니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발람의 교훈-니골라 당의 교훈을 가르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유혹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올 때,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르기를 바래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입니다. 그리고 속히 그 유혹을 따르려 했던 마음에서 떠나 회개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영생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에서 새 이름을 받게 됩니다. 영적인 싸움은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유혹이나 사탄의 권세와 우리가 싸울 수 없어요. 영적인 전쟁-영물을 상대하는 싸움을 영적인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살면서, 사탄의 유혹과 권세를 넉넉히 이기며 살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은,“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롬8:37)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귀신-사탄의 권세와 주기적으로 싸워보니 넉넉히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