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헌릉로 현대ㆍ기아차 본사의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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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정기적인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이 2013년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한 현대차 노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은 기아차 노동자 2만7천437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1조930억여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약 4천
224억원을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는 노조가 요구한 돈의 약 38%에 해당된다.
이날 선고는 '정기적으로 지급된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는 판례를 전제로 했다. 앞서 대법원은 통상임금 여부는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지’를 객관적 성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따라 기아차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상여금은 정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지급된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이 맞으며, 이를 재 산정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을 회사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을 산정하기 위한 기본도구 개념으로 임금제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통상임금 포함 여부에 따라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에 차이가 난다.
또 이날 판결에선 지난 2011년부터 6년여간 법정다툼에서 경영상 어려움을 내세운 기아차 측 입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동안
회사 측은 '(통상임금 포함이)회사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며 노조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 한다"면서도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발생시킬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해 노동자가 예상 외 이익을 추구하고 회사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얻어 경영상
어려움이 생긴다면 결국 근로자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물론 기아차가 노사 임금협상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수는 있지만 회사의 재정 상태 등에 비춰 경영에
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 근거로 기아차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둬왔고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기간 매년 약 1조~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했고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상당히 낮아지는 등 재정 상태와 매출 실적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지난해까지 9년간 매년 근로자들에게 최소 3천 291억원, 최대 7천 871억원의 경영성과급을 지급해온 데 비춰 이번 통상임금
인정에 따른 수당 지급이 무리한 수준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에 인정된 금액의 원금은 이미 지급된 한해 경영성과급이나 노동자들이 청구한
1조930억원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서울 중앙지법의 판단이 현대차의 통상임금 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대그룹 노조원 21명은 지난 2015년
1월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판결을 받았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통상임금 기준 가운데
'고정성' 때문이다.
현대차 상여금 시행 세칙에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상여금 지급을 제외 한다'는 규정이 있다, '15일 미만은 제외, 15일
이상만 지급'이라는 추가적인 조건이 붙으면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 1월 16일 현대차와 현대정공, 현대서비스 노조원 23명이 상여금과 휴가비 등 6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 2명의 일할(日割(덧말:일할))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현대차와 현대정공 상여금 시행세칙엔 ‘상여금 기준 기간 동안 15일 미만 근무자는 상여금 지급을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어 통상임금 판정
기준인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중 고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그간 하급심 판단도 큰 틀에서는 이와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하급심에서 대법원 취지와 어긋나는 판결이 나와 현장에 혼란도 있었다.
2015년 10월 부산지법은 르노삼성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2개월마다 지급해온 정기상여금을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는데도
고정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도록 '재직요건'을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있더라도 고정성을 충족할 수 있는 다른 요건들이 더 있다면
재직요건만으로 고정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고정성에 대해 이런 엇갈린 판결이 이미 나온 데다 이번 기아차 판결에 고무돼 현대차 노조가 통상임금 판단 여부를 다시 제소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온다.
법원이 전 현대차서비스 조합원 2명에게 400만원만 인정한 것에 따라 계산하면 현대차가 추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100억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업계에서는 법원이 현대차 노조의 주장을 인정해 통상임금을 소급하면 현대차그룹 전체에서 추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첫 해에 13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사입력: 2017/08/31 [18:50]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202854§ion=sc31§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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