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테라와다 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법을 전해주신
상가라자 뿐냐산또(도성) 큰스님께서 2025년 3월 23일 새벽 5시 20분경 입적하셨습니다.
뿐냐산또 큰 스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시고 열반을 성취하시길 두손모아 기원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Marana-Dhammomhi maranam anatito."
"나는 죽는 본성을 가지고 있고, 죽음을 뛰어넘지 못한다."
# 빤냐와따 스님의 글 모셔옵니다. _()()()_
《 한국 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승정) "뿐냐산또 도성 큰스님"의 일대기 》
존경하는 <뿐냐산또 도성(道成) 마하테라>께서는 1925(을축)년 평안남도 양덕군 쌍용면 관봉리에서 부친 청해이씨 이병률, 모친 밀양박씨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형님은 이상호, 큰스님 속명은 양덕군의 ‘양’자를 따서 이양호.
평소 성품이 올곧으면서도 자애로우셨던 스님께서는 6.25 동란의 참상을 통해 생의 덧없음을 절감하고 출가를 결심, 1955년 부산 선암사에 주석하시던 황해도 태생의 <석암스님>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왠일인지 예닐곱 차례에 걸친 간청에도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석암스님>께서는 그 간절한 청을 못 이기시고 수계제자로 받아들여 <지월스님>을 은사로 삼게 한 뒤 <도성(道成)>이란 법명과 함께 사미계를 줍니다. 스님께서는 훗날 <영공(映空)>이란 법호까지 얻음으로서 국내에서는 <영공 큰스님> 혹은 <도성 큰스님>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 후 <석암스님>과 <지월스님>의 지도 아래 참선수행을 하면서 전통강원의 사교(四敎)과정까지 수료한 뒤, 불국사·불영사·상원사·정암사·김용사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 정진하셨고, 드디어 1967년 은사 <지월스님>을 모시고 합천 해인사로 들어가시게 됩니다.
당시 해인사는 쇠락할 대로 쇠락해 있었고, <효봉선사>(상가라자 큰스님의 5촌 당숙으로서, 쇠락한 선풍(禪風)을 진작시켜 한국 근대불교를 반석위에 올려놓으신 대표적인 선지식)께서 이룩해 놓으셨던 ‘가야총림’의 위용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은사 <지월스님>을 모시고 해인사 총무 소임에 이어 주지 소임까지 맡으면서 보디삿다의 정신으로 도량을 정비하고 무너진 승풍을 진작시키는 등 해인사를 ‘해인총림’의 반석위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일찍이 테라와다불교의 소중함을 간파하신 스님께서는 1972년 10월 거행된 태국 고승 3사(전계사, 교수사, 갈마사) 7증(7명의 증명스승) 초청 테라와다 비구 수계식을 통해 한국 최초로 테라와다 구족계(우빠삼빠다)를 수계하셨고, 이를 계기로 훗날 일생동안 이땅에 테라와다불교를 뿌리내리는 일에 헌신하시게 됩니다.
(당시 테라와다 수계식에 초청되었던 전계사[우빳짜야]는 태국 방콕 쭐라롱콘 왕실사원 ‘왓벤자 마보핏’의 주지 <솜뎃 붓다윙사무니 마하테라>, 갈마사[앗짜리야]는 ‘왓벤자 마보핏’의 대강백 <프라 담마딧티소폰 마하테라>, 그리고 3사7증 10분 가운데 2021년 마지막으로 입멸하신 증명사 <프라 담디라랏마하무니 마하테라>)
1977년 해인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으신 뒤 은사 <지월스님>의 유훈에 따라 부산 영도에 근본불교 수행도량 ‘태종사(太宗寺)’를 창건하셨고, 창건 이후 지속된 스리랑카·태국·미얀마 승단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이땅에 테라와다불교의 토대를 한층더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3년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음과 동시에 부처님의 해탈 보리수로부터 이식해온 어린 보리수 1그루를 태종사 경내에 식재함으로서 태종사는 해동 최초의 보리수 이식도량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1989년 <아마라야노>(거해스님)과 함께 미얀마의 위빳사나 스승인 <우빤디따 사야도>와 <우자틸라 사야도>를 국내로 초청, 출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1달 반 동안의 위빳사나 수행법회를 개최함으로써 위빳사나 수행법을 한국에 소개함과 동시에 테라와다불교에 대한 첫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셨습니다.
1990년부터 해남 대둔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아마라야노>스님과 함께 위빳사나 수행결사를 하셨고, 이 무렵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행자들이 훗날 미얀마 등지로 건너가서 테라와다 비구계를 받고 위빳사나 수행을 직접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데, 그것이 결국 ‘한국테라와다불교’ 출범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97년 태국에서 수행 중이던 테라와다 상좌 <아짠 진용 빤냐와로 스님>을 불러들여 태종사 주지 소임을 맡긴 다음 테라와다 상가를 만들게 하셨고, 그해 음력 6월보름~9월보름까지 3개월간의 우기안거를 통해 포살의식을 비롯한 각종 상가깜마(상가의례)를 행함으로써, 그동안 위빳사나 수행의 대명사로만 인식되어 오던 남방불교가 마침내 온전한 테라와다불교의 궤도에 오르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공로가 인정되어 스리랑카 <이바야사카라 대승정>으로부터 최고영예의 성자상을 수여 받으셨고, 같은 해 스리랑카 상가로부터 <삼마 사사나 조띠가 마하테라>라는 최고의 칭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2006년에는 태국 ‘담마까야’에서 주관하는 ‘마카부차데이(초전법륜일)’ 국제행사에 국빈으로 초청되어 한국 테라와다불교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으며, 2008년에는 태종사 경내에서 한국·스리랑카 수교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양국간의 우호를 한층 돈독히 하셨습니다.
2009년 10월 31일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법회'에서 <상가라자>에 추대됨으로써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해까지 세수 100세에 이르도록 단 하루도 빨리어 조석예불을 거르는 법이 없었으며, 찾아오는 이에게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따듯한 미소로서 감로의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마침내, 한 시대를 밝혔던 한국 불교계의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은 조건 따라 사라지는 법.
이처럼, 생겨난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지는 법.
부디, 부처님의 유훈을 따라 상가 화합을 잘 유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
는 가르침을 남겨놓고 [불멸 2568년 3월 23일 새벽 5시] 입멸에 드셨습니다.
불멸 2568년 3월 24일
[ 한국테라와다불교 ]
[Sabbe saṇkārā dukkhā] ti [삽베 상카라 둑카]띠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사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은 둑카라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서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대해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사두사두사두_()()()_ |
첫댓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거해스님께서도 입적하시고 이제 도성스님께서도 입적하셨군요. 오래 전에 거해스님과 함께 수행했던 초기 시절이 아련히 떠올로 새삼 감회가 깊습니다. 두 분 스님의 공덕으로 이 땅에 더 훌륭한 가르침이 펴지기를 삼가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