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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길을 나서는 것 자체가 '모험'일 수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제(첫 날)는 상주의 남쪽으로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오늘은 북쪽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 뭔가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준비하고 싶어 아침에 나가는 길에 시장통을 기웃거렸더니, 가래떡을 팔기에 얼른 그 한 팩을 샀고,
도심을 벗어나려는데 왼쪽에 평화로운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아래)
그래서 무작정 그 쪽으로(연원동) 방향을 꺾었는데, '외서면'으로 가려했던 나에게 어디로 가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물으면 되는 일로,
운에 따르는 일정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이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을 것 같으니,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되고, 그 다음은 내 영역이 아니라는 자세이기도 했다.
아침이었지만 오늘도 마을엔 사람을 쉽게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저 아래쪽(내가 이미 지나왔던)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 보니,
경운기 한 대가 털털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주변 사진을 찍으면서 그 경운기를 기다렸고,
내가 있는 쪽에 다가오기에, 역시,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하면서 말을 걸었는데,
역시 경운기를 몰던 내 또래의 남자는,
"우리 마을에 전씨는 없는데......" 하더니, "이 산 너머 마을엔 몇 명의 전씨가 사는데, 거기 한 번 가 보겠소?"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지요. 근데, 어떻게 가야 하나요?" 물었더니,
오던 길을 돌아가도 되지만, "길은 좋지 않겠지만, 이 산을 빙 돌아올라가는 게 거리 상으로는 짧은데......" 하면서 그 쪽으로 가기를 추천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택하고 말았는데,
그게 정말 산 하나를 통째로 넘는 모험이 될 줄이야!
거기도 물론 '감골'이었다.
주변엔 어찌나 감나무들이 많은지,
이런 감들을 누가 다 먹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아니 들지가 않았다.
어느 정도 아스팔트를 따라 올라가는데 길이 콘크리트 포장으로 바뀌면서 좁아지더니, 두 갈랫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한다지?
산길엔 이정표가 없었고, 나는 그저 내 감(느낌)으로 왼쪽 방향으로 꺾긴 했는데,
내가 산으로 오르는 건지 마을로 가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상당히 가파른 길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기는 했는데,
아침부터 나는 정말 모험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오르는데, 한심하다는 생각이 아니 들지가 않았다.
하늘에 별이 총총한 것 같았고, 입에선 단내도 나다 못해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니,
어쨌거나 그 고갯길의 정상에 닿긴 했는데,(아래)
아, 내리막도 보통 경사가 아니었다.
물론 내가 내리막을 탈 때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으니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고개였지만,
콘크리트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오는 것도 보통 위험한 게 아니었다.
내려오다 보니 절도 있었고 암자도 있었는데, 그저 살짝 들렀다 나왔을 뿐이다.
결국 마을(남장마을)을 만났고, 겨우 사람을 찾아 물으니,
자신은 그런 사람을 모른다 했고,
마을의 조그만 수퍼마켓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물으니,
자신이 조금 전에 들렀다 왔다며, 거기에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을 알려줬는데,
마을이 제법 크다 보니 길을 찾느라 또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사람들마다 길을 알려주는 방식이 다 다르다 보니, ("조금만 가면 돼요." 하지만, 그 '조금'이란 개념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나는 그 마을을 서너 차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도 전씨 성씨를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하다가,
결국 그 집에 닿아 물었더니,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예." 하는 대답 만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에 산너머 마을을 지나 산을 넘어 왔다면서,
"다시 연원동으로 가려면, 큰 길로 나가 한 바퀴 빙 돌아가야 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그러면 거리가 상당히 머니,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세요." 하기에,
"제가 지금 그 산을 넘어오느라 죽는 줄 알았거든요?" 하고 고개를 젓기까지 했더니,
내가 '외서면'으로 간다는 말을 알고 있던 그 분은,
"외서까지 가려면, 여러 재(고개)를 넘어야 할 낀데, 지금 넘어온 재는.. 재도 아니라예." 하는 것이었다.
"예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도심에 가까운, 그래서 높이 상으론 정말 그리 높지 않을 고개였을지 모르지만, 그 경사나 험하기로는(내가 다녀본 경험 상으로도), 보통 고개가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험한 고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심정에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 고개를 다시 넘고 싶지는 않아, 나는 큰 길로 나가기로 했다. 빙 돌아서 아까 지나왔던 마을 쪽으로 가려고.
그런데 큰 길과 만난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는데,
굳이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까 지나왔던 마을로 또 돌아간다고? 하는 거부감에서였다.
그럴 바엔 새길로 가지! 하는...... 그건 내 성향이었다.
그래서 탔던 게 25번 국도로 '보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이 길도 보통 위험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그 길을 탔고, 가급적 그 옆길로 새 '농로'거나 '둑방길'을 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을 찾으러 왔는지, 들판을 싸돌아다니러 왔는지 모를 행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야, 오늘도 들판은 완벽하구나! 하는 약간의 설렘과 함께, 동영상도 찍어보고,
위험한 국도를 피하다 보니 거리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가다 보니 길이 끊기기 일쑤였다. (아래)
그렇게 25번 국도를 타고 가는 도중에 몇 차례 길도 잃고 돌아나오는 사이에 시간이 부쩍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겨우 '내서면' 면사무소를 지나면서야, 위험한 국도를 벗어나 지방도로 접어들 수 있었는데,
거기서도 '보건소' 주변에 있던 몇몇 노인분들과 그 얘기를 했는데,
"우리 마을엔 전씨가 아예 없는데......" 하고 난색을 표하면서,
"꼭 찾으면 좋겠는데......" 하고 안타까운(나를 안쓰러워 하는?) 시선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외서면'을 향해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러다 한 고구마를 캐는 여인을 만나 또 이런저런 얘기도 한 뒤(아래),
그렇지만 여기서도 역시 실패였고,
아닌 게 아니라 또 한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사실 이 고개는 길기는 했지만, 그다지 험하지는 않았다.
길도 좋았고(아스팔트)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아, 그저,
날 잡아 잡수! 하는 심정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자전거를 끌고 올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다 자신 만의 거리 개념과 생각이 달라, 길을 가르쳐주는 것마저도 다 다르니... 물론 그렇게 가르쳐 준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사실 나에겐 아까 아침나절에 넘었던 고개가 이 긴 고개보다 몇 갑절 더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지쳐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외서면'을 달리고 있었는데,
아, 고개를 넘었으니... 어디 적당한 곳(전망이 좋은)에서 요기라도 좀 하자. 하는 심정으로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오는데,
반절쯤 내려왔을까? 한 모퉁이에 차가 한 대 서 있었고, 내가 거기에 닿을 즈음에, 그 차의 주인인 듯한 사람(농부?)이 밭에서 나왔다.
그래서 나는 또 지나는 길에 한 번 더 그 사람에게 묻기에 이르렀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도 56년 생이라는 것이었고,
"내가 웬만해서 상주 토박이들은 다 꿸 수 있는데, 그 '전 00'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고... 우리 친구들이 우루루 한꺼번에 군대에 갔을 때가 76년이었는데......" 하다가, "우리 동기들 중에도 하사로 뽑혀 간 사람들이 몇 있을 텐데......" 하는 식으로 얘기가 이어졌는데,
"사실은 어제도 제가... 상주 시장통의 한 시계포에 가서, 그 주인이...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주셨는데도, 못 찾았거든요." 하자,
"아! 0 00요?" 하고 그 시계포 주인을 말하는 것이었다.(내가 시계포 주인의 명함을 받아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기 상주는... 그리 크지 않은 보수적인 고을이고 바닥이 좁기 때문에, 이름만 대도... 서로가(또래니까) 알고 있는 지역인데,(뭔가 한 바퀴를 빙 돌아 제자리에 온 느낌이기까지 했다.)
혹시 자기 친구 중 하사 출신에게(하사 동기들끼리는 기억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 한 번 물어는 보겠다며, 내 명함을 요구했지만,
명함도 없던 나는, 종이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정성이 그렇게 지극한데, 찾으면 좋겠는데요. 아니, 꼭 찾으세요......" 하긴 했지만,
"글쎄요, 그럴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져가는 기분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도 한 번 찾아 보고 있으니, 이젠... 여한은 없네요." 하고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다.
(그 분은 내가 가려는 방향에 대해 길을 상세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외서면'에서도 실패를 했고,
나는 고개의 내리막을 달려... '은척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쨌든 가을 들판은 여전히 절정이었고, 여기 상주 주변은 감 천지였다.
그러다 한 논두렁에서 요기를 했는데,
아까 동영상 등을 찍느라 디카의 밧데리가 많이 달아서 그런지 갑자기 디카가 먹통이 되어,
이제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어서,
내 모습이 들어간 사진은...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었다. (아래)
이른 아침에 샀던 가래떡은 아직도 유들유들했다.(위)
'은척면'과 '농암면'을 지나면서도 논에서 일을 하던 노인들께 두어 차례 더 물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고,
나는 이제 상주를 벗어나는가 보았다.
그렇다면 '사람 찾기'는?
그것도 어느 정도는 끝나가는 기분이었다.
사람(주민)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만나도 대부분이(아니, 다) 모르는 사람들이고......
그러고 보니, 어제 고속버스에서 만났던 서예가 노인으로 인한 '사람 찾기'가 어쩌면 훨씬 광범위하고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분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게,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보다... 효과적일 게 분명하니까.
나는 오늘 이 곳을 떠나면 그걸로 끝이지만(이 정도면 됐다 싶기도 했다. 내가 더 이상 뭘 한단 말인가? 상주를 온통 뒤집고 다닌다고? 그럴 생각도, 정열도 없다. '이쯤이면 됐다...' 싶었다.), 그래도 그 노인과 관계된 가능성(?)은 아직은 존재하니까.
그냥, 이렇게라도 해 보고 싶었고, 해 보았으니 됐다.
그 사람을 찾는 건, 어차피 운명이다.
운명이 가능하게 하면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걸로 끝이고......
그렇게 생각을 하니, 멍- 하긴 했지만, 어쩐지 후련하기도 했다.
그런 나는 이제,
오늘은 '문경'에 닿아야 할 텐데...... 하는 나그네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문경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 찾기'를 계속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저 멍- 하게 가을 들판을 달렸다.
오직 다음 행선지만을 향해서......
첫댓글 정말 애쓰셨습니다.
나는 오늘 서울에 갑니다.
김서방을 찾으러 가는 것은 아니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애쓴 걸까요?
마음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