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동 기자 10 (2)
이말동이 안 회장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빙긋이 웃었다. 안 회장의 얼굴에는 어떤 확신이 없었던 것을 눈치 챘다. “회장님 한자어는 상형 문자라는 걸 모릅니까?” “상형 문자라니?” 알 턱이 없었다.
“물체의 생긴 것을 골라서 만든 글자란 말입니다. 상형 문자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송나라 시대에는 원조(元祖)가 아니라 운조(云祖)라고 썼죠. 학자들에게 확인을 홰 보십시오. 확신 없는 지식은 외부에 내보이지 않는 것이 유리합니다. 가만있으면 반은 맞는데 안타깝군요." 하며 면박을 주었다. 안 회장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말동 기자는 가끔씩 탁현총의 화실에 드나들면서 그의 그림을 선정해 준다는 명목으로 용돈을 뜯어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화실에서 침식을 함께 하기도 했다. 탁현총과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이 나가지 않자, 이말동은 하숙비를 못 내 쫒겨나 회사의 사무실에 보따리를 싸들고 들어왔다. 회사의 낡은 소파에 이불도 없이 웅크리고 잠을 자다 새벽녘에 한기를 느껴 깨어 보면, 밤새도록 갈탄 난로에서 나온 매캐한 연기가 그의 콧구멍 언저리에 날아가지 않고 붙어 얼굴 전체가 연탄 배달원처럼 때 묻어, 그렇잖아도 궁상맞게 생긴 그의 얼굴을 더욱 측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집사답게 자신 있게 말했다. “내일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꽃을 보라. 하물며 사람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즐거운 얼굴을 했다. 그의 생김새는 중국 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장수 무송의 형처럼 등짝이 바짝 붙어있어 첫눈에도 체격이 빈약하고, 콧 잔등이 권투 선수처럼 내려앉고, 눈 가장 자리가 쳐져서 남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측은하고 처량한 얼굴을 소유했지만, 명랑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때때로 점심을 사주면서, 월급도 잘 나오지 않고 장래성도 희박한 직장을 다니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곤 했다. 그는 특히 식사 전 남이 보거나 말거나 두 손을 얌전히 모아 우렁차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곤 했다. “신앙 때문이죠. 신안의 힘이 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온갖 두려움이 없어져요. 김 부장님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영접하세요. 김 부장님도 내일 모래면 오십인데,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나쁜 죄들을 회개하고 구원을 얻으세요. 웬만하면 제가 집사로 활동하고 있는 교회로 나오세요.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부장님의 얼굴에는 여러 마리의 마귀가 날뛰고 있어요. 척 보면 압니다.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하며 나를 이세상의 악의 부류에 집어넣었다. 그때마다 나는 지난날 죄지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잠깐 왔다 가는 인생길에 뭐가 필요한 게 있습니까? 이 세상에 속한 것에 너무 집착 하지마세요. 욕심이 많으면 그 종말이 죽음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그런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런 이말동 기자, 아니 이 집사가 기특하고 신통하게 생각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용모가 비록 다소 흉측하게 생겼어도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날 때 이말동 기자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이 집사라고 불렀다. 이 집사가 더 인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말동 기자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상급자인 나와 그의 관계를 인격적으로 합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집사는 말이야. 신학 공부를 해서 훌륭한 목회자가 됐으면 싶어. 그래서 나처럼 타락한 사람도 구제도 하고, 우리 회사에 영혼이 타락한 사람이 어디 하나둘인가. 정 사장을 좀 보게." "그렇지 않아도 신학 대학에 가려 합니다." "오, 그래. 그럼 아주 잘됐어. 이 집사가 목사가 되면 나도 거기 나가지." 그 후 나는 그를 따라서 그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 목사로부터 안수 기도도 받고 종교에 대한 관심을 더하게 되었다. 그는 목사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우리 회사의 부장님으로 계시는데, 영혼 구제가 시급해서 모셔 왔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서‥‥‥‥" 하며 내 영혼의 상태가 긴박함을 알렸다. 목사 역시 그의 말에 동조했다. "아주 잘 오셨습니다. 이분도 지난번 분처럼 영혼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단 말이죠?" 지난번에 어떤 분을 모셔왔는지 모르나, 나를 가운데 두고 얼굴이 어쩌고 하는 말이 오가는 것이 기분이 썩 개운하지가 못했다. 목사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 집사님이 잘 보셨어요. 이분의 눈 안이 충혈된 것으로 봐서 ‥‥‥‥" 하면서 내 머리에 한 손을 얹었다. 그리고 꾹꾹 찍어 눌렀다. "이 더럽고 추잡한 마귀야.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썩 물러나가라! 썩 물러나가라!." 하며 나를 중죄인이나 된 듯 머리를 한 손으로 찍었다. 연약한 몸에 신이 들렸는지 그 악력이 대단했다. 종교만 달랐지 무당이 하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40여 년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 나는, 죄인의 입장에서 그 기도를 감사히 듣고 있었다. 이젠 나쁜 짓하지 말아야지. 열심히 교회에 나가야지. 교회에 손잡고 나와 찬송가를 기쁜 마음으로 부르는 젊은 부부를 보면서 때 묻은 영혼이 부끄러워 그들에게 말을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모두가 날개만 달려 있지 않지, 당장이라도 천당에 갈 천사들 같이 그들이 부러웠다. 특히 이 집사가 그랬다. "이 집사는 이담에 천당 일등 좌석에 있을 거야. 그땐 내 죄 많은 영혼도 수첩에 적어 놨다가 기억해 줘." 그는 내 말에 만족한 듯, "그야 물론이지요. 내게 잘 해주시는데 제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천사장이나 하다못해 말단 천사를 시켜서 빨리 뫼시죠." 하면서 당연히 천당 일등 좌석은 기정사실이란 듯, 나를 천당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 나는 시원시원한 그의 말이 고맙고 또 사무실에서 혼자 질이 나쁜 음식으로 숙식을 하는 그가 딱해, 내가 입던 내의와 담요 등을 세탁해 가져다 덮어 주기도 하고, 틈틈이 집에 데려다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 고생 하지 말고 맘에 드는 여자를 얻는 게 어때?" "생각중입니다. 그러나 학벌보다도 신앙심이 있는 여자라야죠. 이담에 목회를 할 텐데‥‥‥‥" "하긴 그래." "부장님이 추천해 주십시오. 용모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으면 되니까요." 하며 내 말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집사가 내게 즐거운 얼굴로
"부장님, 제게 배필이 한 사람 생겼는데, 세속의 때가 조금 묻었지만 조금만 회개시키면 되는 여자예요. 같이 만나 보실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날 저적, 이 집사는 회사 근처의 대폿집으로 배필이 된다는 여자를 데리고 나왔는데, 첫눈에 보아도 여염집 규수 같지가 않아 보였다. 얼굴 전체를 빨간색, 파란색, 까만 색깔이 도는 화장품으로 두껍게 도배를 해서인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 여자였다. 특히 쌍꺼풀을 크게 만들어 놓아선지 눈동자가 크기에 비해 줄어든 것 같았다. "인사하지, 우리 회사의 부장님이셔. 영혼이 문제지만 세속적으로는 아주 인자하신 분이지." 그는 나를 소개할 때마다 영혼을 거들먹거렸다. "예, 미스 송이라고 해요. 귀엽게 봐 주세요." 이 집사가 부연설명을 했다. "미스 송은 이래봬도 장래가 촉망되는 가수입니다. 비록 지금은 무명이지만, 일류 작곡가 선생으로부터 곡을 받고 오디션 중입니다. 밤무대 월드컵에 출연중이죠." "아, 그러세요?" 거기서 우리는 여러 병의 소주를 축냈다. 평소에 술은 마귀의 물이라고 말하던 이 집사도 그날은 분위기가 그래선지 꽤 취했고, 미스 송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밤무대에 서다 보니 손님들로부터 얻어 마시는 술이 이골이 나 내성이 붙은 것 같았다. "저, 화장실 갔다 올게요." 하며 뻔뻔스럽게(?) 한 시간에도 여러 차례씩 드나드는 미스 송이란 여자가 과연 목회자 후보자인 이 집사에게 배필이 될 것인가는 내가 보아도 문제가 있었다. 이 집사가 마침내 미국말을 해댔다. "부장님‥‥‥ 앞으로 제가 미스 송의 매니저를 할 모양입니다. 잘 아시는 밤무대의 영업부장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하며 미스 송의 얼굴에 혐오스런 술을 비벼 대면서 집사로서의 품위에 벗어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이 집사도 인간적인 데가 있어, 예수님만 믿는 것 같더니 ..... "예수님도 오늘 같은 날은 봐주십니다. 미스 송이 비록 때는 묻었지만 제가 회개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옛날 막달라 마리아 있죠? 남편 다섯 명과 살았던 지저분한 여자죠. 그 여자를 예수님이 회개시켜 구원을 주었지 않습니까? 예수님 발을 씻긴 게 신통스럽게 생각됐거든요. 이 여자 비록 밤무대 나가서 니나노 노래 부르지만 심성은 착한 여자랍니다. 사실 난 총각, 딱지 떼지 않고 총각으로서 희생하는 겁니다." 그 말에 미스 송은 화를 벌컥 냈다. 여자가 갖는 최후의 자존심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거 왜 이래? 날 뭘로 알아. 지가 언제 봤다고 그래. 내가 얼마나 때가 묻었길래. 내가 막달라 마리아란 말이야? 막달라 마리아란 년이 얼마나 지저분하게 놀았길래 아가리에서 튀어나오면 다 말이 되는 줄 알아!." 하며 거품을 물고 이 집사를 노려보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나는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그들의 술값을 치르고 술집 문을 나섰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