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F7월 다섯째 주 메시지 어떻게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
누가복음 14장 강해 일부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
말씀 누가복음 14장 1-누가복음 14장 6
요절 누가복음 14장 5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문요한이 지은 ‘왜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할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한다고 합니다. 그는 ‘바빠 죽겠다’고 하여 바빠야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쉬지를 못합니다. 쉬는 것을 불안해 합니다. 여행을 갈 때도 책을 가지고 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번아웃이 되고 공황장애 강박 장애를 앓습니다. 우리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안식을 주러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안식일 날 수종병 든 한 여인을 고친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날 여인의 수종병을 고치셔서 여인에게 참 안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고소하고자 하는 바리새인)
1,2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한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안식일에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식사 초대는 단순히 먹는 것보다 서로 사귀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면 한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사랑을 느끼고 가정과 같은 안식을 느낍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지도자는 예수님과 사귐을 갖기 위해서 초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초대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나 시험하기 위해서 엿보고 있었습니다. ‘엿보았다’는 것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철저히 감시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은 수종병 든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는 겉으론 정중하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그 속에는 예수님이 수종병 여인을 고치시면 예수님을 고소하고자 하는 무서운 칼날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수종병은 고창병이라고 불리는 병으로 근육과 혈관 속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부어오르는 병입니다. 의학에서는 부종(edema)이라고 하는데 부종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우리 몸이 피곤할 때 붓는 것이 가장 많고, 여성들에서 생리 주기에 따라 몸이 붓는 주기성 부종도 있습니다. 중증 질환으로는 우리 몸의 여러 장기 특히 심장병(특히 심부전증)이나 신장질환(신부전증, 신증후군), 간장질환 (간경화, 심한 간염) 등이 있을 때 전신상태를 반영해서 생기는 부종이 있습니다. 신장 질환은 콩밭에 알부민이 부족하거나 비타민이 부족한 병입니다. 예수님께 나온 여인은 심각한 중증 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병은 온 몸이 퉁퉁 붓고, 갈증이 심해지며, 계속해서 물을 먹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습니다.
이 병자는 예수님 앞에서 구덩이에 빠진 양처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안식일이지만 수종병으로 진정한 안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병자에게 안식을 주어야 합니다. 이 병자를 위해서 불쌍히 여기고, 이 병자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여인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그들이 여인의 병을 고치지 못하면 예수님에게 고쳐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병자의 형편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이 병자를 고쳐주면 고소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까지 구덩이에 빠지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을 주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회개시키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3) 물으셨습니다. 합당하냐는 율법적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심으로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더 율법적으로 합당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고자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안식을 주는 날입니다. 우리가 일의 노예가 되면 안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일을 놓고 쉼을 얻도록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쉬어도 안식이 없습니다. 육일은 일을 하고 쉬어야 안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일뿐이 아닙니다. 병도 안식을 빼앗아갑니다. 병이 있으면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날 병든 자를 고침으로 안식일에 그들에게 안식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전에 안식일 날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오른 손 마른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 날 삼십팔 년된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 날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 안식일이 병에서 안식을 주는 날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돈이 없어도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프면 안식하지 못합니다. 옷이 없어도, 잠자리가 없어도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의 물질이 있어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 안식이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어도 안식할 수 없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마음에 평안을 누려야 안식이 있습니다.
사망권세에 의해서 두려움과 슬픔이 밀려와도 안식이 없습니다. 죽음도 우리를 안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망권세에서 해방되어 생명을 누려야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짐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에서 자유하게 하고, 병에서 자유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부유케 하여 안식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하고 죽음에서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사망권세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원수를 발 아래 두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에수님 안에서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아들이 반역을 하는데도 편히 자고 일어날 정도로 안식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은 거친 파도가 치는 배위에서도 편히 잠을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병든 한 양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불의의 세력과 싸웠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날 병을 고치며 바리새인들의 고소를 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죽음을 무릅쓰고 바리새인의 악과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가르쳐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소는 사랑하며 여인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 날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진 경우 어떻게 하는가 물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철저하게 지키지만, 자신의 아들이나 자신의 소가 우물에 빠지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건져냈습니다. 이것이 당시에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들이나 소나 양이 우물에 빠진 것은 시급한 상황이고, 조금이라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게 되면 죽어 버릴 급한 상황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소를 사랑하여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아들이나 소는 돌보면서 왜 수종병 든 사람을 질병의 웅덩이에서 끌어내지 않는가 책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수종병든 자를 우물에 빠진 것처럼 시급한 상황으로 보셨습니다. 남에게는 시급하지 않겠지만 본인에게는 하루 빨리 고쳐야 하는 시급한 병입니다. 수종병 든 사람의 부모의 입장에서도 시급한 병입니다.
그리고 우물에 빠진 아들이나 소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물에 빠진 자는 누가 구해 주어야 합니다. 수종병 자도 스스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듯이 예수님이 수종병 든 여인을 치료해 주어야 나을 수 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자기 양이나 염소는 사랑하면서 자신과 관련이 없는 수종병 든 자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자였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위선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항상 따지기 좋아하던 바리새인들도 이번에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반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수종병든 여인을 고치신 에수님은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안식을 주셨습니까?
첫째는 예수님은 더 큰 힘으로 안식을 주셨습니다. 힘이 있어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병보다 더 큰 힘이 있어야 병에서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힘으로 병을 치료해주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실 수 있는 힘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안식을 얻으려면 죄와 사망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안식을 주실 수 있는 권세자이십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심으로 안식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날 그를 고쳐주시면 희생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에수님은 자신이 희생하면서 한 여인을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여인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결론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러면 우리 인간 편에서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주시는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첫째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나갔기 때문에 병에서 자유함을 얻고 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안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쉼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멀어질수록 피곤해집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이 안식을 얻는 길이요 떨어지는 것이 피곤해 지는 길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여인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렸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하시도록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주님이 치료해주시고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매는 것이 피곤한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쉼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힘써 맡기는 일.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쉼을 얻을 것입니다.
셋째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안식을 얻었으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배워야 안식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을 얻지 못한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요,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만이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울수록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론 참 안식을 얻는 길)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맡기며 겸손을 배우는 가운데 참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안식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고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갈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최유성 목자님의 아버님이 장로로 있는 전라도 영광의 염산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한국 동란 때 77명의 순교자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순교 교회입니다. 그들이 돌을 목에 매달고 빠지고 죽창에 찔리고 돌에 맞아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은 후에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으면서 나는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하면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원한 안식을 얻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안식을 누리다 죽어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UBF7월 다섯째 주 메시지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
누가복음 14장 강해 일부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
말씀 누가복음 14장 1-누가복음 14장 6
요절 누가복음 14장 5절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