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원명화
눈을 뜬 순간, 낯선 남의 집에서 잠을 깬 느낌이다. 잔뜩 찌푸린 날씨 탓인지 집안의 공기마저 을씨년스럽다. 이렇게 흐리고 추운 날 휑뎅그렁한 아파트에서 혼자 우두커니 지내고 있다는 게 외롭기 짝이 없다. 이제 겨우 돌아 온지 삼일인데 머릿속은 온통 일본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길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으니 며칠인가를 집안에서만 지냈다. 하늘도 맑게 갠 11월의 끝자락의 주말, 교토 근교에서 가깝다기에 부담 없이 따라 나섰다. 어미를 위해 멋진 계획을 세운 것이라니, 받는다는 것은 역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단풍이 거기 다 모인 듯 산 전체가 울긋불긋 아름답다. 습해서인지 나무나 돌들엔 온통 푸른빛의 이끼가 끼어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코네온천箱根温泉. 산의 초입부터 기슭까지 온천거리가 형성되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도쿄신쥬큐新宿에서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까지는 오다큐우센小田急線전철을 타는 게 좋다. 하지만 일반도로도 잘 정비 되어 있어 이를 이용하는 길이 오히려 수월하다기에 차량 한 대를 렌트해 이동했다.
숲은 어디를 가든 아름답게 생동하고 있다. 우거진 나무들을 제치고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이 어찌나 맑은지 땅바닥의 작은 돌멩이의 생김새까지 훤히 보인다. 기념이라도 될까하여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자 일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을 뭣 하러 찍느냐는 막내딸의 볼멘소리에 카메라를 슬그머니 가방 속에 밀어 넣는다.
일본은 어딜 가든 서비스 만점이다. 온천장에서의 만찬은 그야말로 왕족대접이다. 기모노 차림의 아주머니가 공손하게 무릎 끊고 앉아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준다. 겉으로 보기엔 60대 초입쯤, 그런 분에게 시중 받는다는 게 왠지 민망스러워 좀 거들려고 하자 당황한 듯 ‘뭐 불편하게 해드렸느냐’며 더욱 허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닌가. 손님 때문에 이 나이게도 기쁨마음으로 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면서.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 요리는 내 입맛에 좀 짠 것 같다. 먹고 나면 혓바닥이 얼얼한 게 소금에 절여진 느낌이다. 맛보아야 한다며 사위가 권하는 대로 이것저것 먹다보니 나른한 포만감이 든다. 베란다 소파에서 따끈한 차 한 잔을 음미하며 불 빛 사이로 흔들리는 하코네의 야경을 감상하며 나도 모르게 깊은 행복감에 젖는다. 지금 이 순간을 이대로 쓸어안고 살고 싶은 충동을 억제 할 수가 없다. 아~이것이 내 본래의 꿈이거늘, 전생이 짚시족이었던 것처럼 나는 늘 이렇듯 어디든 떠나려 하는가. 그 잔잔한 분위기가 이방인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유명한 관광지인데도 이외로 모든 게 정지된 듯 고요하다. 산마다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사람들은 그것을 조용히 즐긴다.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이 많은 것 같지 않은데도 밤이라서 일까 시냇물의 독주회가 제법 정겹다.
이튿날 아침, 온천장이 있는 숙소를 나와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파속에 휩쓸려 내려왔다.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하코네의 자연 속에도 사람의 생활공간이 촘촘히 들어있다. 제 멋대로 흩어진 돌무더기, 나무, 풀잎 등등이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서서 아무렇게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가게마다 관광 상품들로 즐비하다.
생각나는 이들에게 줄 선물을 몇 개 샀다. 하코네를 뒤로하고 후지하코네이즈富士箱根伊豆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경계 안에 있는 ‘아사호’ 주변 잔디위로 햇살이 사뿐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질리도록 투명한 하늘과 호수, 산과 숲의 어우러짐. 과식해도 좋을 공기를 실컷 마신 탓인지 머릿속이 맑아진 듯하다.
활화산으로 올라가는 아담한 1차선 도로 양 옆으로 우거진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그 나무터널의 속살은 아기자기 운치가 좋다. 대나무 잔나무가들이 우거져 마치 오랜 시간 사람이 찾지 않은 비밀정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차들이 몰린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시간이 길어지자 어린 손자가 먼저 울며 보챈다. 결국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그 신비의 활화산의 분화구는 보지도 못하고 하늘을 향해 내뿜는 연기만 바라보다 내려올 수밖에….
대여섯 차례 일본을 방문했지만 한 번도 이국을 느끼지 못했다. 단 하나, 서울 우리 집 베란다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붉은 십자가를 여기서는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많은 종료가 존재한다고 한다. 대부분 토속 종교에 불교가 가미된 형태이다. 종교가 무엇이든 설날이면 신사로 하츠모우데初詣를 드리러 가고 집안에는 조상을 모신 불단에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종을 울린다. 절대 신앙이라는 의식 없이 대체로 생활 관습으로 이어간다. 이익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여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이 종교에 매달려 치우치지 않은 것도 실리주의 기질 때문이 아닐까.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도 겉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국민 소득이 높다는 게 믿기지 않은 만큼, 집들도 조그마하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도 별로 눈에 뜨지 않는다. 먹는 것 또한 풍족하지도 않고, 도로엔 큰 차도 별로 없다. 그런걸 보면 우리네 삶이 더 풍요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당엘 가 봐도 반찬은 왜 그리 조금 나오는지, 우리에 비하면 거의 새 모이 수준이라고나 해야 할까. 어째든 돈 주고 사먹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일본을 편견 없이 바라보자면 한복의 아름다움만은 못해도 기모노 차림의 여인이 신기하여 되돌아 보인다. 기모노의 특징은 허리를 찡찡 감은 오비(일종의 허리띠)에 있다고 한다. 작달만한 일본인의 체구를 둘로 나누어 예쁘게 보이기 위한 눈가림의 미학이랄까. 수줍은 자태가 곱게 보이면서도 나막신을 신고 종종 걸음을 걷는 가녀린 여자들을 보면 왠지 불안하고 어색하게 보여 안쓰럽게 느껴진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떠난다는 그 자체가 그저 좋을 뿐.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나름대로 얻는 것이 많다. 새롭게 만난 신선한 충격들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잡고 놔주지 않을 것 같다.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동안 한식구로 데리고 살아온 딸 내외와 어린 손자를 두고 올 것을 생각하니 잠이 안 온다. 그래도 울지 말자. 가슴이 쓰리고 목젖이 막혀오고 두 눈에 눈물이 나올지라도 울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이별에 가슴 저린 사람이 어찌 나 하나뿐일까.
이별을 할 땐 짐승도 곤충도 식물도 터무니없는 외로움에 젖는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가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다. 첫 손자에 첫정이라 그 사랑이 너무나 깊고도 깊다. 손자가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다 한들 동행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그렇게 다독여 본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머리는 그렇게 타이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그리움의 상념에 젖어 그쪽 하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