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혁신은, 결국 낙오한다
■ '파괴적 혁신' 재정의 조슈아 갠스 교수
경영 구루인 크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1997년 내놓은 '파괴적 혁신(Disruption)'이라는 개념은 가장 널리 쓰이는 경영학 용어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단어는 크리스텐슨 교수가 처음 생각했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신규 진입자가 저가 제품을 통해 기존 시장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이런 틀에서 보면 애플도 에어비앤비도 '파괴자(Disruptor)'와는 거리가 먼 기업이 된다.
조슈아 갠스 토론토대 로트먼 경영대학원 교수는 크리스텐슨 교수가 내놓은 '파괴적 혁신'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한다. 그가 새로 내놓은 책 제목도 크리스텐슨 교수의 저서 '혁신가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오마주한 '파괴적 혁신의 딜레마(The Disruption Dilemma)'다.
그는 '기존에 기업을 성공하게 만들었던 것을 그대로 하는 일이 거꾸로 기업을 망하게 하는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기업이 '파괴적 혁신'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트렌드를 잘못 읽었거나 경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봤다. 시장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이에 맞춰 조직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구조적 혁신(Architectual Innovation)'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기존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와 블랙베리는 위험성을 깨닫고 대응책을 내놨다. 블랙베리는 터치가 가능한 블랙베리 폰 '스톰'을 내놨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스톰의 터치스크린은 오타율이 엄청나게 높았다. 과거 블랙베리에 최적화된 조직을 유지했기 때문에 아이폰에 비교해 형편없는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애플은 블랙베리처럼 성급하지 않았다. 아이폰이 처음 출시될 때 사용된 기술(터치 인터페이스, 모바일인터넷)은 이미 기존에 다른 스마트폰에서 쓰이던 것이었다. 애플은 이 기술을 결합해 뛰어난 완성도와 기가 막힌 상품성을 갖춘 제품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애플이라는 조직은 새로운 제품과 완전히 통합됐다(integrated). 디자인부터 서플라이체인 관리, 마케팅까지 다른 기업들이 따라올 수 없는 유무형의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장의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이 됐고 노키아, 블랙베리 등 기존의 자사 디자인을 고집한 기업들은 결국 밀려났다. 반면 아이폰의 '지배적 디자인'을 따라 스마트폰을 내놓은 삼성, LG 등은 새로운 강자가 됐다.
매일경제 더비즈타임스팀은 갠스 교수에게 '파괴적 혁신'과 그에 대한 대응법을 물었다. 그는 '파괴적 혁신'은 관리 가능한 것이며, 무작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블랙베리가 했던 것처럼 조급하게 단기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애플이 했던 것처럼 조직 자체를 통합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단어가 크리스텐슨 교수가 처음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쓰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 있다. 대체로 이는 '위대한 기업이 경영이 잘되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내가 '수요 측면'이라고 부르는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췄고, 다른 이론은 내가 '공급 측면'이라고 부르는 내부 조직의 파괴적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공급 측면의 파괴적 혁신(Supply Side Disruption)'이라는 단어는 내가 만들었지만 이 이론 자체는 레베카 헨더슨 하버드 경영대 교수가 만든 것이다.
―당신의 책에 나오는 핵심적인 개념이 '구조적 혁신'과 '공급 측면의 파괴적 혁신'이다. 이를 설명해달라.
▷한 제품은 구성요소와 그 구성요소를 결합하는 방법(이를 구조라고 부른다)으로 이뤄져있다. 혁신은 그 구성요소를 발전시키는 요소혁신과 구성요소를 결합하는 방법을 혁신하는 구조혁신으로 나뉜다. 공급 측면의 파괴적 혁신은 새로운 구조적 혁신이 시장에 진입할 때 발생한다. 기존 기업들은 그들의 기존 구조만을 고치고 요소혁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구조가 주류가 되면 기존 기업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책의 서문에 나오는 브리타니카 대백과사전 사례는 '기업들이 파괴적 혁신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아서 망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사례는 없을까.
▷파괴적 혁신에 의해 망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그렇다. 코닥이나 블록버스터(넷플릭스에 밀려 망한 영화대여 체인)도 새로운 혁신에 일찌감치 대응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
―당신은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직을 만들기보다는 기업 전체를 변화시키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별도 조직을 만드는 것이 실패할 때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결국 혁신을 방해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나.
▷경영진이 독립적인 조직을 선호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이 덜 파괴적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통합적인 변신은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고 실패할 경우 위험도 크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성공할 가능성도 더 높다. 경영진의 그런 충동은 이해하지만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기에는 통합적인 접근이 더 쉽다.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다 보면 기업의 최초 모습과 달라진다. 예를 들어 GE는 소비자가전에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이를 하이얼에 매각했다. 이는 기업을 지속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좋은 질문이다. 나는 기업들이 무한하게 오래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기업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중단기 수익을 포기해야만 한다. 둘 사이에 상충관계가 있다(존속하려면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의미).
―애플이 스마트폰 산업에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 것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이제 스마트폰 산업은 S커브의 끝에 있고 가격 전쟁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가까운 미래에 스마트폰 산업에서 파괴적 혁신이 다시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나.
▷파괴적 혁신을 가져오는 사건은 예측하기가 어렵다. 소비자가전 시장을 보면 20년 동안 살아남은 상품군은 거의 없다. 오직 예외가 텔레비전인데 이마저도 마침내 위기를 맞고있다. 지금은 가격이 하락하겠지만 만약 이 같은 현상이 또 발생한다면 10~15년 내에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애플이 해당 제품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춘 후에 움직였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이는 퍼스트 무버보다 패스트 폴로어의 전략이 유용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인가.
▷그런 경우가 있지만 일반화시키지는 않겠다. 애플이 성공한 것은 비전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쟁자들이 그전에 실수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스티브 잡스가 비범한 능력을 갖춰서였을 수도 있다. 확언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샤오미와 같은 중국 기업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삼성은 덩치가 크고 가족경영을 하고 있어서 변화가 어렵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샤오미는 구조적 혁신기업이 아니다. 샤오미의 제품 중 기존에 나온 것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스마트폰을 보면 다른 안드로이드폰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내 생각에 그들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격으로 경쟁하는 기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구조적 혁신을 도입했고 구조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빅 플레이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규모의 구조적 혁신이 가능했다고 본다.
―한국의 재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사업이 다각화되어 있다. 어떤 재벌기업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서플라이체인의 모든 부문에 참여한다. 사업 다각화는 이해 상충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파괴적혁신에 대한 대응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나.
▷기업이 가용한 자원에 대한 내부 경쟁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사업 다각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업을 한다는 것이 유연한 대응을 막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테슬라가 전기차 테슬라 3를 공개했다. 이것은 파괴적 혁신인가. 테슬라의 신차가 '지배적 디자인'이 될 것으로 보나.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테슬라는 아이폰에 버금가는 구조적 혁신이 될 것이다. 또한 지배적인 디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 자체가 (자동차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결합 측면에서 테슬라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과연 미래에도 사람들이 자가용을 보유하고 싶어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신은 파괴적 혁신은 관리되거나 예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기업이 기존 기업을 꺾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금이 많은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과 와츠앱을 인수해버렸다.
▷그렇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목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와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 스타트업의 목표다. 페이스북이 이 회사들을 인수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구글은 지주사 알파벳을 만들어 구글을 비롯해 여러 독립적인 기업을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이해 상충과 자원 배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나.
▷구글은 핵심 비즈니스인 검색과 광고 사업에서 너무 커져버렸다. 내 생각에 그들은 스스로를 복합기업(conglomerate)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한 가지 우려할 만한 점은 이런 구조에서는 계열사 간 요소들을 결합시켜서 나오는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 기업들도 파괴적 혁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일부에서는 이들이 기존 시장을 부수고 프리랜서만 늘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두 회사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고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들에게 이를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의 파괴적 혁신을 모두 이뤘다고 본다.
―당신은 책에서 리더십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게이트 창업자인 앨런 슈거트의 사례를 보면 좋은 리더십은 기업을 '파괴자'로 만들면서 동시에 '반(反)파괴자'로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 경제학자로서 리더십 전문가는 아니지만 파괴적 혁신을 관리하는 것도 기업 경영진의 능력이다. 좋은 리더는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 He is…
조슈아 갠스 교수는 토론토대학교 로트만경영대학원의 전략경영담당 교수다. 그는 호주 출신으로 퀸즐랜드대학교 경제학 우등 코스를 졸업했으며 미 스탠퍼드대학에서 케네스 애로, 폴 밀그롬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멜버른대학교 경영대에서 정보경제학 등을 가르쳤으며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 방문연구자로도 일했다. 2012년부터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생산성, 혁신 및 기업가정신 프로그램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아빠는 경제학자(Parentonomics)' '정보는 공유되기를 원한다(Information wants to be Shared)' 등이 있다.
■ '파괴적 혁신'의 희생자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기술이나 경쟁자가 등장해 '파괴적 혁신'의 위협을 느낄 때 대부분의 기업은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 기업 자원의 일부를 떼어내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신사업부, 사내벤처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기업은 파괴적 혁신의 희생자로 전락한다.
기존 조직은 과거에 성공했던 경영 방식에 길들여져 있어서 새로운 혁신에 대응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별도의 조직이 만들어지지만 인적·물적 차원에서 독립 조직은 기존 조직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 별도 조직이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결국 이 조직은 기존 조직과 통합돼야 한다. 이 경우 기존 조직에 흡수돼 파괴적 혁신에 대응할 능력을 잃게 된다.
1990년대 윈도로 운영체제(OS) 시장을 지배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이 부상하면서 넷스케이프의 도전을 받게된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빌 게이츠는 인터넷익스플로러(IE)를 별도 조직으로 만들어 엄청난 자원을 투자했고 넷스케이프와의 경쟁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일단 넷스케이프라는 '파괴적 혁신'을 차단하는 데 성공하자 IE는 결국 윈도에 통합된다. 현재 IE는 경쟁력을 잃고 구글 크롬의 도전으로 계속 시장을 잃어가고 있다.
갠스 교수는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 전체가 통합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을 느리지만 단단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일시적인 시장점유율 하락과 수익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통합적인 접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캐논이다. 포토리소그래피(반도체에 빛을 가해 사진을 찍는 것처럼 회로를 만드는 것) 장비 시장은 1965년부터 1982년까지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다. 이때마다 기존 기업이 몰락했고 새로운 기업이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바론 일본 캐논이다. 새로운 신기술이 도입돼도 캐논은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주요 플레이어로 남았다.
캐논을 연구한 경영학자들에 따르면 캐논은 항상 경쟁자가 최신 기술의 제품을 내놓고 나서 2년 정도 지나서 제품을 내놨다. 이 기간에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또한 여러 세대의 기술을 동시에 연구해 한 기술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도 막았다. 최고경영진은 항상 상품 개발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고 엔지니어들은 주기적으로 다른 분야로 순환근무를 시켰다.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용이 들었고 직원들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파괴적 혁신'에 대한 일종의 보험 역할을 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캐논은 이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