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의 사상적 통제수단"보도연맹"=
보도연맹, 즉 국민보도연맹 결성의 대외적 명분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좌익세력에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단체 이름도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뜻의 보도(保導)연맹으로 지었다.하지만 정권유지를 위한 사상범 통제에 목적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정부는 연맹에 가입하는 전향 좌익에 대해선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은 물론 생활지원까지 한다고 선전했는데 이는 기존의 좌익 뿐아니라 그 잠재세력까지 밖으로 끌어내 통제 아래 두겠다는 전략이었다.즉 '탄압'만으로는 좌익척결에 한계를 느낀 이승만 정권이 보다 고차원의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그러나 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의 순수한 창작품은 아니었다.
'1937년 일제는 한국에 사상보호단체인 대화숙(大和塾)을 설치,사상범을 무조건 가입시켰고 이듬해 '사상보국연맹'이란 기구를 만들었습니다.곧이어 중앙조직으로 조선방공협회를 조직해 각 도에 방공협회를,그 아래에 지부를 두고 사상범을 통제했습니다.사상범 통제였지만 독립운동의 싹을 자르겠다는 목적이 있었죠.국민보도연맹도 이의 모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교수의 설명이다.
즉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을 이승만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그대로 모방했다는 말이다.
'간사장'이라는 연맹원 대표 자리에는 전향한 좌익을 앉혔는데 그들 모두는 검.경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인물들이었다.예를 들어,'부산남지구 간사장 김일립 씨의 경우 평소 사찰계 직원들과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아주 친밀한 사이였다'고 당시 이를 지켜본 전직 경찰관 B씨는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의도했던 만큼 조직확대는 쉽지 않았다.연맹가입은 좌익으로 낙인찍히는 일인데 자진해 가입 도장을 찍을 사람이 없었다.실제 좌익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가입됐고 가입을 거부하면 폭행과 고문이 가해졌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정부는 마침내 읍.면.동 등 일선 행정기관에 인원수를 할당했다.할당된 인원을 채우기 위해 경찰과 행정기관들은 주민을 상대로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고,비료와 밀가루 등 배급을 미끼로 가입을 유도했다.이로 인해 좌익과는 전혀 무관한 농민 등이 대거 가입됐는데,연맹원 대다수는 결국 이런 사람들이었다.경남 양산 석산리의 경우 평범한 시골마을에 불과했지만 전체 세대수의 3분1 이상이 가입됐다.
>부산일보에 올라온 기사를 대충 요약해 봤습니다.
지금 현재 보도연맹 대학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지역인
부산,경남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대략 30여개의 유족회가
결성되어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는 지난 8일에도 대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참히
학살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충격적이에요..ㅜㅠ..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어도 서로 이렇게 죽이고 싸우고..그러는데
서양의 다른나라처럼 다인종 국가였으면 난리가 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