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야 해변을 떠나서 우리가 가는 곳은 터키의 올림포스 산이라고 부르는 타탈리 라는 산이다.
이 산은 2,365미터의 높이로 안탈리야에서 해안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서 산길로 20여분 버스로 올라가면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차창에 비치는 안탈리야의 해변
타탈리 산으로 가는 길...
여자들과 아이들도 같이 타서 케이블카가 철탑에서 덜컹커릴 때마다 소리가 요란스럽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무조건 좋아하면서 웃어준다
터키의 지중해 쪽 해안은 로마시내이전부터의 유적들과 휴양지들이 골짜기마다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유적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시간 관계상 케이블카를 타고 타탈리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날씨가 맑을 때는 이런 모습이라고...(인터넷에서)
날씨가 맑을 때는 그리스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가 올라갈 때는 구름이 있어서 주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케이블카를 탈 때는 안개가 끼지 않는 겨울에 올라오거나 아니면 아직 구름이 생성되지 않는 아침 일찍 올라오면 멀리까지 볼 수 있지만 낮에 오면 구름 때문에 구름만 보고 갈 가능성이 많아진다.
케이블카를 타는 것도 옵션인데 기껏 타고 올라가서 안개만 보고 온다면 얼마나 허무한가?
우리도 그리스쪽 시야는 전혀 확보가 되지 않고 안탈리야 쪽의 능선과 하늘만 조금 보였다가 다시 구름에 가려지고 하는 현상만 반복이 된다.
구름이 바람 때문에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그 쪽만 하늘이 보인다.
옷은 이렇게 입었어도 사진들은 열심히 찍는다...ㅎㅎㅎ
사람을 튕겨 올리는 놀이기구...나보고 한 번 타보라고 권한다.
타탈리는 산 이름이다...2,365미터로 터키에서 제일 높은 산은 노아의 방주와 연관이 있는 아라랏산으로 5,185미터로 터키에는 2천미터가 넘는 산이 꾀 많이 있다고
세계의 도시와의 거리를 표시한 기둥
꼭대기 광장에는 세계의 유명 도시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8,121㎞로 표시되어 있는데 아시아 쪽의 도시는 서울밖에 없다.
이것을 보더라도 터키가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위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이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며 K-POP노래를 즉석에서 부른다.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가운데가 한국 사람
건물에 있는 포스터...겨울에는 이런 산이 되는가 보다.
사진을 찎자고 하니 포즈를 취해주고...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서 메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간이 배밖으로 나온 여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보는 지중해
타랄리 산꼭대기에는 사람을 튕겨 올리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외국여자는 겁도 없이 그것을 즐긴다.
그리고 이곳 꼭대기는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건물에는 스키를 타는 사진도 보인다.
그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이 산도 등산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터키의 이곳 등산을 하는 광고와 사진들도 보인다.
타탈리 산 중턱에는 가스가 나와서 밤낮으로 꺼지지 않는 불들이 있어서 키메라라고 부른다고 하며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야간에 구경을 하러 간다고 한다.
참고로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은 동물로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인데 입에서 불을 뿜는 동물이다
타탙리 산 중턱에 있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인터넷)
밤에는 이런 모습이라고
구름 때문에 지중해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터키의 올림포스 산에 올랐다는 증거로 사진을 남기고 터키 여행의 핵심중의 핵심인 파묵칼레를 보기 위해서 안탈리야를 거쳐서 다시 토로스 산맥을 넘어 데니즐리로 향한다.
안탈리아로 가는 길...우리가 갔던 산은 구름 속에 숨어 있다.
안탈리아오 오는 길에 바닷가에 있는 예쁘게 생긴 도시
데니즐리(파묵칼레)로 가는 길의 안탈리아
소나무 숲길
안탈리야에서 토로스산맥을 들어가는 곳인 안탈리야 뒷산은 소나무 숲이 울창한데 이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서 토로스 산맥으로 들어선다.
산맥을 넘어가는 도중에는 대리석을 캐낸 흔적들도 보이고 대리석을 캐는 곳도 보인다.
대리석을 캐낸 자국이 있는데 지금도 캐내고 있는지...
산맥을 넘어서 고원에 보이는 광경
양을 치는 사람들의 집 가끔 이런 집들이 보인다.
그림 같은 마을들과 정겨운 미류나무
산맥을 넘자 지중해의 풍경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안탈리야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길은 이 길 한군데 밖에 없어서 이 코스로 가는 여행객들이 거의 반드시 들러서 점심을 먹는 곳이 있는데 우리도 여기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시간이 세시 반이다.
이 식당이 인터넷에서 많이 보이는 식당이다.
데니즐리로 가는 길의 풍경들
다시 두 시간 반을 더 달려서 데니즐리라는 도시에 도착했는데 도시 외곽에 햇빛 속에 희게 빛나는 석회석이 멀리 보인다.
파묵칼레에 도착한 것이 정확하게 여섯 시로 이곳을 보고 어둡기 전에 숙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그 많은 시간을 달려 와서 두 시간도 보지 못한다고 하니 속이 상한다.
가이드에게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 웃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을 주어도 30분 전에 구경을 다 하고 와서 그늘 속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고생스럽게 버스를 하루 종일 타면서 ‘여기도 돌무더기 저기도 돌무더기네’ 할 것 같으면 왜 어렵게 여행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멀리 파묵칼레의 석회석이 보인다.
앞에 점같이 생긴 것은 길가에 있는 유도화 꽃이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서... 돌을 파낸 자국이 궁금해서
매표소에서 기다리면서....건너보이는 도시가 데니즐리다.
여기도 물이 흘렀던 자국이 보이고
이곳이 왜 휴양의 도시가 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경치이다.
일단 건너편에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히에라폴리스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터키 사람들이 한국을 형제국가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인터넷에는 그 이유를 설명한 글과 그 것이 허구라는 것을 설명하는 글들이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읽어보고 각자 판단해 보시기를....
‘투르크’ 라는 이름은 고구려와 동시대에 있었던 우리가 돌궐의 터키식 발음이다.
돌궐은 6세기 중엽 알타이 산맥부근에 일어나서 2세기 동안 몽골고원에서 중앙아시에에 걸친 지역을 지배한 터키계 유목민족으로 6세기 말에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동서로 분열이 되어서 동돌궐은 8세기 중엽에 위구르에, 서돌궐은 7세기 중엽에 당나라에 망했었다.
고구려도 서돌궐과 비슷한 시기인 7세기 중엽인 668년도 당나라에 망했는데 그 당나라와 수나라에 대항하면서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다.
그 서돌궐이 망하면서 그 사람들이 서쪽으로 이동을 하여 아나톨리아반도에 정착을 하면서 나중에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터키는 조상들이 이동해온 역사와 자신들이 터를 잡고 사는 곳의 역사를 같이 배운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조상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고구려를 배우게 되었을 것이고 고구려의 후예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여 형제의 나라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6.25 전쟁 때는 15천명을 파병하여 741명은 전사, 2068명은 부상, 163명은 실종, 244명은 포로로 붙잡혔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서 한국을 위해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터키는 미국, 영국, 케나다 다음으로 많이 파병을 하였는데 전사자는 미국이 36,940명, 영국이 1,078명으로 세 번째로 많이 전사자가 난 것은 중공군이
참전을 하면서 중공군과 백병전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래 터키는 전투병력으로 참전을 하지 않았으나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인해전술로 밀고 오는 중공군들이 감당이 되지 않자 백병전에 강하고 용맹하기로 이름이 난 터키군에게 참전할 것을 부탁하게 되었고 정치적 협상을 거쳐서 터키군이 참전하였는데 터키군 한 사람이 살상한 상대방이 40여명이 넘을 정도로 전투력이 대단해서 터키군이 있는 곳에는 중공군들이 피해갔다고 한다.
터키가 한국전에 그렇게 많은 군인들을 파병하게 된 것은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은 소련과의 역사적 관계 때문이기도 하고 그 당시에 터키가 처한 국제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자기네 나라의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터키 군인들은 수원에 ‘안카라’라는 천막학교를 만들어서 전쟁고아들을 먹여가며 가르쳤으며 정전 60주년을 맞아 이곳 안카라라는 천막학교에 있던 전쟁고아였던 ‘아일라’라는 여자아이를 찾아서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이 2013년도에 방송되기도 했다.
보신 분도 있겠지만 한 번 찾아서 보시도록.... 가슴이 먹먹해 절 것입니다.
터키사람들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각별하게 생각하지만 한국은 터키와 터키 사람들을 그렇게 그 사람들만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2002년 월드컵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이제 짝사랑은 그만 하자’ 면서 분노를 하자 한국 유학생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붉은 악마에게 전달을 하자 붉은악마가 4강에서 한국과 경기를 할 때 태극기보다 더 큰 터키의 대형국기를 펼치고 터키국기와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한국과 터키를 같이 응원하자 분노가 감동으로 바뀌고 그 때 터키를 여행하고 있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호텔비와 음식점에서의 음식 값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터키 사람들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무조건 반가워한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한다.
8천키로미터가 넘는 곳에 우리나라와 우리들을 형제처럼 대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인터넷에서는 역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우리나라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등의 글들도 있지만 실지로 터키에서 터키사람들은 우리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특별하게 생각해준다면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지 말고 같이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맞다.
첫댓글 컴퓨터로 봐 주세요...내 블로그에 있던 사진들을 크게 하는 작업을 공을 들여서 하였습니다.
ㅎㅎㅎ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내가 터커가서 알었습니다.
터커가 형제국가라는 것을
고구려 시대에 돌궐국가로 형제의를 맺었다고
자기들의 조상국가라고...
역사 책에 누누히 기르치고 있다고...
캄짝놀랐어요, 2002년 4강시절 터키와 축구게임을 할 때
우리는 터키를 이기라고 응원했는데
터키 사람들은 한손에 터키국기 한손에는 한국기를 들고 응원하고,
누가 승리하던 좋다고...
6.25전쟁시에 파병에 다시한번 감동받고 있습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 기차역 앞에 석가탑이 있습니다.
육이오때 사망한 터키군의 명단이 돌에 적혀있습니다.
우리의 우방 . 형제국 이고
귀네코리아 수드코리아 라고 물어보구요. 수드코리아 (남한)
라고 하면 무척 반가워한답니다.
귀네? 수드(sud) 꼬레아는 마니 들어보앗지요.
엊그제 길동무 천황산에서 우리도 해발 1020까지 50인승 케이블카를 탓습니다.
저 것과 바슷하네요.
여행 잘 하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