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태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실장
윤석열 정권이 총력전을 펼친 2030 세계무역박람회(엑스포)의 부산 유치전이 참패로 끝났습니다. 1차 투표에서 최유력 후보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유치 확정(전체 투표의 3분의 2)을 저지한 뒤 2차에서 역전승을 노린다는 ‘장대한 꿈’을 품었으나 ‘헛된 꿈’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예견된 실패, 그나마 꼴찌 면한 것이 다행인가
28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37회 총회의 2030 엑스포 개최지 표결 결과, 리야드가 119표를 얻어 1차에서 개최지로 결정됐습니다. 부산은 29표로 2위, 이탈리아의 로마가 17표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투표에 참석한 나라는 모두 165개국이었습니다. 리야드가 1차에서 3분의 2인 110표를 훌쩍 뛰어넘으며 바로 유치권을 따냈습니다.
2위인 부산과는 무려 90표나 차이가 났습니다. 부산과 로마의 표를 합쳐도 46표에 불과합니다. 이런 결과만 봐도 1차 투표에서 리야드의 유치 확정을 저지하며 2위를 차지한 뒤 2차 투표에서 3위 표(로마)를 흡수해 대역전을 이루겠다는 윤 정권의 전략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견된 실패, 윤 정권만 모르고 누구나 다 짐작했던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전략에 따라 두 번이나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는 등 총력전을 진두지휘한 윤 대통령도 국내외적으로 체면을 크게 구기게 됐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2위라도 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오일 달러 탓, 전 정권 탓은 누워 침 뱉는 책임전가
윤 정권은 이번 실패의 원인을 오일 달러의 힘과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늦게 시작한 유치 활동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전인수이고, 전형적인 책임 전가의 논리입니다.
오일달러의 힘이란 쉽게 말해,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으로 다른 나라를 구워삶았다는 비난인데 상대 나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실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산 엑스포를 유치한다고 사업하느라 바쁜 삼성, 엘지, 에스케이 등 재벌 총수들을 줄줄이 끌고 다닌 나라로서 할 얘기가 아닙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의욕적으로 벌이고 있는 네옴시티 프로젝트 참가 등으로 제2의 중동 특수를 일으키겠다고 하면서 사우디가 거북해할 말을 하는 것은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우디보다 유치전에 늦었다는 것도 틀린 말입니다. 모든 잘못을 문재인 정권 탓으로 돌리는 윤 정권의 고질병이 도진 것인지 모르지만, 문 정권도 윤 정권 못지않게 부산 엑스포 유치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논란이 컸던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을 무리하며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임기 말인 2022년 1월 두바이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두바이를 방문해 유치전을 펼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극화하는 국제질서에 반하는 가치 외교가 낳은 실패
제가 보기에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오일 달러의 힘도, 유치 활동 착수의 지연 탓도 아닙니다. 오히려 다극화하는 국제 흐름을 잘못 읽고 미일 추종 외교, 가치 외교에 몰빵한 윤 정권 외교의 잘못에 원인이 있습니다.
최근 유엔에서 이뤄진 주요 결의안의 표결 결과를 살펴보면, 다극화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얼마나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안 표결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2022년 2월로 찬성 141, 반대 7, 기권 32였습니다. 두 번째는 2022년 10월로 2월과 비슷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세계가 한목소리로 러시아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하는 국가는 불과 48개 나라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영연방국가, 유럽연합, 그리고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입니다. 명분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하면서도 국익 면에서는 각국이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에 이-팔 분쟁과 관련해 채택된 ‘가자 사민의 생명 보호와 인도 지원에 관한 유엔총회 결의’는 다극화의 흐름을 더욱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해 불과 14개 국이 반대했고, 아프리카·동남아·남미 등 대다수의 개발도상국(글로벌 사우스)이 찬성했습니다. 심지어 주요 7개 국의 일원인 프랑스도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엑스포 유치를 의식했는지 기권했습니다.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에 표를 던진 나라 수와 가자 시민의 보호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나라 수는 대체로 일치합니다. 또 부산과 로마를 택한 표와 러시아 제재에 참여한 나라 수도 엇비슷합니다. 저는 이런 일치가 반드시 우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윤 대통령이 유치 결정투표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경제외교를 한다고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사우디에 경제협력을 구걸하는 한국이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남긴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윤 대통령이 한 달에 1번 이상 외국에 나가고 코피를 쏟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 수십 개 나라의 정상을 만났는데도 왜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는지, 윤 정권은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다극화 흐름과 동떨어진 미일 추종 외교, 실리를 저버린 가치 외교가 우리나라를 ‘국제적인 왕따’로 만든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지만 실패에서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부산 엑스포’ 유치전 참패, 윤석열 외교의 필연적 결과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