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뉴스들이 싫어서 TV 다큐멘터리
또는 지나간 사극들을 주로 본다.
조선왕조시대에 가장 드라마틱했던 적은
아마도 영.정조 시절이었을것이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혜경궁
그리고 그의 아들 정조 이 산.
가장 빈번하게 제작된 모티브.
봉건시대 국왕중에 효심 깊고
민생 과학 창달에 관심 많았던.
이 즈음 열 살에 입궁하여
15년 동안 두번이나
국왕의 承恩을
거절하다가 서른되어 왕자 공주를
차례로 낳아 빈 에 오른 의빈 창녕성씨.
드라마 상 인물이 아닌,이름까지 정사에 전해오는 여성이었다.
정조의 사랑이 끝없다가
그 왕자(문효세자)가 3살에,
공주는 돌도 안되어 죽어
그 해 의빈성씨도 나이 서른셋에 요절하니 그 임금의 상실감 이란.
결국 오십 안된 정조가
서기 1800년에 의문사 했다.
이후 200년간의 조선역사는
세도정치 민란 쇄국정책 외세침탈
을사늑약 동족상잔 의거 군부 ...
아직도 오늘도 현재진행형
역사에 가정법 은 없다지만
그 임금이 좀 더 통치했다면
문효세자가 정통즉위했다면
의빈성씨가 세자를 키웠다면
어제 오늘 내일 같은
민초들의 힘듦은 없었으리라
(저 두 모자는 지금의 용산구에 안장되어
효창원 이라 명명되었다)
이제 효창원 묘들은
일제강압기에 강제로 서삼릉 이전.
그 이름 만 효창공원 으로 남았다
한 많은 선조들
죄 없는 시민들은
오늘도 나라걱정에 밤을 샌다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3.24 출석부 / 옷소매 붉은 끝동
향적
추천 2
조회 266
25.03.24 00:57
댓글 51
다음검색
향적님~
쪽지를 좀 봐주십시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