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31]
L이라는 삼수한 대학 입학 친구가 있었다. L은 연세대 경영학과 71년 입학생 중에서 다단계 인생으로 점철된 S와 더불어 두 명의 천연기념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약간 이국적으로 생긴 모습이었다. 얼굴이 특이하게 터키인이나 파키스탄 인처럼 보였고, 키가 작달막했다. 대구 계성고 56회 졸업과 연대 경영학과를 나와 해병대 장교로 군 복무했고, 제대 후 대우 중공업과 자동차보험회사에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벌과 나이에 비해 진급이 이상하게 늦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술친구이며 목욕파트너가 되었다. 목욕친구라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심심해서 나는 혼자 목욕을 잘 하지 않는 괴벽이 있다. L은 목욕을 일본인 이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목욕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L을 불렀고, 그는 선뜻 목욕탕에 동행해 주었다. 우리는 탕 안에서 이런 저런 세상얘기를 나누었고, 목욕이 끝난 후에는 치킨 집에 가서 호프 한잔을 했었다.
대학시절에는 그는 아버지가 대구 중앙통에서 가장 큰 맞춤양복점을 했기 때문에 지방 하숙생 중에서는 여유 있는 생활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운이 나쁘게도 대학 신입생 때 소매치기에 몰려 경찰에 고문까지 당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그는 진짜 범인이 잡혀서 무죄로 풀려났지만 사건이 신문에 까지 보도되어 마음의 상처가 컸다. L을 고문한 형사는 L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L은 이를 거부해 결국 파면 조치되었다. L은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술을 탐닉했다. 한번은 술에 떡이 되어가지고 거리를 헤매다가 취객을 상대로 전문털이를 하는 깡패에게 머리에 벽돌로 “뻑치기”를 당해 의식을 잃기도 했다. 운이 없었다면 저 세상으로 갈 뻔했던 것이다.
그는 술에 만취해서 집에 가면 마누라를 두들겨 패기도 했다. 그의 처는 다소 정신이 미약한 점이 있어 살림살이가 신통찮았다. 따라서 그녀에 대한 평소에 쌓여있던 감정이 한 번씩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학교공부를 하지 않아 그의 속을 많이 썩였다. 또한 그는 그가 다니는 보험회사의 실적에 대한 엄청난 강박관념과 스트레스로 인해 술만 먹으면 분노와 괴로움이 화산처럼 분출되는 것 같았다. 그는 나와 같이 있을 때는 더없이 선량한데 그의 처와 외아들에게는 이상하게 감정의 통제를 못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특히 술을 먹었을 때는 그 강도가 심했다. 마침내 그의 처는 신경이 쇠약해져 친정에 내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그는 불광동 산골짜기에 있는 90년 중반 당시 2천만원의 적빈(赤貧)한 전셋집에서 아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의 처가 없다보니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어머니는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몸이 반신불수이다 보니 혼자 집에 있을 때 대소변을 아무데나 배설했다. 그가 집에 오면 가장 큰 일이 어머니가 대소변을 배설한 이불을 세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의 병수발 일이 너무 힘들어 동사무소와 다니는 성당에 도움을 요청 했다. 그 후부터 무료 간병인이 가끔 와서 어머니를 돌보아 주곤 했다.
그는 보험회사(제일화재)에 다니다가 퇴직하고는 프리랜서로서 계속 보험영업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래 전부터 주식에 빠져 보험에서 힘들게 벌인 돈을 전부 주식에 쏟아 붓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투자한 주식 가격이 오르면 그는 나를 불러내 술을 사주기도 했다. 주식도 마약처럼 중독증이 있다고 하는데, 그는 깊이 중독된 것 같았다. 그는 주식에 대한 특별강의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책을 사다 보는 등 연구도 엄청나게 했다. 낮 2시까지는 주식투자를 하고 그 후에는 보험영업을 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무리에 무리를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아내가 없는 처지라 집안청소며 밥과 반찬 장만, 세탁, 설거지 등을 도맡아 처리해야만 했다.
병 때문인지 그의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등이 가렵다고 긁어 달라” 했다. 그는 잠을 자다가도 어머니가 등이 가렵다고 잠을 깨우면 일어나 등을 긁어 드려야 했다. 그러나 고된 노동에 지쳐 잠이 항상 부족한 L은 등을 긁다가 짜증이 나면, 욕을 하며 어머니의 등을 세차게 때리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술을 자주 같이 마시던 같은 J보험회사의 상관(부장)인 그의 고교동기가 있었다. 보험회사의 실적집계를 하는 가장 중요한 월말 어느 날 둘이서 신세한탄을 하며 술집에서 술을 잔뜩 마셨다. 그러난 그것도 부족해서 가게에서 술을 사가지고 여관에 들어가서 또 술을 먹기 시작했다. 열이 나는지 두 사람은 옷을 다 벗고 술을 먹었다. 그러다가 술만 먹으면 주사(酒邪)가 심한 동기가 L의 머리를 주먹으로 세게 쳤다. 머리가 금세 부어올랐다. 주먹이 계속 날아왔다. 해병장교 출신인 L도 화가 치밀어 오르자 주먹으로 상대방의 눈을 강타했다. 상대의 눈이 시커멓게 퉁퉁 부었다. 그리고는 둘 다 블랙아웃(Black out)상태가 되어 치고받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둘의 모습은 마치 외계인 같았다. 평상시 보험실적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던 두 사람이 술만 먹으면 이런 모양으로 가끔 폭발했던 것이다. 회사에 일이 있어 출근을 하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엉망이된 L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한번은 나와 같이 명동 뒷골목 백반 집에서 술을 먹었는데 그날따라 L이 약하다는 막걸리를 마셨다. 둘이서 대취해서 헤어졌는데 다음날 L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근하려고 하는데 신발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마 그는 그날 신을 잊어버리고 귀신같은 몰골을 한 채 맨발로 집에 들어갔던 것 같았다. 바지도 찢어지고 엉망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부재한 극심한 외로움과 스트레스 때문에 불광동 그의 집 인근에 있는 호프집에 퇴근하면서 종종 들렸다. 그는 거기서 주점 아주머니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주점 아주머니는 매상을 올려주는 그를 위해 그의 기분을 맞춰주고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L은 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골목을 걷다가 돼지갈비 양념냄새나 삼겹살 굽는 냄새가 솔솔 나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특히 햄 통조림을 좋아했다. 그만큼 고기를 좋아하더니 어느 날 그의 항문에서 혈변이 나왔다. 검사를 해보니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그가 암에 걸린 것은 그동안 육체적으로 너무 고달픈 생활을 했고, 정신적으로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으며, 평상시 기름기와 콜레스테롤이 많은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너무 좋아한 데서 기인한 복합적인 결과인 것 같았다.
그는 주식을 하면서 많은 돈을 날리고 괴로워했는데 그 점도 원인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대장암에 걸리고 난 후에 그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불쌍하고, 본인의 투병의지도 강해 항암치료를 위시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회복하려고 애썼다. 그는 집 뒤에 있는 야산에 가서 모기장을 쳐놓고 오랜 시간 단전호흡도 하고, 경락(經絡)을 자극한다고 맨발로 약수터까지 물동이를 가지고 걷는 등 온 정성을 기울였다. 안현필의 안식된장과 다시마등 해조류, 콩으로 만든 음식과 과일, 야채 등을 오랫동안 먹기도 했다. 건강에 관한 책이란 책은 빠짐없이 구입해 읽고 실천했다. “물 따로, 밥 따로 음양요법”이란 건강비법을 읽고 자연치유력을 높이기 위해서 물과 식사를 시간적으로 조절해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도 허사였다. 그가 죽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기가 살아 있을 때 자기 손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을 아주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반신불수로 불행한 인생을 살고 간 어머니에게 제대로 봉양을 하지 못한 죄책감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죽고 난 후에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극도로 쇠약해 져 갔다. 체중이 50KG이하로 내려갔다. 목욕을 워낙 좋아 한 그가 나와 같이 목욕을 하자고 했을 때, 그의 모습은 마치 해골과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에게 물장난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한 마지막 목욕이었다. 그 목욕이 끝나고, 이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그가 나에게 이 세상에서의 나와의 마지막 이별주를 마시기를 원했다. 나는 그의 소원대로 목욕탕 가까이 있었던 서대문구 충정로 종근당 제약 본사 뒷골목의 갈치 백반 집에 그를 데리고 갔다. 그 자리를 빛내기 위해 나는 평소 친교가 있던 이씨조선의 마지막 황손이며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씨를 불렀다. 비둘기집을 불러 한 때 히트시킨 가수 이석씨가 자리에 합석하자, 백반 집 주인은 식당에서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귀한 동동주 한 병을 선물로 내놓았다. 세 사람은 갈치조림과 부침개를 안주로 동동주를 나누어 마셨고, 이석씨는 자신의 히트곡 비둘기집을 오리지널 사운드로 L을 위해서 불러 주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이석씨가 노래를 부를 때 L의 눈에서 이슬이 맺히는 것이 살짝 보였다. 이 술좌석은 그의 지상의 마지막 술잔을 위한 자리였다. 일본말로 하면 마지막 술잔은 가나시이 사케(슬픈 술)였다.
그가 죽기 전 그의 머리맡에는 고교생인 그의 철없는 아들이 의자에 앉아 천주교의 임종기도문을 끝없이 읽고 있었다. 그는 혼수상태였는데 간혹 정신이 돌아오면 나에게 술을 끊으라고 충고하였다. 그는 마침내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남겨두고 고단했던 이 세상을 마감했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과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재산을 더 남기려고 보험영업을 맹렬하게 시도했다. 그의 죽어가는 모습에 선배 지인 동창 모두가 협조하여 거금 4000만원의 보험수수료가 모였다. 남은 재산은 대구의 집을 포함하여 2억이 넘는 돈이 아내와 아들에게 남겨졌다. 그의 잦은 구타로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친정에서 생활해 왔던 그의 아내는 그가 죽기 전에 그를 만나 죽어가는 그의 쇠약한 모습을 보고 몹시 울었다고 한다. 그의 시립병원 장례식장에는 평소 정이 많았던 사람이었기에 대학동창을 포함해 섭섭지 않게 조문객들이 왔지만, 부의금 때문에 그의 남동생과 처가 식구들 간에 고성이 오고간 다툼이 있었다. 벽제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은 그의 고향 대구 근교 모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납골당까지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은 그의 남동생, 나의 친구인 그의 사촌동생 이주호, 그리고 나, 그의 유일한 외동아들 네 사람뿐이었다.
그가 가고 난 후에, 나는 한동안 깊은 상실과 공백감에 한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가 부르는 다정한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제는 나 혼자 목욕을 해야 했고, 외로울 때 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정담(情談)을 나눌 따뜻한 친구조차 없는 삭막(索漠)한 세상에 살게 되었다.
(강광우 자서전 다음 계속)
첫댓글 철없이 살았다할까?
왜그리 아무렇게나 살았을까?
목욕벽이 있으시군요.
가정이 화합해야 건강도 장수도 할 수 있는데요.
아쉽습니다.
맘대로 살아지는
인생은 없나봅니다
주위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진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신도 스스로를
통제 못했군요
시니님 회원 각 사람의 글에 일일이 답글 다시는 그 성의와 정성이 정말 놀랍습니다
앤 셜리님 지난 연신내 정모에서 뵙고 또 이 누추한 코너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ㅡ
대구에서 유명한 양복점 형제양복점 백라사가 있었는데
형제양복점 아들은 경고입학
혹여 백라사였는지ㅠ
그렇게 큰 양복점을 하신 집안이 어떻게 기울어서
어머님이 그렇게 살다가시고
아들도 참 철없이 살았네요
계성고 출신의 말로가
그렇다니ㅡ대구서 유명고교ㅡ안타깝네요
보험했으니 자신의 보험도 넣어두었겠죠
정아님은 과거 대구에서 사셨던 모양이죠. 반갑습니다.
자서전이군요....
역시 다저스님 특유의 담담함으로
우리세대 애환을 감동적으로 전해 주십니다.
저는 이 글을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읽습니다만
처음에 느낀 바처럼 마음에 울림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분주해서 전화 못 드렸네요.
송구합니다..일간 전화 드리겠습니다.
가을이 오면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서전 연재는 자유게시판에 위글이 두번째이고 계속해서 자서전을 발췌하여 연재하겠습니다 ㅡ
마음빛은 고운분이 셨는데
주사가 심하셨군요
스트레스와 주위환경의 열악함 속에서도
그만큼 이라도 재산을 남겨두고 가셨네요
삶이 고단해서
술 없이는 살기도 어려웠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