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자락의 '성산별곡'의 시비가 있는 식영정에서....
나는 2004 년도에 서울시의 무대에서 내려 왔다. 사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서울시정의 행정은 한 번 해 볼 만한 행정이다.
나는 서울 시정(市政)에서 내려 왔지만 시청의 '법무담당관실'을 한 번 근무를 못 하고 내려 온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고, 서울시 공무원이면 '서울시 시립대 대학원'을 졸업을 못하고 고향으로
낙향을 한 게 못 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좋은 여건인데 .......
기껏해야 방송통신대 이과 저과 하고 싶은 공부를 하여 못 다한 학문을 보충 시켜 주고
하였다. 그래도 방송통신대 행정학과,그리고 노후에 '국어국문학과'과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행정학과와 법학과는 승진을 하는데, 그리고 행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교육학과는 퇴직후에 초등학교로 돌아가는데,많은 도움을 주었고, 국어국문학과는 노후에
문학을 하고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2004 년도에 서울시에 내려 왔으나, 그렇게 좋아하고 했던 공부들을 써 먹지 못하고 집에서
썩힌다는게 너무나 아쉽고,서글퍼 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더 기(氣)을 썼던게 젊었을때 인천교육대
에서 확보 하였던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이다. 어디로 가버린지도 모르는 초등학교 교사의 자격증
아내가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재 발급으로 다시 내 곁에 온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
그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확보 할 려고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가?
어머니는 아퍼 계시고, 가난속에서 힘들게 따 놓은 자격증,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물론 교육분야에 대하여 계속해서 공부를 시작 하였다. 방송신대 교육학과의 모든 책을을 구입
하고 때로는 '노량진 교사 임용고시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하였튼 공부를 상당히 하였다.
평생 행정을 하던 사람이 어찌 하루 아침에 초등학교 교단에 선다는게 그리 쉬운 일 인가?
어찌어찌 하여 전남의 곡성의 '고달초등학교'에서 강진의 계산초등학교에서 나의 못다 한 인생의
정열을 쏫아 내기도 하였다. 아니면 분야는 틀리지만,서울시의 행정의 경험도,그리고 우리 선대의
문화유적 답사를 좋아 했는데, 이게 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다. 모든게 다 나의 경험의 축적이
학교 교육의 현장에 도움이 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다음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의 내가 살던 곳에서 '의순초등학교'에서 이 학교에서는 아주 가끔 나를
불러 주 곤 한다. 전학년의 도덕을 가르 칠 때에는 상당히 보람도 느꼈다.
늙수룩 한 어느 선생이 전체 아동들의 도덕을 전담하여 지도하여 올바른 심성을 갖도록 지도 한다는
보람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특히 교장선생님,교감선생님이 그렇게 반갑게 하여 주었다.
특히 더 잊을수가 없었던 것은 아내가 화순의 전남대 병원에서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터인지라
마음도 가눌 길이 없이, 아내의 간호는 딸아이가 맡아서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서울시 공직을
내려 왔지,아내는 암(癌)환자로 전락을 하였지, 그 어디다가 하소연을 하리오
인생은 경제의 지표처럼 '싸이클'이 있는 모양이다. 상향의 곡선도 있지만,하향하는 곡선도 있으니
삶은 상향의 오름과 하향의 부침도,그래서 인생은 부침(浮沈)의 파노라마 처럼 흘러 가는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나 혼자 못다 한 나의 삶을 초등학교의 교정에서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아니면 젊은 초등학교 교사들과 어울리면서 나의 삶을 달레기도 하였다.
경기도 이천의 율면초등학교에서는 학부형이 '감자'한 박스를 주길레 ,경기도 이천쌀과 함께 화순의
아들네 집으로 투병하는 아내와 그 간호를 하여 주는 딸아이를 보기 위하여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일요일 오후에는 서울의 집으로 혼자 슬쓸히 올라 오는 기분은 어이 말로 다
할수 있으리요.
인간은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고,때 론 감싸고 그렇게 사는 건데, 외로히 가족들을 떨어져서 지내고
있으니,반찬이 맛이 없다고 투정을 부릴때가 즐거운 비명이었나 보다. 그래도 아내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때는 주말이면,화순으로 가족들의 품속에 있다가 올라 오곤 하였지만,이제는 그것 마져도
아내는 떠나고 자녀들은 각기 자기들의 둥지를 마련하여 살고 있으니, 이것이 인생이 살아가는 한
과정인가 ?
그래도 서울시를 정년을 하고, 젊었을때 꿈이었던 섬마을의 선생님은 못 이루었으나 서울시 공직
이후에 유용하게 써 먹은 것은 나의 삶에 큰 힘이 되어 주었으며 삶에 보람을 주기도,아니면 경제적
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 일이었다.
첫댓글 전학년의 도덕을 담당
가르치신 만장봉님의
제자들은 어느 곳에서든
그 빛을 발하고 있을겁니다.
만장봉님,애잔한 마음과
함께
이모작,초등학교 교정에서의 추억 잘
읽었습니다.
벌써 금요일이네요.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정겨운 댓글로 수필방을 이끌고 계시는 미지님 .....
다 지나간 추억이지만 , 반추하고 싶은 내용들입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추억하며,
공무원으로써의 길
교사로써의 길을 택하여
면학의 길을 자부심으로 하는
만장봉님의 일생을 박수쳐 드립니다.
아마도 천직인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천직이라 ....
그런지 열심히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만장봉님
공직생활을 마감한 분들이
다시 다른 일을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이 말하지여
제 2의 삶을 산다고..
그런면선 만장봉님의
두 번째 삶은 새로운
보람과 영광이 아닌가
싶네요~
감사합니다
'작은섬'님의 훌륭한 글을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좋은 소재로 글이 아주 좋습니다
서울시의 인생의 삶의 아쉬움을 학교에서 많이 채워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구 과찬이십니다
그냥 심심하여 놀 수 없으니 이모작으로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 즐겁게 학생들하고 함께 놀고 아내없는 허전함을 채우기도 ...
구봉님의 좋은 글을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장봉님 인생을 열심히 반듯하게 살아오셨고
인생 이모작도 열정적으로 반듯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글에서 느낄수 있습니다.
서울시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직 하시고
젊었을때 꿈이었던 선생님의 뜻도 이루었으니
인생 이모작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나머지 인생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아이구 ....
'토담집'님의 댓글로 나의 어려움의 삶이 많이 위로가 됩니다
평생을 공직과 교사외의 생활은 한일도 없이 인생을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마 님의 위로의 다소 나의 삶이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