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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5:1
아브라함은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맡기고 다른 아들들을 동쪽으로 보냅니다. 그 역시 막벨라 굴에 묻힘으로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을 실천합니다. 우리 역시 삶의 마지막과 선택의 순간에 무엇을 남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인생입니다. 환갑이 지났으니 이제 좀 버리고 베풀고 비워야 할 텐데 이거야 원 산 넘어 산이더이다. 나이 먹은 세월만큼 가까워진 죽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braham leaves all his possessions to Isaac and sends his other sons east. He, too, practices his faith in the promised land by being buried in the cave of Magbella. We, too, will have to think about what to leave at the end of our lives and at the moment of choice. Human beings are a life that races to death while being born. Now that the 60th birthday has passed, we will have to throw it away, give it away, and empty it, but this is the mountain beyond the original mountain. Death is as close as the years of age do not diminish the desire fo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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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고집도 욕심도 많아지는 내 모습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나이 먹고 더욱 욕심이 많아져서 말년이 부끄러운 사람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릅니다. 깨끗한 은퇴를 하고 그 삶으로 교회에 영향력을 주는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정년이 되면 법을 고쳐서라도 더 유지하려는 노망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디다. 한국교회는 이제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어느 책에선가 '채움'이 아닌 '내려놓음'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젊은이를 만나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하더이다.
I often see myself becoming more stubborn and greedy. I'm ashamed. I don't know how many people I see around me who are ashamed of their later life because they have grown older and more greedy. There are pastors who have a clean retirement and influence the church with their lives, and there are many who are senile people who want to keep the law even if they reach the retirement age. The Korean Church now sees no hope. In a book, he said that you should get used to 'putting down' rather than 'fill' and keep your mouth shut and your wallet open when you meet a young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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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몸에 좋은 것을 탐닉하거나 더 많은 재물을 모으려고 노심초사 하지 않았고 또한 이름을 내기 위해서 지역사회에 국회의원 출마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삭을 절대로 가나안 여자와 결혼시키지 말라고 신신 당부함으로 그에게 현실적인 유익이나 권력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그가 가진 신앙의 원리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Abraham did not care to indulge in healthy things or raise more wealth to live longer as he got older, nor did he dream of running for parliament in the community to make his name. Rather, he showed that there was something more important than practical benefit or power to Isaac by asking him never to marry a Canaan woman. Abraham's death is beautiful because he lived a more faithful life to his principles of faith as he got 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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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내 나이 되어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켜야할 믿음의 원리를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분명하고 확고하게 정리해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그는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노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막벨라 굴을 사고 이삭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종을 보낼 때 그의 소망은 더욱 확고하고 빛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He didn't say, "You should be my age, too." He became clearer and more firm in organizing the principles of faith he was supposed to keep as he got older. As the belief grew, he became more aware of what to give up and what to hold on to. I think this is why he was able to die a beautiful death without being obsessed with anger. When he bought the last Makbella oyster and sent a servant to marry Isaac, his wishes became more firm and sh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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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 하건데 75세의 아브라함보다 100세의 아브라함이 더욱 믿음으로 견고했고, 100세의 아브라함보다는 사라를 떠나보내고 막벨라 굴을 사던 137세 때의 아브라함이 더 성숙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육체의 수명이 다해 죽을 때 아브라함은 더욱 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다만 한 가지 140세가 훨씬 지난 아브라함이 후처를 얻었고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낯부끄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문화권이나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리라는 약속의 성취'차원에서 본다면 마냥 주책바가지로 만 볼 수도 없습니다.
I'm sure Abraham was stronger at 100 than Abraham at 75, and Abraham at 137 years old was more mature than Abraham at 100 years old when he left Sarah and bought a Makbella oyster. And when he died at the end of his physical life, Abraham became even more precious. It is shameful that Abraham, who was well over 140 years old, had a wife and had children. However, from the perspective of the culture at the time or the 'achievement of the promise to give Abraham many offspring', it cannot be seen as a pl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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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아브라함 단락에서 그두라의 아들들이 아브라함 노경에 태어났는데 아브라함이 그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고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삭과 함께 살지 않고 동방으로 가게 했습니다. 서자들이 함께 이삭과 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재산을 주고 이스마엘에게는 안 주고 내 보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마엘의 출생과 그두라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이 그 의미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In the last paragraph of Abraham, the sons of Gdura were born in No gyeong, Abraham gave all of their possessions to Isaac and gave property to the scribes. But they did not let Isaac live with them, but let him go to the East. They also gave them property and sent them away without giving Ishmael. As such,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precisely that Ishmael's birth and the descendants born to Gdura differ greatly in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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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이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라면 그두라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상징일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도 주고 아름답게 보내는 것입니다. 보내는 이유 또한 저는 민족들로 흩어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죽음의 축복, 대를 이은 축복, 잊지 않은 축복, 아, 아브라함의 그 죽음이 아름다운 것은 왜일까?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 모두 죽을 것입니다.
If Ishmael is the product of human endeavors, his descendants will be symbols of God's blessing. That is why he gives property and sends it beautifully. I think the reason for sending it is also to disperse among the peoples. The blessing of death, the blessing of generations, the blessing of not forgetting, oh, why is Abraham's death beautiful? I will die, you will die, and we will all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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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죽음이 끝이라고 믿는 사람과, 또 그 죽음이 영원한 천국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이란 언약 안에 끝까지 머무는 것, 인간의 삶은 상처뿐인 영광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구원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소유에 집착을 하는 것은 욕정이 아닐까? 나는 다음 세대에 무엇을 믿음으로 남기고 있는가?
The only problem is the difference between those who believe that death is the end and those who believe that death leads to eternal heaven. In conclusion, belief is about staying in a covenant to the end, human life is an honor that is only a wound, but salvation is protected by the righteousness of God. Still, isn't it the desire to be obsessed with possession? What do I leave as faith in the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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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후처를 얻다(1-6)
아브라함의 장례(7-11)
이스마엘의 족보(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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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1a)
후처를 취하였으니(1b)
그 이름은 그두라라(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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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2a)
시므란과 욕산과(2b)
므단과 미디안과92c)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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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산은(3a)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3b)
드단의 자손은(3c)
앗수르 족속과(3d)
르두시 족속과(3e)
르움미 족속이며(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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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의 아들은(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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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와 에벨과 하녹과(4b)
아비다와 엘다아니(4c)
다 그두라의(4d)
자손이었더라(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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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이삭에게(5a)
자기 모든 소유를(5b)
주었고(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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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서자들에게도(6a)
재물을 주어(6b)
자기 생전에(6c)
그들로 자기 아들(6d)
이삭을 떠나(6e)
동방 곧 동국으로(6f)
가게 하였더라(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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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7a)
향년이(7b)
175세라(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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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수가 높고(8a)
나이 많아(8b)
기운이 진하여(8c)
죽어(8d)
자기 열조에게로(8e)
돌아가매(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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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이삭과(9a)
이스마엘이(9b)
그를 마므레 앞(9c)
헷 족속 소할의 아들(9d)
에브론의 밭에 있는(9e)
막벨라 굴에(9f)
장사하였으니(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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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브라함이(10a)
헷 족속에게서(10b)
산밭이라(10c)
아브라함과(10d)
그 아내 사라가(10e)
거기 장사 되니라(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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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죽은 후에(11a)
하나님이(1b)
그 아들이삭에게(11c)
복을 주셨고(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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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11e)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11f)
거하였더라(1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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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여종(12a)
애급인 하갈이(12b)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12c)
이스마엘의 후예는(12d)
이러하고(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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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의 아들들의(13a)
이름은(13b)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13c)
이와 같으니라(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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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의 장자는(13e)
느바욧이요(13f)
그 다음은 게달과(13g)
앗브엘과 밉삼과(1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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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마와(14a)
두마와(14b)
맛사와(1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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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닷과 데마와(15a)
여둘과 나비스와(15b)
게드마니(1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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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스마엘의(16a)
아들들이요(16b)
그 촌과 부락대로 된(16c)
이름이며(16d)
그 족속대로는(16e)
십 이 방백이었더라(1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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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은(17a)
향년이 137세에(17b)
기운이 진하여 죽어(17c)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1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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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손들은(18a)
하윌라에서부터(18b)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18c)
술까지 이르러(18d)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18e)
거하였더라(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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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기업을 잇다 Isaacs succeed in business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묻히다 Abraham is buried in the Land of Promise
자손의 약속은 이어지고 성취되다 carry on one's promise and be fulf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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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생애를 붙들어 주셨던 주님, 삶은 상처뿐인 영광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구원이 지켜지는 줄로 압니다. 오, 주님 제 인생도 붙들어 주시고 끝까지 얼굴빛을 비춰 주옵소서. 그리하여 내 달려갈 길을 마칠 때 삶과 죽음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The Lord, who held on to Abraham's life, is an honor but a faithful one. We know that salvation is kept by the righteousness of God. Oh, Lord, hold on to my life and show me your face till the end. So when I finish my journey, let life and death prove faith in God.
2026.4.14.tue.Clay
신학 비평//
아름다운 죽음인가, 정리되지 않은 욕망인가 — 아브라함의 마지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믿음은 ‘소유를 남기는 것’인가, ‘욕망을 비우는 것’인가? “아브라함의 죽음은 아름답다” 맞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묘사합니다. “수가 높고 기운이 진하여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창25:8) 그러나 신학적 비평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정말 아무 긴장도 없는 ‘완성된 죽음’인가? 그두라와의 결혼, 그리고 노년의 자녀 출산(25:1)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균열입니다.
1) 믿음의 완성인가, 약속 이후의 잉여인가?
아브라함은 이미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삭 = 약속의 자녀, 사라 = 언약의 통로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다시 자녀를 낳는가? 이것을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① 긍정적 해석- “열방의 아버지” 약속의 확장...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그두라 자손 = 축복의 확산 (충분히 타당함) ② 비판적 해석 (신학 비평의 지점)-약속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욕망...이미 약속은 성취됨. 그런데도 “더” 낳고, “더” 확장함 이것은 무엇인가? 언약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잉여 욕망인가.
2) 핵심 긴장 — 선택과 배제의 신학
본문의 가장 중요한 구조는 이것입니다. 이삭 → 모든 소유 상속, 서자들 → 재물 주고 “동쪽으로 보냄” 이것은 단순한 가정 정리가 아닙니다. 언약의 선(line)”과 “비언약의 확산”을 분리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선택(선별)이 있다. 모두가 복을 받지만 모두가 “언약의 중심”은 아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적 산물, 그두라는 축복의 상징”, 이건 신학적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마엘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복을 받았고 창25장에서도 12방백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고, 다르게 다루십니다.
3) 죽음의 신학 — 막벨라 굴의 의미
아브라함은 왜 가나안에 묻혔습니까? 땅을 이미 소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장지는 “소유의 표시”가 아니라 믿음의 선취”입니다. <살아서는 나그네-죽어서야 땅을 차지>이것이 히브리서의 해석입니다: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다” “나이 들수록 욕심이 더 많아진다” 이건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구조입니다. ① 죽음이 가까울수록→ 존재는 더 강하게 붙잡으려 합니다. ② 상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움켜쥔다 ③ 통제력이 줄어들수록→ 소유 욕망은 증가합니다. 그래서 노년은 거룩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착의 절정>이 되기도 합니다.
4) 아브라함의 위대함 — 욕망이 아니라 ‘정리’에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무엇입니까? 자녀를 많이 낳은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낼 것인가? 이것이 믿음입니다. 한국교회 비평은 날카롭습니다. 왜 말년이 추해지는가? 왜 내려놓지 못하는가? 신학적으로 보면 전통은 남겼지만, 해석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있었고 전통은 유지되었지만 성령의 갱신이 없어 권력화된 신앙만 남은 건 아닐까.
5) 결론 — 믿음은 무엇을 남기는가?
아브라함의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끝까지 ‘무엇이 약속인가’를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죽음 앞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남길지 아는 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를 남겼습니다. ① 보이는 것→ 재산, 자손, 땅 ② 보이지 않는 것→ *언약의 방향 진짜 유산은 이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습니까? 돈인가, 이름인가, 아니면 방향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