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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1961년 <사상계>) -김동리
숙명적인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절대자의 자비를 구하는 인간의 갈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태평양 전쟁에 학병으로 끌려 나간 주인공 '나'가 학병에서 탈출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건이 작품 구성의 골격을 이루고 있지만, 주제와 관련된 무게 중심은 작품 중간에 삽입된 '등신불'에 얽힌 만적(萬寂)의 불교 설화에 실려 있다.
만적이 열여덟 살 때-그러니까 그가 법림원에 들어온 지 오년 뒤-취뢰 스님이 열반(涅槃)하시게 되자, 만적은 스님(취뢰)의 은공을 같기 위하여 자기 몸을 불전에 헌신할 결의를 했다.
만적이 그 뜻을 법사(법림원의) 운봉선사(雲峰禪師)에게 아뢰자 운봉선사는 만적의 그릇(器)됨을 보고 더 수도를 계속하도록 타이르며 사신(捨身)을 허락지 않았다.
만적이 정원사의 무풍암에 해각선사를 찾았다는 것도 운봉선사의 알선에 의한 것이다. 그가 해각선사 밑에서 지낸 오 년간의 수도생활이란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이었으나 법력의 경지는 짐작할 길이 ▶만적의 고된 수행 과정
만적이 스물 세 살 나던 해 겨울에 금릉 방면으로 나갔다가 전날의 사신(謝信)을 만났다. 열세 살 때 자기 어머니의 모해(謀害)를 피하여 집을 나간 사신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이 사신을 찾아 역시 집을 나왔다가 그를 찾지 못하고 중이 된 채 어느덧 꼭 십 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다시 만난 사신을 보고는 비록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린 만적으로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고.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적은 자기의 목에 걸렸던 염주를 벗겨서 사신의 목에 걸어 주고 그 길로 곧장 정원사에 돌아왔다.▶만적이 사신을 만난 후 염주를 주고 정원사로 돌아옴
그때부터 만적은 화식(火食)을 끊고 말을 잃었다. 이듬해 봄까지 그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뿐이었다(그때까지의 목욕 재개는 말할 것도 없다). ▶만적의 단식 및 침묵 수행
이듬해 이월 초하룻날 그는 법사 스님(운봉선사)과 공양주 스님 두 분만을 모시고 취단식(就壇式)을 봉행했다. 먼저 법의를 벗고 알몸이 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목 위만 남겨 놓는)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목 위만 남겨 놓는) 전신에 감았다. 그리고는 단위에 올라가 가부좌(跏趺坐)를 개고 앉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곁에서 들기름 항아리를 받들고 서 있던 공양주 스님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기름을 들어부었다. 기름을 다 붓고, 취단식이 끝나자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은 합장을 올리고 그 곁을 떠났다.
기름에 전 만적은 그때부터 한 달 동안(삼월 초하루까지) 단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갠 채, 합장을 한 채, 숨 쉬는 화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레에 한 번씩 공양주 스님이 들기름 항아리를 안고 장막(帳幕)(흰 천으로 장막을 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면 어깨에서부터 다시 기름을 부어 주고 돌아가는 일밖에 그 누구도 이 장막 안을 엿보지 못했다.▶만적 취단식과 가부좌 수행(소신공양 준비)
이렇게 한 달이 찬 뒤, 이날의 성스러운 불공에 참여하기 위하여 산중의 스님들은 물론이요, 원근 각처의 선남선녀들이 모여들어, 정원사 법당 앞 넓은 뜰을 메웠다.
대공양(大供養-燒身供養을 가리킴)은 오시(午時)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백을 헤아리는 승려가 단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이 불리어지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씌워진 향로에서는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의 정진으로 말미암아 거의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만적의 육신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숨골(정수리)을 뚫었을 때는 저절로 몸이 움칠해졌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가슴이 조금씩 앞으로 숙여져 갔다.
들기름에 전 만적의 육신이 연기로 화하여 나가는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오백의 대중(승려)은 아무도 쉬지 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신시(申時) 말(末)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로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염불을 올리던 중들과 그 뒤에서 구경하던 신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만적의 소신공양과 입적(열반)
이때부터 새전(賽錢)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뒤 삼 년간이나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가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고 석대를 쌓았다. ←내화가 끝나는 부분 ▶삼 년간 이어진 새전으로 금불각과 석대를 조성함
외화(겉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맘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불상)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부처님(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난 원혜대사는 이제 다시 나에게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자네 바른 손 식지(食指)를 물어 보게”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해 오던 금불각이나 등신불이나 만적의 분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만적의 행위와 ‘나’의 행위 사이의 연관성을 반어적으로 암시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외에서 진 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겐지 이제 그만 손을 내리어도 좋다는 겐지 뒷말이 없는 것이다.
“……”
“……”→침묵을 통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심리적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음
태허루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 북소리가 목어(木魚)와 함께 으르렁 거리며 들려온다.
→함축적 결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남기고 있음
▶원혜대사가 나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 함
● 줄거리
[외부 이야기 ①]
'나'는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남경(南京)에 주둔해 있다가, 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정원사란 절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금불각의 화려한 외양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금불각에 안치된 등신불을 보게 되는데, 그 불상 같지도 않은, 인간적인 비원을 담고 있는 모습에서 충격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불상은 옛날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성불(成佛)한 '만적'이라는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운 것이다. '나'는 원혜대사를 통하여 신비로운 성불의 역사를 듣게 된다.
[내부 이야기]
'만적'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자기를 위하여 이복형제를 독살하려는 어머니로 말미암아 큰 갈등을 겪다가 집을 나간 형 '신'을 찾아 자신도 집을 나와 불가에 몸을 맡긴다. 10년 후 어느 날, 자기가 찾던 이복형이 문둥이라는 천형(天刑)에 고통받고 있음을 보고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인간사의 번뇌를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극복할 것을 결심한다. 그가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소신공양하던 날 여러 가지 이적(異蹟)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부터 새전(賽錢)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게 되었다.
[외부 이야기 ②]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불상에 인간적인 고뇌의 슬픔이 서려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血書)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어뜯었던 오른손 식지(食指)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원혜대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데 정오를 알리는 북소리와 목어(木魚) 소리만 들려온다.
● 핵심정리
▶갈래 : 단편소설, 액자소설
▶배경 :
시간 - 1943년 여름.(태평양 전쟁 당시)
공간 - 중국의 양자강 북쪽 정원사
상황 - 전쟁으로 인한 삶과 죽음의 극한 상황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만적에 관한 이야기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 만연체, 역어체('만적선사소신성불기' 부분)
▶주제 : 인간 고뇌의 종교적 구원
● 구성 : 액자식 구성
외부 이야기 : 전쟁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절에 의탁하게 된 ‘나’
내부 이야기 : 인간적 고뇌의 종교적 구원을 위해 소신공양하여 등신불이 된 ‘만적’
▶발단 : 학병으로 남경(南京)에 와서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밤에 산길 백 리를 걸어 정원사에 도착, 몸을 의탁하게 됨.
▶전개 : 정원사에서 생활하던 중, 금불각을 보고 화려한 외양에 반감을 가지게 됨.
▶위기 : 등신불을 보고 충격을 받음.
▶절정 : 등신불에 대한 의문과 원혜대사로부터 들은 만적선사의 소신 성불 과정.
▶결말 : 소신(燒身)과 단지(斷指)를 통해 본 불연(佛緣).
● 등장인물
▶나 : 태평양 전쟁 당시 학병으로 끌려 나갔다가 남경에서 일본 대정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불교에 귀의한다.
▶진기수 : 중국의 불교 학자로 일본 대정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포교사로 활동함. '나'의 탈출을 도와 줌.
▶원혜대사 : 정원사의 주지승. '나'를 거두어 주고 불도로 인도함.
▶만적 : 법명은 만적, 속명은 기. 당나라 때 금릉에서 태어났고, 개가한 어머니가 이복형인 '신'을 독살하려는 것을 말림. 그 일로 집을 나간 '신'을 찾아 방황. 23세 때 정원사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성불(成佛)하여 정원사 금불각에 모셔짐.
●『등신불』의 서사 구조를 이루는 주요 갈등
① 인간과 사회 : 나 ↔ 일제(日帝)
② 세속과 종교 : 나 ↔ 등신불, 나 ↔ 원혜대사
③ 인간과 인간(양심과 본능) : 만적 ↔ 어머니
④ 인간과 운명 : 사신 ↔ 운명
● 이해와 감상
지은이가 초기부터 줄기차게 시도했던 '인간의 구경(究竟)의 탐구'라는 주제가 이 작품에서 완성되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완숙한 작품이다. 학병을 탈출한 화자는 등신불을 본 순간 그것에 일종의 동정을 느끼면서 불상에서 인간의 고뇌의 원형을 본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그러나 곧 등신불 속에 나타나는 인간적 고뇌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며 그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등신불은 불상과 인간 사이에 놓여져 있어, 절대자와 인간 사이에 중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원 회귀를 지향하는 인간에게 그것은 구원의 좁은 문 앞에 세워 놓은, 인간을 평가하기 위한 거울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러한 등신불에 자신의 인간 속사를 비춰 봄으로써 유한한 자신과 무한한 우주의 원형을 인식하게 된다.
<추가>
자신의 의지나 품성과 관계없이 거대한 힘으로 밀려오는 숙명적인 고통과 번뇌는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그러나 해결해야 할 영원한 과제다. 그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절대자를 갈망하게 되고,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게 된다. 그런 점에서, 등신불은 불성(佛性)과 인성(人性)을 지닌 특이한 부처가 아닐 수 없다. 만적(萬寂)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은 자기 구원과 타인 구제의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만적의 소신공양(燒身供養)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복형제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된 근원적인 죄라는 인식, 그리고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면서도 모든 인간들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만적의 불교 설화는 주인공 '나'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쓴 행위[斷指供養]와 연관됨으로써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주인공이 전쟁이라는 학살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 살을 물어뜯는 행위는 소극적이나마 죄악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자기희생이라는 점에서 만적의 소신공양(燒身供養)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문원각의 현대소설의 이해와 감상>
● 핵심문제
1. 이 글의 성격을 잘못 말한 것은?
① 암시와 비약의 방법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② 과거와 현재가 서로 중첩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③ 극적 진술과 요약적 진술을 적절히 혼합하여 사건의 흐름을 간명하게 나타냈다.
④ 서술자의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인 서술 태도가 돋보인다. ∨
⑤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인간 실존의 규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더 알아보기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의 관계
▶작자는 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이 직접 경험한 현실로, 두 번째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옛날이야기로 각각 제시하고 있다. 두 이야기의 이러한 대조는 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법으로서 두 번째 이야기가 허구임을 강조함으로써 첫 번째 이야기는 진실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작자가 교묘한 방법으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과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을 서로 일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원혜대사는 혈서를 쓴 바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 함으로써 화자의 출가가 만적의 소신공양의 정신과 연결 될 때 완성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화자가 출가할 당시의 나이와 소신공양을 실행할 때 만적의 나이가 똑같이 스물세 살이라는 것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아 넘기기 힘들다. 또한 화자와 만적이 출가의 동기가 유사한 사실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또 다른 증거로 제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