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좀 살리는 의미에서...
며칠 전 끝낸 뿌리 깊은 나무 시청 후기를 올려 봅니다.
재미 없고 실망스러웠던 “뿌리
깊은 나무”
원래 제 나라에 살지 않으면 드라마 같은 것 꼭꼭 챙겨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도
화제작이다 뭐다 해서…. 거기다 김영현 작가의 작품이라 다운 받아 가며 후딱 챙겨 보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실망이었다.
욕 먹을 소리 시작해 보자.
나는 이 작품이 김영현 작가의 작품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마치 조금 유명해진 만화가가 자기
이름만 걸어 주고 제자에게 기회를 주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봤다.
우선 왜 이 소재를 골랐을까 하는 물음이다. 물론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라는 누구도 비아냥거릴
수 없는 엄숙한 소재는 마지막을 엄중함으로 확 눌러 버리고 끝 낼 수 있다. 청중의 관심도 확 끌어
올 수도 있지…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역사의 소재는 운신의 폭이 좁다. 큰 테두리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픽션을 버무리기엔
평수가 작다는 말이다.
개국 공신 정도전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죽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났던 군신의 대립은 얼핏 보면 좋은 드라마 소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세종대왕 시절엔 그리 눈에 띨만한 격동이 없었다. 정도전의
죽음에서 만들어 낸 밀본이 한글 창제를 죽을 힘을 다해 막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생적 미지근함은 아마 작가의 현란한 대사와 현학으로 충분히 겉포장 할 수 있으리라 자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움을 느꼈으리라…
김영현 작가의 전작들은 풍부한 픽션을 가미 할 수 있는 그릇이 큰, 헐거운 역사적 사실 위에
건설 되었다. 대장금은 아예 중종 실록에 쓰여 있는 장금이란 의녀에서 출발하여 마음껏 구라(지송)를 펼칠 수 있었다.
서동요나 선덕여왕 또한 그 당시 고증을 철저하게 하고 싶어도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아 다 못 할 정도의 시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마음껏 픽션을 가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다르다. 역사서에 한 줄 적혀 있는 장금을 끌어 내어 요리 고수로, 의술의 달인으로 만들 수도 없고 왕에게 쌍둥이를 낳게 하여 만드는 태생적 운명의 소용돌이도 그릴 수 없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 하였다라는 명제에 살을 붙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러한 한계를 안은 채 배수의 진을 쳤을까?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한글창제라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담을 수 없는 대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생각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워낙 평온했던 시기기에 쓸 것이 별로 없었다. 거창하게 만들어 낸 밀본은 “그 시작은 광대 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도시당최 왜 정기준이 자신의
목숨을 다 해 한글 창제를 막으려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이도와 언쟁에서 나오는 철학적이고 어렵기만
한 현학적 이유 때문에? 정기준은 과장에서 자신의 철없는 행동으로 폐족을 당한 사람이다. 그 맺힌 한이 있기 때문에 백정 가리온으로 20년을 견디며 밀본을
재건한 것이다. 재상 총재제와 한글 창제를 막는 일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삼봉 선생의 철학이
담긴 재상 총재제를 택하는 게 맞다. 하지만 작가는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차적으로 한글 창제를 막는 거대한 적이 필요했고 2차적으로는 지금부터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작가의 현학의 욕심이 그렇게 했으리라…
작가는 과거로부터 기존 작가들이 지긋지긋하게 써 왔던 정체를 밝히기 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 철 지나간 꼼수를 쓰지 않고 가리온이
정기준이란 사실을 곧바로 밝혀 버리곤 너무도 손쉽게 이도와 술자리를 갖게 한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의
철학적 가치기준이 충돌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대단히 작위적인 내용도 섞어 버린다. “정치는 책임이다” 라던지… “백성이
글을 알아 백성이 지도자를 뽑는다면?” 등의 대사를 내뱉게 한다. 안다. 보는 사람들도 안다. 그게 작금의 정치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작가가 보는 이들을 가르치려 하고 그게 작품 속에서 인지 된다면 그것은 불편하고 따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느껴져 버렸다. 현학적으로 무자게 많은 대사를 주고 받는데
난 잠시 창 밖을 쳐다 보았다. 뭐 별 다른 것 없나? 거기다
책의 대사와 드라마 대사는 다르다. 책의 대사는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시 읽어서 다시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대사는 지나가 버리면 그만이다. 어렵고
두 번 생각해야 할 대사를 그렇게 길고 빠르게 난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번 무리하더니 횟수를 거듭할수록 재미나 긴장은 없어지고 무리수는 가중 된다. 가리온이, 즉 정기준이 끝까지 한글 창제를 몸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에 그의 밀본의 본원으로서 역할이 자연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어서 거기에다 심종수나 이신적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삽입해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그게
더 극을 어수선하게 한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혜례 없이 반포가 안 되는 것인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왜
인간 혜례인 소이를 그 위험한 유포 작업에 보내는 건지… 그 이후로는 작가가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 상황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덕지덕지 보수 작업을 한다.
갑자기 독을 모든 무기에 바르라고 하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소이가 죽긴 죽어야 하는데 혜례도 다 쓰고 또 장혁과 꺽꺽거리며 죽기 전 감동적인
대사도 날려야 하기 때문에 독을 써 서서히 죽이더라..
정기준은 어떠한가… 그리 똑똑한 강적이 갑자기 세종의 심신을 흐트러트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평대군을 죽여 버린다. 작가가 자신의 할 말을 하고 싶은 게 강하다 보니 이도와 정기준에게 무리한
핑퐁 게임을 시키고 그게 너무 눈에 드러나 보인다. 그러니 따분해 질 수 밖에…
마지막 결론으로 달려 가느라 너무 바쁘다. 바쁘다 보니 이젠 완전 무협지 수준이 된다. 정기준은 뭐 대단한 마지막 계획을 세워 놓은 것처럼 개폼을 잡더니 고작 개파이에게 단독 공격을 명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세종대왕의 주위에는 공권력은 없다.
단지 무술 고수 한 사람에게 이리 터지고 저리 날아가는 일당 몇 만 원짜리 엑스트라만 있을 뿐이다.
장풍 날리고 축지법 쓰는 무협지 고수 아니고서야 한 나라의 왕을 단 한 명의 무술 고수가 습격하여 그 많은 호위 무사들 다 죽이고
조선 제일검도 죽이고 한 가닥 한다는 똘복이도 죽여 버린다. 뻥도 좀 선을 지키면서 까야지 서로 이죽대며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친 똘복이가 멋있게 죽게 하려고 칼 맞아 다 죽어가는 애를 치료도 안 해 주고 멋들어지게, 피
뚝뚝 흘려 가며 서 있게 한다. 의자라도 좀 주지…
그리곤 급속히 대한 늬우스로 바꾸어 버린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 할 수 없는 우리 아름다운
한글 창제의 장엄한 이야기 속으로 쏙 숨어 버린다.
그리곤 지금껏 욜라 힘들게 심어 놓은 재밋는 반전이다~~라며 한가놈이 한명회라 구라친다.
우린 다 안다. 우리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인가… 다
동의 한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를 평가함에 있어 한글 창제의 위대함에 기댄 부분은 냉철히 골라내
분석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훌륭한 드라마다. 이거 뭐야? 왜
열라 까다 끝에 와서 지랄이냐? 내 말은…
기획의도도 너무 좋다. 우리 세계 최고 글인 한글 창제를 다시 보여 준다. 카~~ 얼마나 좋은 기획 의도 인가? 배우? 다 끝내 준다. 장혁이
오버 연기가 오글거리고 입가에 침이 고여 좀 더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뭐.. 다 좋았다… 근데 뭐?
하지만…
이 정도를 김영현 작가가 썼다면… 그녀의 신출귀몰한 글재주에 원래 혼이 빠져 버렸던 필자의
입장에선… 정말 실망이고… 헛점 투성이다.


첫댓글 지금 다시보기로 소이가 독화살 맞고 해례를 쓰고 있는 것 까지 봤는데 ㅠㅠ 그래도 재미있잖아 ?!^^
전작들에 비해선 별로.... 잼..없..다...
ㅎㅎㅎㅎ 전 그냥 드라마로 보는데 그냥 쉬워서 잘 봤어요 ㅎㅎㅎ 역시 다르군요 글을 쓰시는분들은 작품을 보는눈이 정말 달라요 와우 멋있네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