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진 해가 일찌감치 산마루 뒤로 자취를 감추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운동장을 바라보고 선 학교 건물 위에는 환한 조명등 세 개가 나름대로 빛을 내고 있었지만 으스스 소름 돋우는 찬 바람에 주눅이 들고 만 듯 움츠린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차가운 날씨도 사람들의 훈훈한 체온과 입담 앞에는 슬슬 꽁무니를 뺄 수밖에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 면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면서 운동장은 금방 활기가 넘쳤던 것이다.
"아따, 성님 오셨소."
"그려, 자네도 왔능가. 일찍 와브렀네."
썰렁하던 운동장은 금방 잔치집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운동장 한 켠에 마련된 찰밥이며, 통닭, 막걸리, 소주 등으로 배를 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7시가 조금 넘었을 즈음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안내 방송에 따라 줄을 지어 섰다. 14일부터 개최되는 '2009 화순풍류문화큰잔치'에 참가하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도암면민들이 화순풍류문화큰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는 프로그램은 외따먹기놀이. 예전에 도장리 마을 부녀자들이 추석을 전후해 즐기던 놀이를 재현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외따먹기를 즐기던 어른들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즈음 명맥을 잇기 위해 나선 사람은 도장리 마을의 김성인(참여자치21 대표)씨였다.
"외따먹기놀이는 부녀자들이 농사 과정을 재현하며 놀았던 놀이인데 20여년 전 쯤에 어머니 세대들이 직접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을의 소중한 유산이 자칫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어 지난 2006년 마을 대동한마당에서 재현하는 행사를 가졌었죠. 이 때 직접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서 정리한 것이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김성인씨)
김씨가 발췌한 글은 오성완 보성예술촌 연바람 단장의 손에 의해 재구성됐다. 오 단장은 이날 직접 현장을 찾아 외따먹기놀이 참가자들을 지도하는 데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8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음악에 맞춰 입장하기 시작했다. 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들썩이고 덩기덕 쿵덕, 장단에 발놀림을 맞추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놀이복장과 분장은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관람객 앞에서 실제 공연을 하는 것처럼 진지했다.
"근디 말이요, 외따묵기를 헐라먼 앞잽이가 있어야 쓸 것 아니요?"
"내가 앞잽이 한 번 해볼라요."
"와따 형님, 술에 취해 갖고 걸음도 지대로 못 걸음서 뭔놈의 앞잽이는 앞잽이여?"
"그래도 내가 잘 헐 수 있는디…."
"잠깐, 잠깐만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도중 오 단장이 지도에 나섰다.
오 단장은 술에 취한 흉내를 내는 주민에게 동선을 지시하는가 하면 시선은 어디에 둬야 하는 지, 대사를 할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지 등을 꼼꼼하게 지도했다.
술에 취한 연기를 하는 주민의 모습에 참가자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근디, 뭔 놈의 외씨들이 요렇게 볼품이 없단가."
"기다려 보시오. 우리가 애껴놓은 좋은 종자들이 좀 있응께."
한 참가자의 말에 여기저기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손을 이끌고 무대로 나타났다.
잘 생긴 외씨는 물론 쭉쭉 빠진 외씨, 통통한 외씨, 매끈매끈한 외씨, 보기 좋은 외씨, 맛있는 외씨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오매 아짐, 정말 쭉쭉 빠졌능가."
"아무리 봐도 별로 매끈매끈한 것 같지 않은디."
참가자들은 외씨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무대로 나온 여성들이 외씨로 비유되면서 즐거운 농담이 오갔던 것이다.
도암면민이 외따먹기놀이를 준비한 것은 지난 8월부터다. 주민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재담팀, 춤팀, 사물놀이팀 등으로 나눠 매주 3~4차례 연습에 몰두했다. 한달여 동안 팀별로 기술을 연마한 이들은 지난달부터 전체 연습을 하고 있다.
일손이 바쁜 농번기인 탓에 저녁 연습을 선택하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을 늘어놓는 일도 없다. 도암면을 위하는 일인데다 이웃을 만나 정겨운 입담을 나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집짓기 놀이로, 2007년에는 나무꾼 지게놀이를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오성환 단장은 "도암면민의 경우 단합이 잘되는 데다 연습에 임하는 자세도 매우 진지해 즐겁게 동참하고 있다"면서 "풍류문화큰잔치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행사 준비를 계기로 마을 사람들끼리 공동체 의식을 같게 된다는 점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지도자로서의 소감을 밝혔다.
윤영재 면장은 "도암면은 석가탄신일에 맞춰 운주축제를 개최하는데다 풍류문화잔치까지 치러야 하는데 주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며 "밤 10시가 넘도록 연습이 이어지는데도 항상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로 두번째 열리는 2009 화순풍류문화큰잔치는 14일부터 18일까지 화순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와 공설운동장 일대에서 열린다. -- - - -
외따먹기 놀이는
동네 마을 넓은마당에서 추석무렵 부녀자들이 활달하게 노는 놀이이다.
오이농사를 짓는 과정을 놀이로 만들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놀이는 두 편으로 사람들이 나뉘어져 시작된다. 각 편의 사람들이 오이 줄기를 연상시키듯 줄지어 잡은 다음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대방의 꼬리를 잡았을 경우 한쪽에 앉혀놓고 한바탕 흥겹게 놀게 되고 다시 상대방의 꼬리 한 명을 잡는 방법으로 서너명의 꼬리를 잡을 때까지 이어진다.
짧아진 해가 일찌감치 산마루 뒤로 자취를 감추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운동장을 바라보고 선 학교 건물 위에는 환한 조명등 세 개가 나름대로 빛을 내고 있었지만 으스스 소름 돋우는 찬 바람에 주눅이 들고 만 듯 움츠린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차가운 날씨도 사람들의 훈훈한 체온과 입담 앞에는 슬슬 꽁무니를 뺄 수밖에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 면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면서 운동장은 금방 활기가 넘쳤던 것이다.
"아따, 성님 오셨소."
"그려, 자네도 왔능가. 일찍 와브렀네."
썰렁하던 운동장은 금방 잔치집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운동장 한 켠에 마련된 찰밥이며, 통닭, 막걸리, 소주 등으로 배를 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7시가 조금 넘었을 즈음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안내 방송에 따라 줄을 지어 섰다. 14일부터 개최되는 '2009 화순풍류문화큰잔치'에 참가하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도암면민들이 화순풍류문화큰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는 프로그램은 외따먹기놀이. 예전에 도장리 마을 부녀자들이 추석을 전후해 즐기던 놀이를 재현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외따먹기를 즐기던 어른들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즈음 명맥을 잇기 위해 나선 사람은 도장리 마을의 김성인(참여자치21 대표)씨였다.
"외따먹기놀이는 부녀자들이 농사 과정을 재현하며 놀았던 놀이인데 20여년 전 쯤에 어머니 세대들이 직접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을의 소중한 유산이 자칫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어 지난 2006년 마을 대동한마당에서 재현하는 행사를 가졌었죠. 이 때 직접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서 정리한 것이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김성인씨)
김씨가 발췌한 글은 오성완 보성예술촌 연바람 단장의 손에 의해 재구성됐다. 오 단장은 이날 직접 현장을 찾아 외따먹기놀이 참가자들을 지도하는 데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8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음악에 맞춰 입장하기 시작했다. 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들썩이고 덩기덕 쿵덕, 장단에 발놀림을 맞추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놀이복장과 분장은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관람객 앞에서 실제 공연을 하는 것처럼 진지했다.
"근디 말이요, 외따묵기를 헐라먼 앞잽이가 있어야 쓸 것 아니요?"
"내가 앞잽이 한 번 해볼라요."
"와따 형님, 술에 취해 갖고 걸음도 지대로 못 걸음서 뭔놈의 앞잽이는 앞잽이여?"
"그래도 내가 잘 헐 수 있는디…."
"잠깐, 잠깐만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도중 오 단장이 지도에 나섰다.
오 단장은 술에 취한 흉내를 내는 주민에게 동선을 지시하는가 하면 시선은 어디에 둬야 하는 지, 대사를 할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지 등을 꼼꼼하게 지도했다.
술에 취한 연기를 하는 주민의 모습에 참가자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근디, 뭔 놈의 외씨들이 요렇게 볼품이 없단가."
"기다려 보시오. 우리가 애껴놓은 좋은 종자들이 좀 있응께."
한 참가자의 말에 여기저기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손을 이끌고 무대로 나타났다.
잘 생긴 외씨는 물론 쭉쭉 빠진 외씨, 통통한 외씨, 매끈매끈한 외씨, 보기 좋은 외씨, 맛있는 외씨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오매 아짐, 정말 쭉쭉 빠졌능가."
"아무리 봐도 별로 매끈매끈한 것 같지 않은디."
참가자들은 외씨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무대로 나온 여성들이 외씨로 비유되면서 즐거운 농담이 오갔던 것이다.
도암면민이 외따먹기놀이를 준비한 것은 지난 8월부터다. 주민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재담팀, 춤팀, 사물놀이팀 등으로 나눠 매주 3~4차례 연습에 몰두했다. 한달여 동안 팀별로 기술을 연마한 이들은 지난달부터 전체 연습을 하고 있다.
일손이 바쁜 농번기인 탓에 저녁 연습을 선택하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을 늘어놓는 일도 없다. 도암면을 위하는 일인데다 이웃을 만나 정겨운 입담을 나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집짓기 놀이로, 2007년에는 나무꾼 지게놀이를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오성환 단장은 "도암면민의 경우 단합이 잘되는 데다 연습에 임하는 자세도 매우 진지해 즐겁게 동참하고 있다"면서 "풍류문화큰잔치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행사 준비를 계기로 마을 사람들끼리 공동체 의식을 같게 된다는 점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지도자로서의 소감을 밝혔다.
윤영재 면장은 "도암면은 석가탄신일에 맞춰 운주축제를 개최하는데다 풍류문화잔치까지 치러야 하는데 주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며 "밤 10시가 넘도록 연습이 이어지는데도 항상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로 두번째 열리는 2009 화순풍류문화큰잔치는 14일부터 18일까지 화순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와 공설운동장 일대에서 열린다. -- - - -
외따먹기 놀이는
동네 마을 넓은마당에서 추석무렵 부녀자들이 활달하게 노는 놀이이다.
오이농사를 짓는 과정을 놀이로 만들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놀이는 두 편으로 사람들이 나뉘어져 시작된다. 각 편의 사람들이 오이 줄기를 연상시키듯 줄지어 잡은 다음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대방의 꼬리를 잡았을 경우 한쪽에 앉혀놓고 한바탕 흥겹게 놀게 되고 다시 상대방의 꼬리 한 명을 잡는 방법으로 서너명의 꼬리를 잡을 때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