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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혁명! 괜찮을까?
인류의 3가지 혁명으로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이계 혁명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도 더 전에 농업을 시작했다는 것과 300년도 전에 산업이 해일처럼 일어났던 것, 불과 10년 전에 이계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상식선의 사실이다. 부중력 장치 개발, 초전도 완성, 나노의 계보를 잇는 피코 기술 착수 등 수많은 기술의 범람과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토대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결정판 우주범선을 통한 우주 항해의 일상화에도 불구하고 우린 놀랄 것들이 남아 있었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최강의 과학력을 소유하고도 외계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지금, 지구 내에 또 다른, 허나 동물과는 다른 종족들이 생겨났다면 외계인의 발견과 비슷한 정도의 혁명성을 가지지 않을까? 이러한 점은 사실이 되어가고 있고, 또한 전 세계의 주목을 강렬하게 받고 있다.
학회에 발표된 논문 '유전자의 변이와 발달'에 시제품으로서 소개된...>
신문을 읽고 있던 남자는 자신이 내릴 역이 다가왔음을 보고는 신문을 접고 일어섰다. 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PDA 크기의 부중력 장치가 개발된 뒤로는 대중교통의 이점이 극도로 확산되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이동 수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그만큼 열차들의 체제도 개편되었다. 지금 남자가 내리는 열차도 불과 3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열차가 가고 10여 초 뒤면 또 다른 열차가 공기 중에서 녹아내리듯 도착할 것이고, 녹아내리듯 출발할 것이다.
남자가 접어든 신문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내려버리자 반대쪽에서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푸른색 티와 같은 색 반바지를 입은 20대 청년이었다. 머리는 정돈하지 않았는지 마구 헝클어진 산발이었고 수염도 제멋대로 허공 여기저기를 찌르고 있었다.
"쩝. 궁금하네."
막 열차에 타서 자릴 잡고 신문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놈의 빠른 열차가 후딱 다음 역으로 도착해버렸고, 재수 없게도 신문을 가진 남자가 내려버린 것이다. 그는 머리를 마구 긁적이다가 손이 계속 걸리자 포기해버렸다.
"옛날엔 역 하나 거리가 5분이 넘었다던데, 정말 좋았겠군."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는 자신이 내릴 역이 다가오자 얼른 문 앞에 가서 섰다. 내릴 역을 확인하면 내리는 것은 금방이다. 역과 역 사이의 이동시간이 20초가 채 안 되는 것이다.
"왔냐, 폐인?"
"아직 폐기할 땐 안됐다."
그는 가볍게 받아치며 카운터에 늘어선 카드 중 하나를 훌떡 집어들고 안으로 슥 들어갔다. 그러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남자가 카드 한장을 더 집어들더니 그를 따라갔다.
"넌 뭐냐? 카운터 안 지켜?"
"잠그면 돼, 인마. 주고객들은 지금쯤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받는 중일걸."
"주인 아저씨가 알면 쫓겨날텐데?"
"딱! 한 판만 하자."
그는 알아서 하라는 듯 자신의 자리를 잡고 카드를 눌러 꽂았다. 그의 자리에 빛이 들어오며 문이 닫혔다. 좌석은 마치 어머니의 뱃속처럼 둥근 앉을 공간 하나를 두고 팔을 팔걸이에 끼우면 딱 들어차는 모양이었다. 자연스레 팔을 내려 자릴 잡으면 손에 손잡이가 잡힌다.
이윽고 그의 시야가 환해지면서 앞의 VD(Virtual Display)에 현재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3명 있는 사람이 전부 끼여들기 불가No Interrupt로 설정해둔 것을 본 그는 이제 막 불이 들어오는 자리를 주시하고 통신을 연결했다.
"밥이냐, 돈이냐."
"돈이다!"
"호오, 실력 좀 키우셨나보군. 뭘 키우셨나?"
"데이슬라모 대전."
청년의 눈썹이 꿈틀했다. 곧 씩 미소를 지은 그는 화면에 떠오른 친구의 면상에 대고 감자를 먹였다. 친구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것을 본 그는 상의의 옷맵시를 정리하며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갑자기 약 먹었어? 아니면 많이 쫓겨날 뻔했어?"
"흥, 잘난 척 하는 것도 이젠 끝이야! 오늘은 내가 필살의 비법을 준비했지! 하하하핫!"
그는 시끄럽다는 듯이 코방귀를 탕탕 뀌면서 100여 년쯤 전 인터넷 시대에 유행했다던 단어를 즐겁게 휘갈겼다. 물론 친구도 그가 조금 유식한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속어 몇 개는 외워두고 있었다.
"이 색히! '櫛'이라고 쓰면 못 알아볼 줄 알아!?"
"많이 느셨군. 뛰어볼까?"
그의 시야에서 친구가 사라지고 대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평야와 산지, 강 등이 들어왔다. 아울러 그의 몸에 시작을 뜻하는 기기의 진동이 짜릿하게 들어왔다.
적군 섬멸이라는 임무를 확인하자마자 그는 뒤에 대기하고 있는 군대를 향해 돌아서서 외쳤다.
"국가와 가족과 친구와 사랑을 모두 잊어라! 자신을 위함이 곧 모두를 위함일 것이다!"
군인들은 그저 서 있을 뿐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대규모 시뮬레이션에 하나하나 다 적용한다면 기기가 맛이 갈지도 모른다. 어쨌든 잠시 뒤 그의 통신기에 친구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놈의 패턴 좀 못 바꾸냐? 말을 못 만드는 것도 아닐텐데 왜 지겹게 그 말만 하냐?"
"저게 완성판이야, 인마. 잡담할 여유가 없게 만들어주지."
그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화면을 이동했다. 그가 현재 보는 화면이 그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화면에 군대의 이동이 조금 길게 비춰졌다. 꽤 멀리 앞쪽으로 역시 검은 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막 세워지기 시작하는 망루를 보며 한 마디 건넸다.
"간만에 단순무식한 전장으로 골랐군. 필살의 기술을 연마한 게 여기냐?"
"이제 보여주마! 넌 끝이야!"
친구는 사납게 외쳤다. 그가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갑자기 검은 점들이 앞으로 죽죽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배짱 좋게 씩 웃고는 예상했다는 듯이 군대 좌우 후방에 배치된 유닛들을 끌어냈다. 용기병이었다.
"엉덩이가 가려운 모양이군. 콕콕 쑤셔줘라!"
비록 유닛들의 대답은 없지만 가상 현실 바로 이전 단계인 가상 공간의 게임들을 즐기는 유저들이 마치 가상 현실처럼 즐기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그의 용기병들은 돌격해 들어오는 친구의 기병대를 향해 마주 달려나갔다. 그러나 대놓고 정면으로 보낸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의 시야를 조금 넘어서서 조종이 힘들긴 했지만 용기병들은 기병대의 바깥쪽으로 사선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부대의 거리가 지워졌다.
용기병이 발포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그가 외쳤다.
"발사!"
투타타타타탕! 전장의 좌우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일대의 소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물론 용기병이 사용하는 총기는 현대식 총기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엄청난 초기 구식형이기 때문에 연사는커녕 제대로 된 조준도 어렵다. 그러나 기병대의 돌격대형을 무너뜨리는데는 부족하지 않았다.
용기병은 그대로 기병대의 외곽을 스치듯 비껴 적진으로 달렸다. 동시에 망루가 완성되었고 그는 지휘를 위해 망루로 올라갔다. 화면에 잠시 하늘이 비춰졌다.
그러나 그는 망루에 올라가자마자 잠시 굳었다. 친구의 기병대는 아군 쪽으로 달려오지 않고 용기병을 따라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어느새 궁수진이 배치되어 망루를 향해 불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긴장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제법 늘었군, 성찬이. 요즘은 많이 한가했나봐?"
"흥, 연예계 쪽은 잠시 쉬고 있는 것 뿐이야!"
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망루에서 마지막 지시를 내린 뒤 황급히 떨어지듯 내려왔다. 망루가 불에 휩싸이면 지휘관인 자신을 잃을 확률이 컸고, 그러면 성찬이라고 불린 친구에게 첫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용기병은 그의 지시에 따라 전장의 좌우로 이탈했다. 기병대에 입힌 손실은 용기병 전체의 손실에 비해 미미했다. 게다가 성찬은 어느새 그의 지휘 망루를 없애는 득을 알아차렸고,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그의 부대는 짓쳐들어오는 적들에 대해 독자적인 AI로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간만에 꽤 재미나게 하는군. 투창은 원래 1회용이야. 이겼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는 전방에 배치된 보병들의 격투는 내버려두고 우익으로 달려갔다. 우익에선 그의 용기병을 쫓아낸 성찬의 기병대가 다시 몰려오고 있었다. 돌격 거리도, 주도권도 성찬이 쥐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궁수를 앞으로 내몰았다. 궁수들은 3대로 나뉘어 사격을 가하면서 서 있는 기병대 사이로 전진하여 전열에 섰다. 성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외쳤다.
"컨트롤 미스냐?"
"시꺼, 보기나 해!"
성찬의 기병대가 궁수들을 몰아칠 때까지 궁수들은 채 4회의 사격도 마치지 못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사방으로 흩어졌고 순식간에 완파될 지경에 처했다.
그때, 그가 외쳤다.
"받아라! 천벌이닷!"
순간 와르르릉 하는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서 성찬의 기병대 좌측으로 일대의 기병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성찬이 비명을 지르며 기병대를 빼내는 동안 이번엔 정면에서 기병대가 밀고 들어왔다. 절반으로 갈라둔 나머지 기병이었다. 성찬은 성급한 결정을 꿀떡 삼키고 기병대를 뒤로 뺐다.
그 순간, 정면으로 돌격하던 그의 기병대가 그대로 일제히 좌측 반전을 시도했다. 물론, 그의 보병대를 두들기고 있는 성찬의 보병대 후방이었다. 방어적 본능(?)으로 설계된 AI 때문에 전선 전체에서 물러서는 전투를 벌이던 그의 진영이 일제히 살아났다. 성찬이 보병대를 빼내려고 하면서 엄청난 혼잡이 빚어진 것이다.
결국 양쪽이 군대를 물려 1차적인 재정비를 갖게 되었지만 성찬이 게임을 포기하여 일단 둘은 기기 밖으로 나왔다. 물론 표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제길! 궁극의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작전이었어. 다만 이 윤걸 님을 이기기엔 부족했지. 흐흐."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쿡 찌르며 가운뎃손가락을 성찬에게 펴 보였다. 성찬은 그의 손가락에 걸린 카드를 떫은 얼굴로 받아들었다.
"쳇. 골방에 틀어박혀 매일 게임만 하냐? 요즘은 통 안 보이더니 웬일로 행차야?"
"게임만 해서 이런 실력이 나오냐? 그러니까 넌 안 되는 거야. 흐흐. 오늘도 공짜로 잘 하고 간다~"
"악마 같은 놈. 오늘 하루 종일 일진에 옴 붙었네, 젠장."
"난 이제 들어가서 자야겠어. 어제 간만에 심야 영화를 세 편이나 보고 왔더니 머리가 다 띵하네."
걸은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되는대로 들이마시며 털레털레 걸었다. 이미 아침에 움직여야할 사람들은 다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이들은 청소 로봇과 운동을 위해 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많지 않아서 주택 단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한가했다. 하지만 시내로 나가도 대중 교통이 잘 발달된 덕택에 차는 많지 않아서 한가하기는 매한가지다.
걸은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발길을 틀었다. 근처에 있는 공원은 제법 볼 것도 많고 산책하기도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주 조깅 코스이기도 하다.
역시나 조깅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걷고 있는 사람이 민망할 듯도 하지만 걸은 햇살이 못 따라올까 겁이라도 나는 듯 거북이 걸음을 유지했다.
이번에 지나친 두 사람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깅 복장이 잘 통일되어 있고 머리 모양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딘가의 운동 선수일까?
조금 걸어가던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공원 내에 원형 분수대가 설치된 곳이었다. 이미 꽤 많은 - 이전과 비교해서 -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분수대를 주목하고 있었다. 공원 내의 작은 분수대가 볼만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떠 있는 공중파 VD를 보기 위해서였다. 평소였으면 별 관심 없이 지나쳤겠지만, 그 공중파는 아침에 그가 다 못 읽은 소재를 다루는 논평 프로그램이었다. 그의 발걸음도 잠시 멈췄다.
"그럼, 우리가 상상해왔던 존재들이 활보할 수 있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나 학회에 보고된 내용을 박사님이 모두 공개하셔서 입수한 정보들에 따르면, 인류의 문명에 큰 획을 그을 과학적 산물이라는 것에는 틀림없으나, 그에 따르는 위험도도 만만찮다고 합니다. 한 마디 해주십시오."
아나운서 다음에 화면에 비춰진 인물은 걸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학회에 보고한 뒤 즉석에서조차 그 공헌도와 위험성에 대해 언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발표 전에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지요."
"정길이잖아? 어쭈, 출세했는데?"
걸은 의외라면서, 그러나 즐겁게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하긴, 박사님이 그 정도 생각 못할 리는 없겠지요. 결론은 어떻습니까?"
"이 자료를 모두 공개해버린 것은 그러한 위험을 내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숨김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제3자가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모두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연구 과정은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으니 어디서 이용할 가능성은 없고 그렇다면 결과만을 이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과만을 이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제어할 수 있을 겁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놀고 있네. 놈들은 복제 방지 패치라도 해놨어?"
걸은 아나운서의 동조와는 달리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상정길 박사 - 그의 옛 친구는 그 생각도 미리 해둔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위험을 내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 결과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겁니다. 무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갈 때도, 유전자 복제가 이루어졌을 때도 같은 걱정들은 있었습니다. 정도와 사용에 약간의 시행착오는 초반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걸 듣고 보니 걱정거리가 다 해소되는 듯 하군요. 하지만 새로운 걱정거리가 떠오르는데요. 결과물만을 이용한다고 하셨는데, 만약 녀석들이 복제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들의 연구 결과인 와쿠 1호는 말 그대로 연구의 성과물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지요. 이 녀석을 이용할 단계까지 성장시키고 복제하려면 웬만한 국가 예산하고 맞먹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없애는 건 쉽지요. 신화에 나오듯 이 녀석들이 힘이 세고 무기가 날카로울지라도 우리의 과학력은 당시의 신들의 능력과도 비등하지 않습니까?"
방송에서 잔잔한 웃음들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공원의 방청객들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흘렸다.
"이득을 노리고 일을 꾸미더라도 잃는 게 더 많을 겁니다. 이놈들은 비싸거든요. 후후."
"잘 알겠습니다."
걸이 본 방송은 거기까지였다. 뒤이어 잡다한 말들이 조금 오간 뒤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 걸었다.
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집으로 가는 골목을 돌았을 때였다. 언뜻 보인 뒤로 조깅 복장을 한 두 명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그가 공원에 막 발을 들였을 때, 중간에 방송을 보았을 때, 공원을 나올 때 모두 목격되었다. 때로는 그를 앞질러 갔지만 때로는 뒤에서 따라왔다. 미행일까? 걸의 전신에 털이 곤두서며 순간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직 집까지는 골목이 하나 더 있다. 걸은 달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발을 재게 놀렸다.
날 따라 꽤나 멀어보이는 골목을 휙 돌아 적당한 곳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조깅 복장의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제대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허무하게도 골목을 슥 지나쳐 가버렸다. 걸은 당장 나가지 않고 뒤를 주시하면서 기다렸다.
어느 정도 긴장 속의 재미를 느낀 탓일까. 걸은 이대로 기다리는 것보다 예상 지점에서 지켜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일어나서 후다닥 이동했다. 숨이 차도록 달려 다음 블럭으로 이동한 그는 담장 옆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황급히 입을 막으며 몸을 숨겼다. 가까운 거리에 그 두 남자가 등을 보인 채 딴청을 피우며 서 있었던 것이다.
걸이 약간 후회를 하며 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걸이 다시 고개를 내밀어보니 그들은 또 이동 중이었다. 스스로 뛰어나다는 머리가 회전하면서 결론을 도출했고,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그 앞쪽에는 멀리 한 여성이 역시 조깅복 차림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대낮부터 납치할까?'
걸은 호기심보다는 무료한 휴일 오후 뭔가 즐거운 놀이를 찾은 아이처럼 재미 삼아 그들을 미행했다.
두 남자는 앞의 여자를 미행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같은 복장에 머리 모양으로 보아선 영화에 흔히 나오는 어떤 일을 기대해봄직 했다.
물고 물리는 미행 끝에 여성이 한 집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집인 모양이다. 그녀가 문을 열기 시작함과 동시에 남자들의 행동이 매우 빨라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두 남자의 방향이 정반대였다.
걸은 미처 놀랄 새도 없이 그 남자와 직면했다.
"저 여자와는 무슨 관계냐."
"아무 관계도..."
"내게 볼일 있나."
걸은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를 잠시 응시했다가, 꾸벅 인사했다.
"가보죠, 뭐."
남자는 걸이 먼저 휙 돌아서서 가버리자 잠시 그의 등을 응시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첫댓글 櫛 -_-.....
櫛-_-.....(2) 아직까진 시작 좋습니다 쭐군..어서 연재하시오~ -ㅅ-;;
아직까진 좋다라...-,-; 연재 속도? 내용? 그럼 나중에 가면 안 좋아진단 말입니까 ㅠ.ㅜ
오와, 멋진 이야기였습니다[덥석]
머 뒷편이 궁금하니 얼렁얼렁 올리라는 말이라는..후훗..그래야 비평을 하든 비판을 하든 할것 아니오 오호호호 -0-;;
얼른 올리고 싶은데 new 가 오래 켜지길 기대하며 12시 넘길 기다리고 있다는--;;; 원래 계획도 자정 타이밍에 올리는 건데 앞의 두 화는 실패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