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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고와의 전쟁
◉ 학습 목표 ◉
1. 몽고와의 항쟁 과정을 최씨 정권, 민중, 불교계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2. 삼별초의 항쟁 과정을 그 이동 경로를 통해 진술할 수 있다
3. 원 지배하의 고려의 정치, 사회, 문화, 영토의 변화를 열거할 수 있다
4. 고려인의 꿋꿋한 정신을 이어받아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1) 고려와 몽고의 접촉
→13세기 초 고려는 거란이 추격해 온 몽고와 최초로 접촉하였다.
⑴ 13세기 초의 정세
① 몽고는 13세기 초에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되었다
② 몽고가 금을 공격하자, 금 지배하의 거란족이 고려에 침입
⑵ 강동성 싸움 : 이 때 고려는 거란을 추격해온 몽고와 동진국과 연합하여 강동성을
함락시킴. 이를 계기로 몽고는 고려에 무리한 조공을 요구
2) 몽고와의 전쟁
→고려는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여 40여 년간 항쟁
⑴ 제1차 침입(1231)
몽고의 제1차 침입
- 몽고 사신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침입 →개경을 포위 →강화 →몽고는 다루가치를 남기고 철수
⑵ 고려의 항전
① 강화도 천도(1232) : 최우, 강화도 천도 - 장기적 항전 태세
팔만대장경
⑶ 몽고의 계속되는 침입과 항전
① 2차 침입 : 승려 김윤후 - 적장 살리타 사살
② 3차 침입 : 몽고군이 한반도 남부 지역까지 침입, 부인사 대장경판과 황룡사 9층탑 등의
문화재 소실
③ 계속되는 침략 : 몽고는 금을 멸한 뒤 여러 차례 침입, 고려는 40 여 년 간이나 항전
몽고의 제4차 침입
⑷ 전란의 피해 : 인구 격감 , 국토 황폐, 문화재 소실
⑸ 강화 : 최씨 정권의 몰락으로 강화론 대두
→원종의 개경 환도(1270)로 몽고와의 강화 성립
3) 삼별초의 항쟁
→고려인의 자주 정신은 삼별초의 항전으로 표출되었다.
⑴ 삼별초의 반몽 투쟁 : 환도 반대, 4년 동안 항몽 투쟁
[ 강화도 (배중손) → 진도 → 제주도 (김통정) ]
삼별초의 항쟁
⑵ 삼별초 항전의 의의 : 고려의 무신과 민중을 중심으로 지켜져 온 자주 정신의 발로
4) 원과의 관계
→개경 환도 후 고려는 원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다
⑴ 고려.원의 일본 정벌 : 몽고에 의해 시도된 일본 정벌에 고려는 군대,
군함과 군량미를 제공
→두 차례의 원정은 태풍으로 실패
고려.원의 일본원정
⑵ 영토 상실
① 철령 이북의 영토에 쌍성 총관부 설치 → 공민왕 때 수복
쌍성총관부 회복
② 자비령 이북의 영토에 동녕부 설치
→충렬왕 때 회복
③ 제주도에 탐라 총관부 설치 →충렬왕 때 회복
⑶ 정치적 간섭
① 관제와 왕실 용어 격하
- 문하성.상서성 → 첨의부
- 6부 → 4사로 통합
- 도병마사 → 도평의사사
- 중추원 → 밀직사
- 폐하 → 전하
- 태자 → 세자
② 내정 간섭 기구 설치 : 정동 행성 이문소 존속, 순마소 설치, 다루가치 배치
▣ 정동행성
13세기 말 원에 의하여 일본 정벌을 위한 전방 사령부로서 고려에 설치되었다가, 그 뒤에도 기능은 전화되었으나 고려 말까지 존속하였던 관서이다. 정식 명칭은 정동행중서성으로서, 정동은 일본 정벌을 뜻하는 것이고, 행중서성은 중앙 정부의 중서성의 지방 파견 기관을 뜻하는 것이다. 정동행성은 명의상으로는 엄연한 관서였으며, 그 우두머리인 좌승상은 고려 왕이 겸임하였다. 정동행성은 부속 기관으로서 이문소를 두었다. 이는 대원 관계에서의 범죄 행위를 다스리는 업무를 맡았는데, 이로써 부원 세력을 뒷받침하였다. 정동행성의 존재는 첫째 행성의 승상으로 고려 왕을 임명함으로써 고려를 형식상 원의 한 행성과 같이 규정하려 하였고, 둘째, 고려와 원과의 교섭 통로를 확보하였으며, 셋째, 부원 세력을 뒷받침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③ 무리한 조공 요구 : 금, 은, 해동청(매)
⑷ 여.원의 풍속 교류
① 고려의 상류 사회에 몽고풍 유행 : 몽고어, 몽고식 의복
② 원의 상류 사회에도 고려양(고려식 생활 풍습) 유행
▣ 몽고풍과 고려양
몽고풍으로는 변발과 호복, 족두리, 연지, 장도, 여자들이 머리를 땋을 때 머리 숱이 많아 보이도록 넣는 다리, 장사치와 같이 아치 또는 치가 붙는 말, 임금의 진지상을 뜻하는 수라라는 말 등이 있으며, 고려양으로는 고려 만두, 고려 떡, 의복, 신발 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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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성 평가 문제
1. 고려가 몽고와 접촉하게된 최초의 사건은 무엇인가?
( )
2. 몽고가 침입하자 당시 집권자인 최우는 서울을 ( )로 옮겨 장기 항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3. 고려가 몽고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던 사실은? ( )
4. 몽고 침입으로 소실된 문화재중 대표적인 것 두 가지는? ( , )
5. 몽고의 2차 침입때 처인성에서 몽고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고려의 승장은 ? ( )
6. 몽고군이 쳐들어 왔을때 노비와 천민들도 용감히 싸웠다.
지광수 등은 ( )에서 끝가지 싸워 성을 지켜냈다.
7.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그 후에도 계속 남아 있던 고려를 간섭한 기구는 ? ( )
8. 몽고에 에 대한 굴욕적 강화에 저항한 삼별초의 근거지를 순서대로 쓰시오.
( → → )
9. 원은 고려의 영토를 차지하여 그들의 지배하에 두었다.
철령 이북의 땅을 다스리기 위하여 화주에 ( )를, 자비령 이북의 땅을 다스리기 위하여 서경에 ( )를, 삼별초의 항쟁을 진압한 제주도에는 ( )를 설치하였다. 탐라 총관부와 동녕부는 충렬왕때 되찾았고, 상성 총관부는 공민왕 때 회복하였다
10. 여.원간에 문물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고려의 상류 층에 몽고의 풍습이 유행하였는데 이를
( )이라하고, 원나라에서 유행한 고려의 생활 풍습을 ( )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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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답
1.강동성 싸움 2.강화도 3.팔만 대장경의 조판
4.부인사 대장경, 황룡사 9층 목탑 5.김윤후
6. 충주성 7. 정동 행성 8.강화도 → 진도 → 제주도
9. 쌍성 총관부, 동녕부, 탐라 총관부 10.몽고풍, 고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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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형이의 질문이 있어 올려 봅니다. 함 읽어보세요.
고재형 꼭 읽어봐라!! 근데 사진 엑박이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