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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 서운산 청룡사 대웅전 주련 京畿 安城 瑞雲山 靑龍寺 大雄殿 柱聯
대웅전 보물 제824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어 이를 다포(多包)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봉을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고 합니다.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눈길을 끌며, 건물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으로 꾸몄습니다.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청룡사(靑龍寺)는 안성군 서운면 청룡리 28번지 서운산(瑞雲山) 아래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 교구 본사 용주사(龍珠寺) 말사입니다.
고려 원종 6년(1265)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공민왕 13년(1364) 나옹왕사(懶翁王師 1320~1373)가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이 때 나옹화상(懶翁和尙)이 한 마리 푸른 용이 오색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오르 내리는 것을 보고는 산이름을 서운산(瑞雲山), 사명(寺名)을 청룡사(靑龍寺)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조선 16대 인조(仁祖)의 셋째 왕자이며 효종(孝宗)의 동생인 인평대군(麟坪
大君 1622~1658)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청룡사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특이 바우덕이가 유명합니다.
지금도 청룡사 건너편에는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청룡사 성보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824호)을 비롯 명부전ㆍ봉향각ㆍ
관음전ㆍ사천왕문ㆍ3층석탑ㆍ청룡사사적비(유형문화재 제124호)ㆍ
청룡사 동종(보물 제11-4호)ㆍ청룡사 감로탱(보물 1302호)ㆍ청룡사
영산회괘불탱(보물제 1257호)ㆍ금동관음좌상(경기 유형문화재 제170호)
등이 있습니다.
古佛未生前 고불미생전 凝然一相圓 응연일상원 釋迦猶未會 석가유미회 迦葉豈能傳 가섭기능전
옛 부처 나기 전 그 이전부터 두렷이 환히 밝은 한 동그라미 석가도 오히려 모르는 건데 가섭이 어찌 알고 능히 전하랴!
【解說】
위의 주련 내용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 첫머리에 나오는 글의 주해(註解)에 나오는 송(頌)입니다.
선가귀감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會生不會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유일물어차 종본이래 소소영영 불회생불회멸 명부득상부득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일물(一物)에 대한 주해를 붙인 것이 본 주련의 게송입니다.
일물자(一物者)는 하물(何物)고 하며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습니다.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묻고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어 일원상(一圓相) 동그리미 하나를 그린 것입니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묻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느냐?" 하니 신회(神會)선사가 나와 대답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 (孼子)가 된 까닭이다.
회양(懷讓)선사가 숭산(崇山)으로부터 와서 뵈오니, 육조가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할 때에, 회양은 어쩔 줄 모르다가 8년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가령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嫡子)가 된 까닭이다.
이상 선가귀감에 있는 내용을 옮겨 보았습니다.
위에서 살펴 본 일물(一物)이 옛 부처 나기전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소식인데 두렷이 환히 밝은 것인데 이것을 일러 '마음이다' '성품이다' '도다' '진리다' 하고 이름 지어 갖다 붙여도 그 참된 모양을 나타낼 수 없어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동그라미가 일물(一物)을 참되게 온전히 나타내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원상(一圓相)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는 부처가 출현하기 전부터 고요하게 두렷이 밝은 것이라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인데 석가가 어찌 알며 어떻게 이 소식을 가섭에게 전하겠느냐 하는 격외의 소식입니다. 부처님은 이를 안다 모른다는 것을 떠나 있습니다. 망상을 내어 분별하면 그르칩니다. 일물에 대하여 항차 일물이라고 해도 맞지 않다고 했듯이 일물에 대하여 무어라 벙긋하면 어긋나는 것이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 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오비구에게 법을 전하여 쿠시나가라 사라쌍수에서 위대한 열반을 보이실 때까지 길에서 길로 하루도 쉬임없이 수많은 중생에게 법을 설하고 제도하셨는데, 쿠시나가라 사라쌍수에서 열반을 보이실 때, 말씀하시기를 "녹야원에서 쿠시나가라에 이르기까지 한 법(法)도 설하지 않았 다." 하셨습니다. 이 뜻을 음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註】
고불(古佛) : 고불(古佛)은 ‘옛 부처님’이란 뜻으로 과거칠불(過去七佛)을 말합니다. 과거칠불은 과거 장엄겁(莊嚴劫)에 출현하신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과, 현재 현겁(賢劫)에 출현하신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 모니불(拘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말합니다.
<참고> 선불교에서 조사(祖師)에 대한 경칭으로 고불(古佛)이란 칭호를 쓰기도 합니다. 선불교에서 조주선사(趙州禪師)가 처음 고불(古佛)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육조혜능(六祖慧能)을 조계고불(曹溪古佛)이라 경칭하였고, 마조도일(馬祖道一)은 강서고불(江西古佛), 위산영우(潙山靈祐)는 위산고불(潙山古佛), 중봉명본(中峰 明本)은 (江南古佛)이라 합니다. 고불 칭호를 받은 분은 다섯 분 뿐이라고 합니다.
응연(凝然) : 말없이 고요히 있는 모양입니다.
일상원(一相圓) : ○ 일원상(一圓相)을 말합니다. 여기서 일상원(一相圓)이라 한 것은 송(頌)의 운(韻)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바꾸어 놓은 것 같습니다. 일원상(一圓相)은 고불미생전의 소식을 무어라 이름 지을 것이 없어서 '○'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마음이다 성품이다 진리다 도다 억지로 이름을 지어 부르지만 그것이 참 모양을 말한다 할 수 없으므로 동그라미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섭(迦葉) : 범어로 마하카샤파라 하며 마하가섭(摩訶迦葉)로 음사합니다. 한역하면 대음광(大飮光)혹은 대구씨(大龜氏)라고도 합니다. 마하가섭을 가섭(迦葉)이라 약칭하며 한역하면 보통 음광존자(飮光尊者)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의식주(衣食住)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 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는 부처님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의 의발을 받은 상수제자로서 부처님 입멸후 교단을 이끌었으며, 왕사성 칠엽굴에서 오백 아라한이 모여 결집한 제일결집(第一結集)에 상수가 되었습니다. 부처님 이후 법통을 따질 때는 초조(初祖)가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상식방의 십대제자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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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우님 설명을 읽기 전엔 가섭 존자께서 부처님보다 더 뛰어나다는 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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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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