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닷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
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
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
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
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
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
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꿈꾸는 진주여 바다로 가자
[마네킹]의 목에 걸려서 까물치는
진주목걸이의 새파란 눈동자는
남양의 물결에 젖어있고나.
바다의 안개에 흐려있는 파란 향수를 감추기 위하여 너는 일부러
벙어리를 꾸미는 줄 나는 안다나.
너의 말없는 눈동자 속에서는
열대의 태양 아래 과일은 붉을게다.
키다리 야자수는 하늘의 구름을 붙잡으려고
네 활개를 저으며 춤을 추겠지.
바다에는 달이 빠져 피를 흘려서
미쳐서 날뛰며 몸부림치는 물결 위에
오늘도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독목선의 노젓는 소리는
삐-걱 빼-걱
유량할게다.
영원의 성장을 숨쉬는 해초의 자지빛 산림 속에서
너에게 [키스]하던 상어의 딸들이 그립다지.
탄식하는 벙어리의 눈동자여
너와 나 바다로 아니가려니?
녹슬은 두 마음을 잠그러 가자
토인의 여자의 진흙빛 손가락에서
모래와 함께 새어버린
너의 행복의 조약돌들을 집으러 가자.
바다의 인어와 같이 나는
푸른 하늘이 마시고 싶다.
[페이브멘트]를 때리는 수없는 구두소리.
진주와 나의 귀는 우리들의 꿈의 육지에 부딪치는 물결의 속삭임에 기울어진다.
오- 어린 바다여. 나는 네게로 날아가는 날개를 기르고 있다.
연도
내 신은
잠든 아기의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는
즐거우려는 자라려는 날뛰려는
망아지와 장미를 시들게 하는
이 사악한 비바람을 가장 미워하는 신이리라.
내 신은
내마음 속의 주착없는 방심과
간사한 충동과 친하려는 교태를
가장 노하시는 신이리라.
내 신은
사막에 거꾸러져 웨치는 [아라비아]사람들의
캄캄한 마음에 떠오르는 태양 ---
애급의 채찍을 피해서 홍해에 막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앞에 갑자기 길이던 신이리라.
내 신은
내 항구도 피란처도 안식도 아니오
내 싸움 속에서 나를 지키고 고무하는 소리리라.
연약하려는 낙망하려는 나를 노려보는 엄숙한 눈쌀이리라.
파랑 항구
아무도 사랑할 수 있는 소녀처럼
파랑 치마를 두루고
4월을 고대하는 항구에는
국기에 향하여 그다지 경의롤 표하지두 않는
게으른 윤선들이 지금쯤 바다로부터 돌아왔겠지.
그리고 무례하게두 퍼억 퍼억 담배를 피우겠지.
나는 3국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해관관리와 마주서서
[보로딘]과 꼭같은 한 [러시아]사람과
항용 목례를 바꾸었다.
그 슬픈 기적에는 아무두 마음이 강하지 못한가 보아서
주민들은 항용 걸핏하면 가장이며 장사며 연애를 황망히 정리해 가지고
다음날은 벌써 정기선 배표를 사군했다.
항구는 국적을 자랑하지 않았다.
항구는 범죄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항구는 바다의 국경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도 오고 아무도 돌아갔다.
오늘도 고향은
오늘도 고향은 천리요 또 5백리
뜻하지 않은 위도가 은하로구나
사랑스런 살붙이들
쟁쟁한 목소리 아물거리는 얼굴
도시 휘어잡을 수 없이
구름만 북으로 밀려가는구나
여러 10년 하루같이 모두들 고대턴 것
눈앞에 어른거리면서도 종내 나서지 않아
동무와 안타까운 소식 이야기하며 밤을 새우며
목이 말라 가슴이 타 냉수를 켜며
이달도 손때 밴 자전을 팔아 즐거이 살아가리
연애의 단면
애인이여
당신이 나를 가지고 있다고 안심할 때 나는 당신의 밖에 있읍니다.
만약에 당신의 속에 내가 있다고 하면 나는 한덩어리 목탄에 불과할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놓아보내는 때 당신은 가장 많이 나를 붙잡고 있읍니다.
애인이여
나는 어린 제비인데 당신의 의지는 끝이 없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