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오”라니. 이게 사람이 낼 소리인가? 더구나 점잖은 테니스코트에서.
여자테니스 최고 인기스타인 마리아 샤라포바(18·러시아·세계 2위)가 내지르는 소리는 정말 험악했다. 경기 내내 쉬지도 않는다. 초반 “얍”
정도로 시작된 샤라포바의 함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으아” “아악” 비슷하게 변했고 경기 후반 승부의 고비처에 가선 “끄아” “캬아”로 영락없는
짐승의 울부짖음이 됐다.
유서 깊은 롤랑가로스를 이런 소리로 어지럽히다니. 고약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웃기는 비명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상대 선수 입장에선 열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오픈 1회전 샤라포바와 리네츠카야의 경기를 중계하던
유로 스포츠 TV해설자는 “난 정말 샤라포바의 경기를 사랑한다. 하지만 제발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멋진 동시에 정말 시끄러운 경기였다”는
코멘트를 연발했다. 소란스러운 관중에게 “신사 숙녀 여러분, 조용히 하시라”고 주의를 줄 수 있는 테니스 주심의 권한은 최소한 샤라포바의
경기에선 일시 정지된다. “대체 누구더러 조용히 하라는 얘기냐”는 불만이 즉시 터져나올 테니까.
어릴 적부터 경기 중
괴성으로 유명했던 샤라포바는 동료 선수들의 강한 항의 때문에 한때 입을 완전히 다물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윔블던 여자단식 우승 이후로 다시
거리낌없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데시벨도 더 올라갔다. 하지만 ‘신분’이 달라진 윔블던 챔피언에게 소리를 지르라 말라 참견할 사람은 이제 없다.
윔블던을 정복한 샤라포바가
한국에서 경기를 한 것이 지난해 9월 한솔오픈 때였다. 그때 올림픽 코트에 9000여명의 구름관중이 몰려 ‘건국 이래 최대의 테니스 인파’를
기록했었다. 올해도 다시 초청하려 했지만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테니스는 힘겹게 버텨간다.
남자는 이형택, 여자는 조윤정 두 명의 선수가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를 뛰지만 세계의 벽은 높다. 남자는 이형택 뒤에 전웅선과 김선용 같은
후배라도 있지만 여자는 조윤정과 힘을 합쳐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내밀 신예가 한 명도 없다.
샤라포바보다 더 험하게 소리를
질러도 좋으니 한국에도 저런 선수가 한 명쯤 나온다면 코트에 얼마나 생기가 돌까. 파리 롤랑가로스의 시뻘건 클레이와 꽉찬 관중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