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으로부터 ‘무엇’이 들어오면서 유럽인들의 식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무엇’은 음식이나 차의 맛을 더욱 맛있게 해주지만 직접 먹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것은 그 예술적 가치로 인해 골동품이나 특별한 것을 모으는 수집가들에게 귀중한 보물로 취급되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마르코폴로가 소개했다는 뜻에서 ‘포셀린(Porcelain)’이라고도 하고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뜻에서 '차이나(China)'라고도 불리는 ‘무엇’은 바로 동양의 ‘자기(瓷器)’이다.
부천 유럽자기박물관에서는 동양 자기의 고고함 위에 서양의 화려함이 덧붙여진 유럽 자기를 한가득 볼 수 있다. 유럽 최초의 자기 마이센(Meissen), 영국 황실전용자기 로열 우스터(Royal worcester), 청금색으로 유명한 세브르(Sevres), 꽃과 과일 무늬가 인상적인 헤렌드(Herend) 등 유럽 자기 명가에서 만들어낸 명품들이 전시장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어느 유럽 황실의 고풍스런 Dining room처럼 꾸며진 이곳에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유럽 자기들과의 만남을 즐겨보자.
유럽 자기, 그 독특한 매력에 취하다.
유럽자기박물관은 유럽 각국의 자기들을 보여주는 코너와 마이센 특별 전시실, 15개의 자기 그림 코너, 유럽 자기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미디어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물관 바닥에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데, 도로시를 인도하는 오즈의 Yellow road처럼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입구에서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카펫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편안히 박물관 곳곳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맑고 투명한 유리관 속에 백설 공주처럼 모셔져 있는 세브르의 ‘평화의 화병’이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꽃을 그려 넣은 세브르의 대표작품으로 지중해의 푸른 바다 빛깔과 같은 청색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화병의 받침대는 금색으로 치장되어 있는데 세브르의 청색과 무척 잘 어울려 화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사진1) 그 뒤에 자리한 로열 우스터의 ‘일본풍의 엽전 화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푸른 색채 위에 ‘엽전’과 ‘대나무’ 등의 문양을 넣어 만든 작품이다. 일본 무사의 위엄과 정신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전해지지만, 좁은 입구에 동그랗고 넓은 몸체가 주는 느낌은 ‘위엄’보다는 ‘익살’에 가까워 보인다.(사진2) ‘활짝 피는 꽃병’이라는 이름의 자기는 말 그대로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한 송의 꽃과 같은 모습이다. 꽃잎의 끝부분이 금박으로 칠해져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랜 세월 탓에 부분부분 금박이 흐려진 곳도 있지만 백합을 연상케 하는 순백색의 바탕 위로 분홍과 초록의 꾸밈이 여전히 잘 어우러져 있어 화려한 느낌은 조금도 줄지 않은 듯하다.(사진3) 이 외에도 지앤씨의 ‘야생화와 천사’, 로열덜튼의 ‘기타치는 여인’, 카이저의 ‘파라오들의 생활’ 등 그 아름다움에 모두 넋을 빼놓고 바라보게 되는 작품들이 가득히 전시되어 있다.
유럽 자기의 명가, 명품은 장인이 만든다.
동서 교역을 통해 중국 자기와 조우한 서양은 곧 동양 자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동양 특유의 오묘한 빛깔을 머금고 두드리면 맑은 소리를 내는 자기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었다. 유럽 각국에서는 이러한 자기를 직접 생산해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1709년 독일 작센 왕국의 수도였던 드레스덴 근처의 마이센 가마에서 유럽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 유럽 자기를 만들어 낸 도공 뵈트거는 자기 제조법이 외부에 유출되지 못하도록 성에 감금되는 슬픈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덕분에 마이센의 제조비법은 지금까지도 유출된 적이 없다고 한다. 마이센은 유럽에서 최초로 제작된 자기라는 의미와 그 작품성과 소장 가치면에서 유럽 최고라는 두 가지 의미의 ‘First'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유럽 자기 박물관에는 마이센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유럽 최초의 자기를 만들어낸 마이센의 작품 세계와 만나볼 수 있다. 동양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청색으로 서양의 이미지(크리스마스 풍경이나 고양이와 노는 아랍 소년)를 그려낸 작품들은 마이센의 독특한 동서문화 화합의 세계를 보여준다.
마이센에서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특색 있는 자기들이 만들어져 왔는데, 프랑스 왕실 직속의 세브르(Sevres)와 영국의 로열 우스터(Royal worcester), 웨지우드(Wedgewood), 이탈리아의 리챠드 지노리(Richard ginori), 리모즈(Limoges), 헝가리의 헤렌드(Herend), 덴마크의 로열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등이 오늘날까지 유명하다.
자기에 그린 명화, 붓 가는 곳이 곧 캠퍼스이다.
유럽 최고의 장인들이 자기를 특별한 ‘캠퍼스’ 삼아 그 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 순간 자기는 ‘그릇’이 아니라 장인의 혼을 담는 ‘도화지’가 되었다. 박물관 벽면에 걸려 있는 15개의 그림들은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매우 귀중한 예술품으로 19세기 서양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아름다운 로라’라는 이름의 작품은 독일 사교계의 화려함을, ‘마리아와 아기예수’는 크리스트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들의 신앙을, ‘거울 보는 아라비아 여인’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로망을 읽을 수 있다.
유럽 어느 황실의 Dining room, 유럽 자기 박물관
유럽 자기 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유럽 어느 황실의 ‘Dining room’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삭막한 전시관이 아니라 고급 원목 찬장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디너 세트. 키 작은 장식장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독특한 문양의 찻잔들. 식탁 위에 크리스털 촛대와 더불어 세팅 되어 있는 독일 황실에서 사용했던 디너 서비스. 당장이라도 예쁜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가 담겨져 나올듯한 느낌이다. 기품 있는 안주인에게 소개 받는 기분으로 안내 문구를 읽어가며 가만가만 구경하다보면 이들의 처음 주인이었을 유럽 귀족들의 모습이 쉽게 떠올려 진다. 특별한 곳으로 꾸며진 독특한 박물관에서 동양 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경쾌함과 화려함이 느껴지는 유럽 자기의 향연을 즐겨보자. 좋은 그릇을 알아보는 안목 또한 높아질 것이다.
▷ 알아두면 좋은 정보
교통안내 : 지하철 = 1호선 소사역 하차. 마을버스 이용(0162, 019, 0311)
관람시간 : 10:00~17:00(11월~2월), 10:00~18:00(3월~10월)
(휴관일 : 1월1일, 설날, 추석,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입장료 : 일반(1500원), 학생(1000원), 어린이(700원)
문의 : 03266102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