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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키 조명 속에 어우러진 니나노판
현란한 무대조명과 그 조명 아래에서 관능적인 율동으로 뭇 주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무희들.
마음이 평정한 사람이라도 그런 분위기에 일단 접하게 되면 공연히 마음이 들뜨게 되고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 TV범죄의 수사드라마에 가끔 눈요기꺼리로 삽입되는 이런 장면도 민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상황이 환락가가 아닌 교회, 그것도 본당에서 매주 마다 벌어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지난 4월 15일 오후 7시.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본부'라는 현판이 붙은 「낙성대교회」, 토요일마다 열리는「토요공개방송」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아주 얇고 붉은 천이 드리워진 무대 위에는 현란한 싸이키 조명이 돌아가는데 거기에다 원조명까지 받으면서 한 무희가 춤을 추고 있었다. 무릎에서 약 15cm는 족히 올라간 스커트의 무희는 야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려는 듯 온 몸을 꼬아댔다. 그것을 지켜보는 약 1천5백명의 방청객(?)들은 거의가 20대의 젊은이였다. 정명석을 말세심판주로 믿는 대부분이 대학생인 그들은 막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들이 소위 MS회원들이다.
옆자리에서는 한 여대생이 정명석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에 대하여 신입회원에게 교육을 시키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따라해. '선생님' 해봐. 아니, '생'자에 액센트를 주라니까? '선쌩님' 하고 말야."
뒷자리에서는 두 여대생이 한창 깔깔대고 있었다.
"얘, 나 예뻐보이지 않아? 이 옷 말이야? 여기 들어오면 조명 때문에 훨씬 예뻐보인다구…."
막은 예정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열렸다. 선생님의 도착이 늦은 때문이었다. 무대 왼편의 트로피들이 눈에 들어오고 중앙의 「토요공개방송」이라는 글자 밑에 「새역사 새노래」라는 표어가 선명하게 보였다.
사회를 맡은 여학생에 의해 1번으로 호명된 여학생이 무대에 올랐다. 노래를 부를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곳은 '오늘도 걷는다마는'이 틀림없었다. 단지 가사가 조금 달랐다. 그들이 말하는 '새노래'였다. 그 가사를 소개하면-
-오늘도 믿는다마는-
1. 오늘도 믿는다마는 일편단심 이 발길 지나온 기성길은 미련도 없다 새역사 새노래소리 주님을 모시고서 섭리길 가는 길은 한이 없어라
2. 역사는 돌도 돌아서 동시성적 섭리사 옛섭리자욱에는 한이 서린다 새역사 나팔소리 옛님이 생각나며 MS의 외칠 말씀은 한이 없어라
3. 정들은 섭리동산은 천국같이 즐거워 가야 할 하늘길에 태양도 찬란 사랑과 진리말씀 심정깊이 스미는데 영원히 내갈길은 한이 없어라
'새노래'를 부르며 여학생은 늘씬한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특이한 몸짓(?)이 나올 때마다 사방에서 환호 소리와 '언니' 소리가 터져나왔다. 침넘어가는 소리가 '꼴깍' 날 만큼 관객들의 마음을 홀딱 뒤집어 놓고 여학생은 무대를 내려갔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사회자가 광고를 한다.
"지금 선생님께서 이리로 출발하셨답니다. 지금 선생님…… 장내를 좀 정리해 주십시오"
안내방송이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향수냄새가 코를 찔렀다. 객석 맨 앞줄에 놓여진 의자의 등받이가 향수로 도배질을 당하고 있었다. 의자뿐만 아니라 무대에도 구석구석 향수가 뿌려졌다. '냄새가 진동한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오징어 다리를 좋아하는 선생님
장내가 일순 긴장되었다. 건장한 경호원에 둘러싸인 정명석이 등장했다. 그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경호원들의 날카로운 눈매가 정명석의 뒷좌석부터 훑어나갔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당장 달려들어 일을 내고 말 것같은 살기등등한 표정들이었다.
측근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던 정명석이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그는 남청색 양복 상의(노란 금도금한 단추가 두줄씩 부착)에 칼같이 줄을 세운 흰바지를 입고 있었다. 심판주나 선생님의 이미지보다는 인기가수나 쇼프로의 MC에게 차라리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
뒤를 이어 몇 명의 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디스코 음악에 맞춰 디스코를 추고 '무너진 사랑탑'의 곡에 가사를 바꾼 예의 '새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올랐던 학생들은 정명석이 건네주는 작은 트로피를 받고 악수를 나눈 뒤 내려갔다. 그러면 정명석은 더듬더듬 몇 마디, 그것도 혀짧은 소리를 하고는 한편으로 물러앉아 열심히 오징어 다리를 씹어대는 것이었다. 조리가 없고 유창하지 못한 말주변을 오징어 다리에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정치 이론가 정명석의 속셈
"우리의 정명석 참모총장님께 경례. 상·황·판·단"
노래는 모두 끝나고 이제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위의 경례는 연극이 시작되기 전, 정명석에게 붙여진 것이다. 정명석은 느닷없이 참모총장으로 둔갑되었다. 그런데 '상황판단'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후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지난 주에 했던 정명석의 설교제목이었다. 연극내용은 병영생활을 소재로 한 코미디였는데, 예의 '상황판단'이 경례구호여서 이것도 세뇌교육 중의 하나로 보여졌다.
이 연극이 끝나고 정명석의 구두 지시로 급조된 인신매매에 관한 연극 한 편을 끝으로 쇼프로는 막을 내리고 '섭리의 뉴스'가 시작되었다. 마치 방송국에서 뉴스를 하는 것과 같은 형식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방송국의 뉴스가 사실의 전달이라면 '섭리의 뉴스'는 정명석의 어록을 소개하고 재교육시키는 시간이었다.
"…에 대하여 선생님은 이렇게 깨우쳐주셨습니다."
"…에 대하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체육대회에 정명석 교주가 골을 몇 골 넣었는데 이것은 '상황판단'을 잘했기 때문이며, 상황판단을 잘못했다 하더라도 재상황판단을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해서 골을 많이 넣었다고 까지 가르쳐 주셨다는 내용도 있었다.
남녀 아나운서가 번갈아 가며 이런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문득 북한의 뉴스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착각이 될 정도였다. 게다가 연극을 할 때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신 선생님은…."이라는 수식어까지 떠올라 더욱 그랬다.
밤은 깊었고 11시가 가까웠을 때에야 참모총장이요, 심판주인 정명석 선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혹시 어디를 갈 때에는 꼭 교회 차를 이용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로 연락을 하세요. 차에는 열명 정도는 해치울 수 있는 준비가 항상 되어 있습니다.…'정치'도 '상황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누구에게 하는지 알 수 없는 정명석의 기도가 끝나자 그의 손이라도 잡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통일교의 문성명은 지는 태양이고 자신은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1999년 7월 14일에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뭐가 그리도 불안하고 무서운지 경호원이 있어야 움직이며 그것도 모자라 기동타격대(?)까지 준비하고 다녀야 되는지….상도동에 있는 3층 전셋집에서 드려지기를 원하는 모닝스타와 샤니스타 또 면담을 빙자해 불러들인 여대생들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통과식(?)에 너무 열중한 탓에 그 후환이 두려워서가 아닐는지.
유흥가의 밤무대를 강단에서 스스럼없이 매주 '공개방송'이라는 미명하에 종교(宗敎·正敎)인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니나노판을 벌여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울먹이며 본지에 상담을 요청해 오는 여학생들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무슨 놈의 교회에서 유행가에 춤판이나 벌이는지 요즘 교회들은 다 그 모양이냐"는 주변 주민들의 성토와, 선생님이면 됐지 목사는 또 뭔가? 그것도 돈주고 가짜 졸업장 만들어서 받은 가짜 목사 아니던가.
정명석 선교체육대회
지난 5월 12일, 경희대는 이른 아침부터 노란 모자에 녹색 티를 입은 MS회원들로 온통 북적거렸다.
정명석이 총재로 있는 「세계청년대학생 MS선교회」주최하는「JMS선교체육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일명「섭리체전」이라고 불리우는 이 대회는 이번이 제9회이다. 경희대 정문과 운동장 입구에는 예의 MS복장에 안내 및 줄지어 서 있었고 이보다 앞서 회기역에서 경희대에 이르는 길목마다 역시 MS들이 서 있었다.
본래 정명석 교주는 여태까지의 관리나 운영을 통일교에서 5년 동안 배운 그대로 적용해 왔었다. 사업부를 차려 MS들로 하여금 땅콩 행상을 시켜서 수익금을 거두고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화장품 바자회, 또 정씨의 생가인 충남 금산의 월명동의 집을 문선명처럼 성지화시켜 MS들로 하여금 성지순례를 시키는 등…그러나 이런 체육대회만큼은 그의 독창적인 창안으로 먼저 그간의 체육대회의 연혁을 살펴보면-.
제 1회는 삼선교에서 모 성결교회와 간단한 배구시합을 가진 것이 시초가 되었다. 2회부터는 독자적으로 치루어졌는데 언주중학교에서 82년 4월 5일에 있었다. 3회는 84년 4월 5일 동북고 체육관에서, 4회는 수유중학교에서 84년 10월 3일에 열렸고, 5회는 85년 10월 9일에 능곡고교에서, 6회는 보라매 공원에서 86년 10월 13일에, 7회는 중앙대 운동장에서 88년 5월 5일에, 8회는 88년 10월 3일에 보라매 공원에서 있었다.
이제 9회인 이날의 대회는 1,2부로 나누어 1부가 개회식부터 점심시간까지였다. 그러나 개회식은 예정시간 9시를 훨씬 넘긴 10시 20분에야 시작되었다. 운동장 뒷편, 학생회관과 운동장 주위에는 대절해 온 버스들이 15대 가량 주차해 있었는데 충남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의 통학버스도 보였다. 그런데 교계 대학인 H대학의 차도 눈에 띄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선수단 입장이 있었는데, 학군단 두 명이 각기 태극기와 MS기(지구에 독수리가 앉은 모양)를 들었고, 그 뒤를 선수들이 따라 들어왔다. 본부석 앞에서 경례가 있었는데 구호는 「충성」이었다. 곧이어 선수단의 선서가 있었고 총재인 정명석이 단상에 나서자 이번에는 「주와 함께」라는 경례구호가 있었다. 여기에서 한가지 알아 둘 것은 이들이「주」라고 하는 것은 흔히 교회에서 가리키는 예수나 하나님이 아니라 정명석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단상의 로얄석에는 야당의 H의원과 여당의 U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을 것이다. 다루기 힘든 대학생들을 그것도 몇 천명이나 되는 인원을 정명석은 입 속의 혀처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정명석의 개회사가 시작되었다.
『…방송사를 비롯한 4개 신문사에서 취재를 왔다. 또 밤늦도록 각 기관에서 시국상 바빠서 가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고 하도 전화가 많이 왔다. 그래서 그 마음이라도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여러 언론기관이 지켜보므로 우리의 명예를 걸고…』
그러나 상기의 말들은 모두 거짓말들로 끝날 때까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방송사는 물론 어느 언론사에서도 나와서 취재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S사의 기자를 기다리는 눈치는 보였다.
통제명찰의 요원들이 스탠드의 맨 위와 구석구석을 지키고 있는데 MS복장에 「촬영」명찰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서 수상한 사람을 적발, 격리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무술을 익힌 MS들이다. 실제로 그들은 매주 금요일 무술을 수련하는 시간이 별도로 있다. 일반 관중들 또한 MS들과는 자리가 분리되어 있어 감시하기가 쉽게 해놓았다.
점심 후에 초청가수들이 등장했다. 황○성, ○○ 그림자, 김○준 등이었다.
오후가 되자 응원은 더욱 열기를 더해갔다. 응원가를 보면 「섭리교가」,「섭리찬가」('서울의 찬가'를 개사한 것), 그리고 '종로에다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를 개사한 「지구에다 섭리촛대를」등이 불려졌다. 특히 「주님, 주님 오시거든」이라는 노래는 가사가 1절에 보면 , "혼자라면 안아주고 둘이라면 윙크해요…", 또 5절에는 "밤 깊도록 말씀주고 면담시간 불러줘요." 등등도 있었다. 안아주고 불러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이 분명 찬송으로 응원을 하는데 단 한 번도 "예수"나 "십자가"나 "보혈", "구원"이라는 소리는 없었다.
86년 9월 10일 문공부에 예수교대한감리회(진리측)로 등록까지 했다는 이들은 분명 적그리스도의 집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성교회와 똑같이 교단으로 위장하고 교회 및 목사칭호를 사용하므로 이들에게 넘어가는 영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교계의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일설에는 곧 삼성동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