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익산 미륵사
익산 미륵사는 한국 미륵 신앙의 발원지이다. 발원지인 만큼 미륵사는 이후로 세워진 미륵 신앙 계통의 사찰들에게 흥미로운 선례를 남기게 된다. 익산 미륵사 터를 보면 원래 이 자리는 물이 차 있던 연못이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과 선화공부가 이 연못가를 지나다가 미륵 삼존이 연못 가운데서 출현하므로 이를 상서로운 징조로 여기고 산을 헐고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다고 한다.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짓는 방식은 이후 계속된다. 김제 금산사의 미륵전, 고창 선운사, 그리고 진표 율사가 창건한 금강산 발연사도 연못을 메워 만들었다. 경주 황룔사를 지을 때, 양산 통도사 엮시 창건 과정에서 용이 나타났으며 치악산 구룔사, 장흥의 보림사 터도 연못 자리였다.
*미륵사지 수로
호남의 3대 호수는 밤고구마가 많이 나는 황등의 황등제(黃登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고부의 눌제(訥堤)이다. 호남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된 유래는 황등제 때문이다. 중국의 호남성은 동정호 이남 지역이고 한국의 호남 지역은 황등호 이남이란 뜻이다. 4세기에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여 축조한 벽골제는 김제 만경평야를, 눌제의 정읍과 고부지역의 평야를 담당하였다. 호남의 곡창지대는 농경문화이고, 농경문화는 물을 중시할 수 밖에 없고 물을 중시하다 보면 수신인 용을 숭배하고 미륵신앙이 들어오면서 미륵이 용을 대신하고 그래서 호남에 미륵 신앙이 유행하여 곡창 지대인 호남 지역의 입지 조건상 미륵 신앙이 발달하게 되었다. 한국의 미륵 신안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찰이 미륵사는 황등제를 끼고 있고, 금산사는 벽골제를, 선운사는 눌제를 끼고 있다. 따라서 고대 농경문화에서 수신의 역할을 담당 했던 용과 용의 신앙은 미륵 신앙의 중심 사찰에서 미륵 신앙으로 변화하였다. 미륵사지를 살펴보면 창건 당시부터 미륵사의 정문 앞에 연못을 조성하여 용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냠겨 놓은 점이고 또 하나는 금당 밑으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일부러 수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금당에는 미륵불을 대좌 위로 모셨고 그 밑으로 용이 출입할 수 있는 수로를 연결해 놓은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용즉미륵(龍卽彌勒-용이 미륵이다)을 상징한 것이다.
법당 밑으로 일부러 수로를 내어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장치는 쌍탑으로 유명한 경북의 감은사 터에서도 발견 된다. 감은사 근처의 이견대(利見臺)의 명칭도 용과 불교의 접합에서 온 것이다. 감은사의 문무왕이 죽은 후에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켰던 것처럼, 미륵사의 무왕도 위풍당당한 용으로 숭배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불교와 용은 뗄 수 없는 사이로 한국 불교의 저변에는 용이 꿈틀 거리고 있으며, 부처님을 호위하는 팔부신장(八部神將)가운데 하나에 속하게 된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지장보살()()
매일 매일 힘 안들이고 여행할수있게 해주심감사합이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