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산행일지 : 구름에 숨은 구름다리
(충남 논산시 벌곡면 대둔산)
일시 : 2008년 7월 26(토)
날씨 : 종일 흐린 날(가끔 비)

총무 교매가 가족과 함께 한 달여 일정으로 25일, 어제 미국으로 갔다. 지난 번 비슬산엔 매송이 빠졌는데 오늘 또 3인의 산행이다. 총무의 미국행이 두어 달 전에 계획되어 있어서 7월 산행일정을 앞당겨 조정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도 교회 일정들이 빡빡하여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청죽의 차로 출발하여 지난 달 계획하였던 대둔산으로 길을 잡았다. 9시 40분경 시설이 좋은 금강휴게소에 내렸더니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금강물이 크게 불어 물넘이 둑을 삼키고 있었다. 비룡분기점에서 나와 남대전 IC를 거쳐 추부 IC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청죽은 서대산의 기억이 난다고 했는데 그 기억대로 우측은 서대산, 좌측은 대둔산 방향이었다. 17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복두삼거리를 지나 우측의 벌곡면을 접어들어 계속가면 수락리의 대둔산 주차장에 닿는다.
대부분의 대둔산 산행은 완주군 운주면 국민관광단지에서 시작되어 금강구름다리를 거쳐 정상인 마천대에 닿았다가 배티재 혹은 관광단지로 되돌아오는 코스가 이용된다. 그러나 회원 대부분이 이 코스를 다녀왔으므로 반대편 코스인 수락리 코스를 택하였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주차장은 한산하다. 입구엔 논산시 관광안내도가 있고 그 구석에 수락계곡과 대둔산 도립공원이 표시되어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승전교가 있고 입구의 대둔산 도립공원 등산안내도에는 등산코스들과 소요시간 그리고 대둔산 8경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석천암-마천대-낙조대-수락폭포-주차장의 코스를 계획하고 11시 15분 출발. 승전교를 지나 직진하면 다양한 형태의 지압도로가 길게 이어진다. 좌측의 승전기념탑을 지나 산으로 접어든다. 많은 비가 내린 탓으로 등산로가 물기를 머금은 채 냉기가 느껴졌고 곧바로 만난 선녀폭포에는 물줄기가 거세다.
삼거리에서 석천암 방향으로 길을 드니 약간의 너덜을 지나 곧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을 만난다. 풀잎을 덧대고 물을 받아 한잔씩 들이키고 나니 다소간의 급경사가 시작된다. 20여분을 힘들게 오르면 석천암을 만나는데 싸릿대와 나뭇가지로 만든 문으로 길을 막아 두었고 우측으로 돌아오라는 표시가 있다. 그런데 우측길이 내리막으로 보여-하산 길에 돌아보았지만 아주 가깝게 돌아가는 길이므로 화살표를 따르는 것이 옳을 것임-담을 넘었더니 스레트 지붕의 낡은 석천암이 있고 평상에는 석천암에 기거하는 부부와 산행 온 아주머니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넘어온 것이 들통 날 수 밖에 없었으나 주인은 오히려 알면서도 관대하였다.
석천암(石泉庵)은 큰 바위 사이에 흐르는 물이 있어 이름한 것으로 보이며 옆에는 논산시장의 수질검사 성적표가 붙어 있다. 마침 또 다른 평상에는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큰 뿔을 뽐내며 앉아있기에 모델삼아 사진을 찍고 매송은 아들을 준다며 비닐봉지에 잡아넣었다. 암자 주인과 얘기를 나누던 대전의 세 아줌마들은 그만 하산한다기에 함께 오를 것을 권하였으나 처음 등산한다는 한분의 염려 탓에 우리가 온 길로 하산하였다.
약간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4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은 마천대 1.2km, 낙조대 1.3km의 이정표가 있다. 다리를 건너 마천대를 향하는데 계단이 많고 높다. 힘든 오르막을 오르면 마천대 1.0km와 220계단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데 군지계곡에 이르는 220계단 길은 위험하다며 통제한다는 안내가 붙어있다. 쉬면서 자두를 먹고 마천대를 향하는데 이제 비가 내린다.

능선길이 시작되며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건너편 능선도 좋다. 간간이 구름이 걷히며 숨었던 비경들이 살포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정표의 1km 거리는 생각 외로 멀었다. 정상 250m 이정표는 안심사(3.4km)에서 오르는 길을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고 구름에 희미하게 감추어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큰 바위더러 매송은 중국의 황산같은 분위기란다.
마천대 부근에서부터 아가씨들이 소란스럽다. 개척탑에 이르니 1시 10분.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대둔산의 정상 마천대(878m)는 바위산으로 주위의 바위 봉우리를 조망하기에 아주 좋으며 금강구름다리의 모습과 국민관광단지까지도 잘 보이는 위치이지만 오늘은 구름에 쌓여 가까운 몇몇의 바위들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더구나 정상에 1972년 4월 완주군에서 세웠다는 개척탑은 마천대 정상의 위용을 50점이나 까먹는 모습이다. 시멘트 구조물에 여러 줄의 스테인레스가 둥글게 감사안고 머리엔 피뢰침까지 이고 4방면 모두의 몸통 가운데에는 큰 글씨로 開拓塔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개척의 의미는 필연 좋은 의미인데도 왜 그리도 생소한지, 그리고 조용히 비경을 감상할 자리에 버티고 있어 얼마나 시야를 방해하는지 도저히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개척탑이어서 정상이지만 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지 않았다.
하산길, 낙조대 방면으로 향한다는 것이 너무 일찍 왼편으로 빠져 5여분 갔으나 길이 없다. 매송이 앞서 가보았지만 마찬가지, 다시 돌아와 케이블카 방향으로 좀 더 가니 마천대 150m, 금강구름다리 500m, 낙조대 0.9km의 이정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 방향에서 오르고 있다.
낙조대에 이르기 전 식사자리를 폈다. 총무 대신 매송이 라면을, 청죽이 밥과 김치, 고추와 쌈장을 준비해 왔는데 그 양이 많다. 청죽은 배낭이 무겁다며 매번 식사준비를 해오는 교매가 이해된다고 했다. 주위가 어둡지만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는다. 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하산, 낙조산장에 이른다. 컵라면 3,000원, 커피 1,000원 등 가격표가 유리창에 붙어 있고 산장 옆에는 대둔산 8경인 마애불이 있다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심한 내리막 길이다.
허둔장군 절터에는 두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오전에 지났던 석천암 아래 사거리에 이르렀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이 필요해 석천암을 다시 올랐다 돌아오니 청죽과 매송은 물소리 세찬 계곡에서 발을 씻고 땀을 말리고 있다. 물이 정말 차다. 하우스 밀감을 먹으며 탁족을 하고 한참을 쉬었다. 다시 빗방울이 듣기에 서둘러 하산을 다시 시작, 수락폭포를 지난다. 이곳 등산로는 자연의 돌들로 정성스럽게 깔아놓아 걷기에 편하다. 늦게 오르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지만 이들은 아마도 수락폭포가 목표일게다.

하산을 마치고 시간도 있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듯하여 승전기념탑에 들렀는데 길이 덥기도 하고 다소 멀다. 네 개의 뿔로 별모양을 이룬 이 전승탑은 한국전쟁 중 1950년 9월부터 6년간 이곳에 숨어들었던 북한군 잔당과 이를 토벌하려는 남측 군경 사이의 전쟁을 기념한 것으로 탑에는 북한군 사살 및 생포가 3,312여명이고 남측 전사자가 1,376명이라고 적고 있으며 이 승전의 기념으로 1985년 당시 충남 경찰국장 주병덕이 건립한다고 되어 있다. 참으로 아픈 기억이고 굳이 승리라고도 할 수 없는 전쟁임에는 분명하나 이곳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한편 이탑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탑을 보며 좌측 아래에는 충혼비가 섰고 벽면에는 산화한 1,327명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선 그 많은 기념식수들은 썩 보기가 좋지 않다. 물론 나무들이 싫은 것은 아니고 기념식수자의 직함과 이름을 적은 오석과 화강암들이 그들이다. 충남도의 경찰책임자인 치안감은 전승탑의 두 칸 아래에 있는 충혼비 부근으로 그 이름이 줄지었고 논산시의 책임자인 총경은 전승탑에 이르는 길과 계단 주변에 도열해 있다. 아마도 내부부 장관이 기념식수를 한다면 전승탑 바로 아래칸, 그보다 더 높은 분이 한다면 그들의 기념비(?) 전승탑과 같은 라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치안감과 총경은 바뀔 때마다 기면식수를 하는지 아니면 매년 하는지는 꼼꼼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그 숫자가 꽤 많았다. 아뭏튼 이렇게라도 자기이름을 나타내어야하는 것인지...
포장도로를 내려올 때에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더러는 매송의 손에 있는 것이 궁금하였던지 장수풍뎅이를 구경하기도 한다.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수퍼에서 더위사냥을 사서 물었다. 젊은 남녀들이 물에 젖은 채로 수퍼에 들러 음료수, 맥주, 아이스크림 들을 사서 그들의 숙박지로 돌아가곤 한다. 금산 부근에서 올갱이국으로 저녁을 먹고 비교적 이른 시간에 대구에 닿았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