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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사도세자의 타이틀과 내용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읽어보시고 연습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원고 수정과 첨가를 위해 많은 고생하셨습니다
모두 교수님과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불 쌍 한 사 람 들
<시극(詩劇) 사도세자>
채수영 (시인. 문학비평가. 문박)
*내레이션.1 (다소 무거운 토운으로 또박또박 발음)
이씨조선 영조(1694~1776.82세.재위 52년)와 그 아들 사도세자와의 부자관계는 엽기적이고 참혹한 비극으로써 역사상 가장 드문 사건일 것이다. 더구나 왕실의 암투와 당쟁의 개입은 더욱 곤혹스럽고 또 제반 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갖는다. 친아버지와 장인과 어머니와 심지어 아내조차 외면하는 죽음 앞에 27세- 한 남자의 고독은 저승길조차 비극이었다.
1.비극에는 바람이 분다-프롤로그 (깊고 무겁게)
어허, 슬픔이로고
더없는 슬픔이로구나
세상살이 저마다 달라도
구중궁궐 근정전의 위엄도
구중심처 중전전의 엄숙함도
들판의 꽃들과는 다른 왕궁에는
지질린 정도(正道)가 줄을 맞추는
언제나 위엄과 엄숙이 무게로 가라앉아
바람 오감이 없는 숨막힌 궁궁(宮宮)마다
사람 냄새가 없어 화석들이 굴러다니는 곳
명령과 순종과 위엄과 엄숙으로
고개를 들 수 없는 자유는
꿈틀거리면서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건만
하늘은 하늘일지라도, 바람은 바람일지라도
깊은 심처(深處) 거긴 하늘도 갇힌 하늘이고
바람도 허리만 굽히는 바람이라네
자유를 그리워하네, 그러다 덫에 걸리면
지엄(至嚴)의 사슬이 목을 휘감고
갇힌 자유가 참혹하게 나뒹구는
사람같은 인형들이 열을 지어 사는 곳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숨과 아픔과 비극과 죽음이 오로지
의미의 이름을 갖지 못하는 곳
일이 있었다네, 큰 일이 있었다네
무너지는 강물이 있었다네
슬픔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네.
*내레이션.2
영조의 나이 42세에 태어난 아들 선(愃)은 10살에 혜경궁홍씨를 만나 결혼했고, 15세에 합방(合房)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행복한 시절을 보내었으나 어려서부터 영민(英敏)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놀이 등 무인기질을 갖고 호방했으나, 학문에는 다소 등한했음으로 영조의 꾸중을 자주 듣기도 했다. 이런 성격의 차이는 영조의 의도와 다른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고, 소론(小論)의 생각을 따르는 사도세자와 노론(老論)의 도움으로 왕이 된 영조사이에는 비극이 싹튼다.
2.숙업(宿業)의 강줄기에는 (근엄하고 비통하게)
-영조가 아들 선(愃)(사도)에게 (영조.1)
⒜
차라리 평범 부자의 인연이었더라면
가슴 복판에 새긴 응어리는 없으리라
애비가 자식을 죽여야 하는 ...
원자(元子)의 사랑으로 빛나던 너의 모습에서
왕조의 찬란함이 다가왔었건만
멀어지는 비정의 늪이 부자의 정에
무슨 갈림이더냐만
⒝
밭갈고 농사짓는 농부의 부자였더라면
너와 나의 사이에는 눈물보다 짙은
슬픔의 사연은 없었으리라
2살에 글자를 알았고
왕과 세자를 구분할 줄 아는
기대에 부풀은 풍선은 높이 높이 올랐으니
영민(英敏)하던 내 아들 선아!
어쩌면 왕관을 벗고 땀흘리는 나뭇꾼이었다면
너와 나의 이름에는 효심어린 정이 깊었으리라
⒞
사직(社稷)을 지킨다는 미명에서
흘러내린 비정(非情)은
피조차 칼날로 예리하게 잘라내는 일조차
왕조를 위한다는 이유 때문에
세자야, 너에게 돌아간 내 명령에는
눈보라가 가슴으로 내린다
*내레이션.3
영조의 계비 정성(貞聖)왕후와 정순(貞純)왕후 두 명과 정빈 이씨, 영빈 이씨(생모)와 귀인 조씨, 후궁 문씨 (후궁에게서만 2남12녀를 낳았고 첫 아들은 정빈(靖嬪) 이씨 소생의 효장(孝章)세자로 9세에 요절, 그 7년 뒤에 영빈(暎嬪) 이씨에 의해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정순왕후의 양자(養子)가 되어 세자로 책봉됨 )등과 정치적으로 사도세자와 다른 노선의 차이에서 세자가 왕이 되는 일은 곧 노론의 권력다툼에서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왕자 거세의 음모가 영조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로 진행된다.
3.할 말이 없는 하늘을 보면 (탄식조로)
-영조의 탄식 (영조.2)
⒜
세자 선아, 남인 소론 소북 노론의 다툼이나
정순왕후 또는 숙의 문씨들이 소곤거림이
내 귀를 울린 것도 사실이지만
궁녀를 죽이고, 왕궁을 몰래 나간
너의 여행의 자유에는
대리청정의 명을 걷어내는 줄기였으니
이로부터 너와 나의 사이에는 강물이 흐르고
부자의 정이 매말라 갔었으니
⒝
오호라, 그렇더라도 내, 너에게 자결을 명한 거절에서
높아지는 분노가 결국 너를 삼키는 8일 동안
뒤주의 어둠 속엔 내 가슴의 어둠도 함께 했노라
이 슬픔의 사연을 무엇으로 설명이 되었겠느냐
구천(九泉) 멀고 먼 길에
후회의 탑을 쌓은들 마음 위로가 되겠는가
⒞
돌아, 돌아보아도 참혹한 이름 아래 따라오는
너와 나의 연극 무대엔 영원을 묻어버린
네 청춘 27세의 꽃이 떨어지는 소리에는
눈물이 검은 비로 내린다
너와 나의 사이에 막혀진 통곡이 흐른다
⒟
할 말이 없을 때 푸른 하늘은
구시월 마른 하늘에 느닷없는 뇌성벽력으로 변한
이 깊은 한을 파묻을 길 없어
저승 길에서 평범의 옷을 입고
네가 보았던 자유의 여행을 위해
손잡고 유람할 수 있을까나 아니면
허름한 주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로
우리의 슬픔을 적실 수 있을지
어떤 대답도 마련없는 슬픔만이
내 것이구나
⒠
세자, 선아! 내 아들아
이승을 떠나 저승에서 너를 만나면
무슨 말로 맨 처음의 말을 꺼내야
너의 젖은 가슴을 위로할 수 있을까나
아니면 모르는 사람처럼 바람을 사이에 두고
그냥 지나는 일로 정리해야 하느냐
답이 없다. 답이 없어 답답타
*내레이션.4
정치적으로 소론(小論) 지지 성향의 사도세자와 노론에 의해 왕이 된 영조나 정선왕후 등과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했고 이런 징후는 비극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관서(평안도)지방을 허락없이 여행한 사건과 궁녀를 죽인 일 등 일련의 사건들은 결정적인 노여움을 영조로부터 받게된다. 이어 자결을 명(命)하나 이를 거절하니 뒤주에 갇혀 죽는 사건(임오화변)이 비극 발단의 막을 올린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 관계는 여러 관점이 있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본능인 오디프스 콤플렉스에서 좌절로 이어지는 심리적인 강박관념과 갈등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4.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소리 (처절하고 애절하게)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
오호(嗚呼)라, 아바마마 아시나이까?
‘권력은 부자(父子)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를
먼 산의 구름으로 여겼던 생각이 비구름으로
다가온 피울음의 강물일지라도
마지막에 마지막에는
믿음으로 지키는 빈터가 있을 것인데
왕조의 길을 위해서 아니면
소론과 노론의 틈새에서 부자간의 비극은
깃발을 날리기 시작했으니
장성한 스무살에도 부왕(父王)의 목소리가 들리면
두려움이 키를 높이는 전율
차라리 정신병자의 자유를 누릴 것을
구중궁궐의 거친 호흡대신
이도저도 못하여 꼬리에
꼬리를 이은 자유여행에는
사람의 체온이, 백성의 체온이
외려 따스함이었습니다. 이 자유를 찾는 변명이
죄목에 걸린 분노의 기름이었으니
후회한들 길이 없는 권력의 서슬
부왕의 칼날이 두려웠습니다
⒝
이제 그대의 아들 세자는 세상을 거두고 떠납니다
저승길을 끝없이 걸어가노라면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는 나무 아래서
꿈꾸는 사랑을 열어 볼 것입니다. 가슴 바닥
그 밑바닥에 흐르는 사랑이야
의심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연이 얽히고 악연이 돌아눕는 세상사엔
후회의 목록을 펼친들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아버지
먼저 떠난 아들의 길과 뒤에 오시는
아버지의 길이 한데 합하는 지점에서
다시 큰 절을 올릴 것입니다. 그 때는
왕이나 세자가 아닌 평범 중에도 가장
평범한 이름으로 말입니다.
*내레이션.5
사도세자와 동갑인 혜경궁 홍씨는 간택이후 2남 2녀의 어머니로 잠시 행복을 누렸지만 27세에 지아비를 비극으로 보낸 이후 충년(沖年)에 9세의 장자를 잃고 오로지 2남인 세자(정조)와 친정을 지키기위해 3남매를 거느리고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한때는 자살을 결심했던 비운의 혜경궁이었다.
5.꽃등불 밝히어 들고(뒤주연가) (슬프고 애닯게)
-아내 혜경궁 홍씨에게 (아내 혜경궁에게.1)
⒜
우리가 서로 만났을 때는
향기가 나래를 펄럭여
노래하는 시절이었는데
법도(法度)의 그물에 걸리어
퍼덕이는 모양으로 내 사랑은 언제나
담을 넘는 부끄러움이었네
⒝
한 걸음에는 사랑이 피었고
다시 한 걸음에는 속 깊은
맑은 물이 고이듯
사랑보다 더 고귀한 꽃이었는데
밀려오는 권력들의 파도에는
사랑조차 ‘우당탕탕’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소리가 서러웠네, 의지를 저당 잡히고 사는
구중궁궐에서 오래오래 그렇게 살아야 했다.
⒞
어둠에 사벽(四壁)을 장막으로 가릴 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대 그리고
대를 이을 이름들이 번갈아 속절없을 때
메아리조차 목 졸라 숨넘어 갔네
*내레이션.6
지아비를 비명에 보내고 궁궐 깊이 숨죽이는 시절을 감내하는 일은 참혹한 나날이었다. 더구나 혜경궁의 친정에 대한 초조감과 아들에 대한 염려는 숨막히는 비극의 터널을 지나는 일이었고 기약없는 절망과 맞서는 외로움이었다
6.슬픔의 발자욱은 항상 선명하다 (슬프고 애달프게)
-떠나지 않는 그대, 나의 임이여 (아내 혜경궁에게.2)
⒜
그리움을 남기고 발을 옮기는
첫발자국부터 엉킨 실타래가 무거운
침묵으로 몸을 휘감는 순간에도
어둠을 비추는 그대의 환영(幻影)
어둠에 빠져서도 여드레의 고개를 넘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 들으려
귀를 세웠는데 그대 눈물 소리만
귓전을 울리는 메아리였네
⒝
작별보다 깊은 심연에서 오로지
그대 음성이 그리웠는데...
그대의 무릎에서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어 달라했던 응석
추억의 그물에 걸리어 아픔이 되는데
두꺼운 뒤주의 숨소리가 서럼이되네
⒞
어둠의 나락(奈落)으로 다가갈 때
세상이 검은 장막 속에 잠길 때도
내 그리움은 푸른 화원의
사랑이었으니 그대
나의 사랑이여!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가는 나의
영혼에도 다시 만날
저승의 깃발이 펄럭이오니
내 뒤를 따라올 어느 날
길을 잃지 말고 찾아오시라
꽃등불 밝히어 들고
저승 너른 들판
햇살 밝은 언덕에 집을 짓고
아득함을 모아 기다리오리다
그대와 나의 사랑을 심어
증오도 없고, 권력도 없고 거미줄 법도 없는
한그루 나무아래서 꿈을 꾸오리다. 그런
사랑을 기다리오리다
*내레이션.7
지나치게 엄격한 영조에 짓눌려 사도세자는 부왕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고 끝없이 시험하는 일들이 반복됨으로써 정서적으로 위축과 정신적인 방황은 갈등의 수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나이 4,5,9,10,14, 등 5번에 걸쳐 세자에게 왕위를 양위(讓位)하겠다는 지나친 억지 시험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새벽까지 세자를 다그치는 등 아들의 반성을 강요했다. 결국 세자가 4달 동안이나 영조를 알현(謁見)하지 않는 등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영조 31년(1761)에 무단으로 20일 동안이나 관서 여행을 다녀온지 4달이 지나 영조가 알게 되었고 이는 임오화변(뒤주사건) 8개월 전의 일로 돌이킬 수없는 갈림이 되었다
7.떠나는 자의 노래는 슬프다 (애절하고 한탄조로)
-사도세자의 탄식
⒜
아아, 나 홀로 떠나야겠네,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겠네 “아바님 잘못하였사오니 이제는
하라하옵시는대로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마오소서“의 구곡간장(九曲肝腸) 애원성(哀願聲)조차
날아간 빈 하늘
부왕의 미움과 선희궁 생모 어머니의 외면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버린 홍씨 아내조차
권력을 놓지 못하는 줄기줄기를 버리고 떠나야겠네
서러이 울리라, 죄 없는 백성들의
눈자위에 어린 아픔을 외면하고
얽히고설킨 권력의 줄기에서는
증오와 시기와 안도와 불안과
승리와 패배가 교차하는 갈래마다
길이 다르게 열리고 있었으니 한쪽의
슬픔은 저쪽의 웃음이라면 저쪽의 웃음은
결국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해답을 들고
어디로 갈까 망설임일 뿐이네
⒝
하늘 높이에서 내려다보니 알겠노라
누구와 누구와 누구는 어떻더라의
긴 사연의 꼬리가 너무나 길었던 것을
끝내 감출 수가 없네, 가릴 수가 없네
그러나 내 비극의 씨앗은 다시 피어나리라
내 죽음을 이브자리로 삼아
잊어야 하는 것과 잊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긴 역사의 강물에서는 푸르게
노를 저을 것이리라
⒞
하지만 사랑했었기에 죄목이 생기고
사랑을 알았기에 삼복더위에 죽음조차
서늘한 비극이었던 이유들의 하소연
그렇고 그렇고의 긴 사설을 모두 돌려주고
훌훌 언덕을 넘어 가야겠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휘적휘적 가야겠네. 사랑했노라
나의 사랑아 그리움아 잘있거라
*내레이션.8
혜경궁 홍씨는 영조 11년(1735년) 탄생. 부친은 노론의 홍봉한으로 6남매의 차녀로 10세에 세자빈 간택 입궐. 이어 2남 2녀를 낳았고 장자(세자)가 일찍 죽음으로 세자(정조)를 보호하기 위해 결국 남편의 비극을 애써 외면한다. 정조는 왕이 된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신원(伸寃)을 위해 노론의 외가(外家)를 징벌한다. 이로 인해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다시 슬픔으로 친정을 위해 침식을 잃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효자 정조는 만년에 이를 뉘우치고 갑자년이 되면 세자(순조)를 관례시키고 외가(홍씨가문)을 신원(伸寃)시키고 퇴위한 후 어머니와 수원 화산능 곁에서 청천백일의 몸이 되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갑자년을 3년 앞두고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51세에 승하한다. 이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순조를 섭정, 다시 홍씨가문에 대한 박해와 불운의 연속으로 빠진다. 이런 과정의 억울함을 기록한 것이 <한중록>이다.
8.애증의 가락에 실린 바람소리 (절절한 호소의 목소리)
-혜경궁 홍씨의 그리움
⒜
은하수 건너 그리움이 갑니다. 이승에 검은 물이
미리내 건너 푸른 물상에 젖은 마음이 갑니다
이루지 못해서 시퍼런 사랑의 회상
10살 청춘에 맞은 창경궁 꽃들이 웃었던 날을 지나
15살에 합방의 호기심이 덩더꿍 사랑이 되어
벌나비의 군무(群舞)를 받았던 추억의 길들이 막히고
갈 곳이 정해진 인연 따라 마지막 마음을 바칠
영혼이 갑니다. 지아비의 그림자를 따라 흘러 흘러
영혼이 갑니다
⒝
한때는 저잣거리 바람에 밀리는 사랑이었습니다
빛나는 옷을 입고도 웃음을 잃은 가화(假花)의 손을 잡고
띠뚝거리는 무대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푸르고 깊은 밤을 갖지 못한 영혼의 깃발입니다
운명 때문에 찢겨진 이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득함에도 실핏줄이 흐르는 아름다움인데
“섧고 섧도다”의 메아리가 허공을 분칠하는
지척(咫尺)도 알아 볼 수 없는 애탐일 뿐입니다
⒞
흐느낌만 깊어지고 갈수록 어두워지는 강물살에 실어보낼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가슴 아픔입니다
떠나보내는 날도 하늘을 가리고 울음을 울 수 없는
심봉사의 한탄은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대 나의 지아비여
세자는 무엇이고 세자빈은 무엇이랴 다만
사랑만이 따스한 뜻일 뿐인데
사랑의 줄기에 가시 돋친 세월의 숙명
잊을 길 없이 높아지는 그리움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사연마다 돋아나는 자욱한 이름,
그대를 향한 사랑만입니다
⒟
돌아올 수만 있다면 참으로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마지막에 마지막을 새겨둔 그대 가슴 속
애처로운 소망 하나에 등불을 켜고
마지막에 마지막에까지 새겨둔
애처로운 소원을 들어주사이다
⒠
따르지 못하는 발자국마다 피눈물이 고이고
구중궁궐의 법도에 따라 발없는 슬픔조차 절룩이는
한(恨)일 뿐입니다. 붙잡을 수 없어 바라만 보는
그냥 눈물입니다
⒡
나의 지아비, 그리운 임이여!
떠남이 자유롭듯 언젠가 만날
저승의 아득함에서 만남 또한 자유를 얻을 터이니
물을 주노라면 훗날의 자랑이 될 아들과 셋이서
웃음의 성을 쌓고 살아갈 만남을
고대합니다. 그대 나의 사랑이시여
*내레이션.9
사방이 막힌 뒤주속에서 사도는 울었으리라. 그 울음 점점 처절이었다가는, 이내 쉰목소리로 잦아들 때, 이를 지켜본 궁녀들은 가슴을 닫고 울었으리라, 말이 정지된 눈물이 여울졌으리라. 그렇게 비극은 문을 열고 있었으리라.
9.그대, 어디로 가시나이까 (아프게)
-궁녀의 노래
꽃잎이 날리는 바람결에
그대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승에서 존귀했고, 높이에서 우러름을 받던
길고 긴 시간의 등줄기를 타고
오로지 슬픔의 가락만을 놓고
어둠길 허위허위 어디로 가시나이까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 많건만
어둠을 뚫고 나오는 뒤줏 속
처절로 엉킨 피울음에는
들을 수 없어 귀가 막힌
멈춤의 한탄입니다, 누구도
끼어들수 없는 비극의 강물이 여울집니다
존귀로 우러름을 받던
왕자님이시여!
사랑으로 이름을 대신하던
왕자님이시여!
운명에 굴곡이 있다한들
자식에 잘못이 깊었던들
아버지가 아들을 저승으로 보내는
칼바람 매서운 비정이
가슴을 찌릅니다
편히 가오소서, 왕자님이시여
저승 높이에 당도하면
이승의 사연을 모두 잊고
꽃잎 날리는 향기들의 박수를 받으며
문밖에 당도할 왕자님을 위해
지금은 오로지
기도를 올릴 뿐입니다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
*내레이션.10
정조의 이름은 산(祘).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부모의 비극과 불행에 분노를 앞세우기보다는 포용하고 화합하려는 지극한 효심에서 남다르다. 아마도 엄격한 교육의 덕으로 보인다. 아버지 능(陵)을 수원 화성에 모시고 능행을 자주했다. 심지어 성실한 능참봉이 한성판윤이 되는 파격도 오로지 효심의 근거일 것 같다
10.그리움에 갈래치는 물결따라 (아픔 묻은 목청으로)
-정조의 탄식
⒜
지존(至尊)이 된 첫 날
눈을 뜨자 세상이 달라졌다. 윤음(輪音)의 첫 마디는
“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嗚呼,寡人 思悼世子之子也)
맺힌 한(恨)의 뿌리가 응혈(凝血)로 쌓인 태산이
그때사 비로소 빛을 발하는 목청에는
서러움조차 길을 잃었다. 그렇게 살아왔던
침묵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
풀잎조차 웃음을 되찾은 영우원(永祐園) *사도세자의 묘소
서럼이 엄숙으로 돌변한 경모궁(敬慕宮) *사당
아들이라서 누구나 아버지를 숭모하던가 만은
사도세자에서 왕이된 고귀함이
차라리 비극의 종점이었어도
오랫동안 갇혔던 물살이 흘러나오는 소리
아들의 마음엔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너울이 출렁이고 있었지만 외려
서러움의 무늬가 여울지고 있었다
⒞
아바마마, 뼈속에 계신 아버지
그 푸른 바다에 빠져서
슬픔을 건져내는 손끝마다
흠모(欽慕)와 바꿀 수 없는 얼굴이
이제도 그리움만 성(城)을 쌓습니다
⒟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가, 뒷모습
영혼의 펄럭임이 보입니다
어둠을 떠나 멀리 저승길의 고독조차
왕조의 뼈를 버린 훌훌에
허무로 의상을 걸친 가벼운 그림자
외로움이 오히려 다행인 서러움을 봅니다
⒠
오호,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제사 호흡을 가다듬어 하늘을 향해
“오호,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구천의 아버지 들으시나이까?
*내레이션.11
정조의 정치는 보복이 아니라 화합 그리고 조화에 있는 것 같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서얼(庶孼) 등용은 물론이고 지방 권력의 확대와 천주교에 관대정책과 선대에 배제(排除)된 남인의 등용 등 고른 햇살을 비추기위해 노력한 인간다운 심성을 엿볼 수 있다면 아버지에 대한 효심도 그런 바탕의 발로(發露)일 것이다.
11.눈부신 이름을 부르는 한탄 (깊고 무겁게)
-아들 정조에게
⒜
네가 이 나라 지존(至尊)이 된 날
기쁨과 행복 보다는 오히려 슬펐다.
전설이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날개가
퍼덕이고 아픔은 다시 밀물이 되었으니
어둠에서 양지로 나오는 눈부신 이름을
뭐라 부를지 몰라서이다. 왜냐하면 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전대미문의 일이었고 할 일이 없어진
공허의 벼랑이 너무 가팔랐기 때문이다.
⒝
효심이 백성을 위한 일이 되었고
부정(父情)이 민국의 기초가 되었고
애절함이 전설로 살아나는 아들아!
임금은 백성을 위한 임금이어야 하고
사랑은 언제나 큰 그릇이었으니
행행의 수원 길에는 햇살도 밝았거니
살아 피울음이 죽어서 우러름이 되었구나
⒞
아들아. 죄목이 걸린 아비를 위해
죽임을 당한 세자를 위해
아들로부터 장헌왕(莊獻王)으로 추존(追尊)된
그림자가 부끄럽다. 이름이 서럽다
냉혹한 현실은 의리와 정과 사랑조차
칼날에 스러지는 운명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
살아생전의 짧은 슬픔이
살아있어 비극의 줄기가 이젠
영생의 하늘 길조차 밝아 전설이 되었으니
눈물 뿌린 씨앗은 꽃이 되어 향기롭다
너와 나를 위호(衛護)하는
꽃바람의 향기
꽃바람의 향기가 세상을 떠돈다
⒠
사람의 사는 일은 언젠가를 기약하는
기다림이기에 먼 길을 돌아온
수원 백리 길에 지존의 위엄이
더욱 선망인 것을
사람이 꽃보다도
부자지정이 맑은 물보다도 오히려
선명하기 푸른 하늘같아
영원을 일깨우는 향기가 되었으니
살아 짧은 비극이 죽어 영면(永眠)하는 또 다른
길이 있음을 깨우친 내 아들 만민의 지존(至尊)이시여
미안하고 부끄러운 이 땅의 아비일 뿐
사도는 비극을 심어 행운을 얻는 그리움을
먼 훗날에 풀어보려는 마음
풀어내려는 사랑일 뿐이니
오호, 지난날의 슬픔이여, 잘 가거라.
돌아돌아온 비극의 메아리마다 이젠
화려해서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으니
이도 그리움 중에 그리움의 향기로구나
***201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