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정초부터
파리, 알프스, 쏘렌토 앞바다 카프리 섬까지 휘돌아 오기로 배낭을 꾸린다.
연말 새벽길 떠나 밤이돼서 드골공항 착륙한 이방인
인터넷 검색으로 세운 계획 철저하다지만
막상 낯선 이국 맞닥쳐 보니 어리둥절
말까지 통하지 않고 국제 미아 다름 없어라
여기 묻고 저기 살피고 경계하고
믿을 건 지하철 노선 뿐
아는 말은 오직 엑스꾸아 무아 (실례지만)
용케도 한국애인둔 청년 만나 복잡한 핑크 7호선 따라 잡는다.
연말 연시엔 요금 안받아도 텅텅 빈 지하철
가정에 충실한 시민들
여기부터 여정의 실마리 풀기
종착역 꽃집옆 공중전화 사용법 몰라 이리저리 누르다 통화성공
-10분이면 도착할테니 꽃집옆에서 기다리세요.-
어두컴컴한 교외의 조그만 아파트 2층
세칸에 14명의 몸과 짐을 조용히 담았다.
위층 할머니 매일 시끄럽다고 투덜댄다나 어쩐다나
난 목감기 떨구지 못한 터라
2층 다락식 침대 비그덕소리 들릴까
서둘러 침낭속에 몸을 넣는다.
만국박람회 기념 에펠탑
온 세계인 찾아와 북적거려도
노틀담대성당 장엄한 미사 흑백인 가릴 것 없이 진지하구나
루브르박물관 장사진 기다림의지루함 어디로 가고
볼거리 하나더 챙기느라 바쁜 하루 빨리도 간다.
비너스상, 눈섭이 없는 모나리자 인파에 밀리고 까치발로 간신히 사진에 담는다.
개선문 전망대에서 보이는 파리시가지 거미줄 같이 촘촘히 한 곳을 향하네
콩코드광장 샹들리제 거리 화려한 밤바람 옷깃에 스미고.
낭만 가득 청춘 되어 방랑자의 화려한 밤은 잔잔히 깊어만 간다
유럽 겨울해는 왜 이리 짧은지 배낭맨가야할 핑크노선 교외 종착역 가까이
조용한 아파트 이층 침대 웅크린 잠도
다녀온 여정 가야할 내일 여행계획에 꿈길은 아름답기만 하다.
뼈 속 깊이 파고드는 유럽의 한겨울 안개
아홉시는 돼서야 거리의 인파를 모으고
아시아 코리안은 새벽 첫 지하철로 서둔다.
루이14세 명령으로 지었다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교외에
넝마주의자 빈민가를 예술혼으로
다시 일궈냈다는 몽마르트
작은 골목 골목마다 저마다 개성 넘치고 말쑥한 예술가들의
소형 승용차들 꼬리를 물고 나들이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도 손 흔들어
행위예술이나 하듯 해맑다
그 언덕 끝엔
성모님 모신 성당안 엄연한 미사는 더욱 장엄하다
인터라켄 융프라흐
베네치아 밀라노 로마 나폴리 폼페이 쏘렌토 카프리 섬)
첫 산행 지리산 예약해 놓고
설 차례 다음 날 상봉재 넘어 상당산성 두부 막걸리로
몸 추스르기 예비산행 목을 적시고
지난 겨울 잘 두고 몇 달을 못 찾다가
어제서야 손에 닿은 반가운 체인형 아이젠
복면형 마스크, 스틱 두 놈, 두툼한 방한 장갑
눈에 한번 빠져 볼 양에 스패치, 방한 내피, 눈보라 대비용 덧바지까지
새벽 4시 자명종에 산행장구 다시 점검
식구들 잠 흔들까 몰래 나가려는데
귤 몇 개 빵 두 조각, 보온 물 넣어 준 마음
배낭 안쪽 깊숙이 담아
05:40 체육관에 다다르니
오랜만 여전히 반가운 회원님들 행복한 얼굴
화톳불에 더욱 빛난다.
2명을 더 태운 리무진 고속버스
못 채운 잠 눈 감은 채
남으로 남으로 새벽을 연다.
07:20 덕유산 휴게소
09:00 중산리
09:30 법계사 셔틀버스(약4.0Km)
09:45 법계사 입구(-1.1Km)
사령관 선두, 크낙 후미 천왕봉 -3.5Km 출발
계곡엔 엊그제 내린 봄비에 녹다 남은 얼음골
하얀 비단 같아라.
간간히 건너 산 능선에 걸린 잔설 흰무늬
숨결 버거워지는 산행에 힘을 보탠다.
오랫동안 보고픈 조국의 산하
실오라기 같은 잔설줄기라도 고향 맛이 새롭구나
11:15 로타리 휴게소 지나 법계사(法界寺)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 지리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
- 544(신라 진흥왕 5)년 연기(緣起)조사
-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산세
- 천왕봉아래 약 2.5㎞ 떨어진 이곳 자리 잡은 법계사
법계사 지나 1700고지
엊그제 내린 푸근한 봄비 때문에
한 시간여 말끔해진 낙엽만 뒹구는 산만 보이니
진흙발 찰흙바지 더 무거워 야속하기까지
8-9부 능선
파란 하늘 저 멀리
간밤에 스친 구름 꽃
설화(雪花)로 살포시 피었다.
쉬어 카메라 장전
셔터소리 경쾌해진다.
내친 김에 배낭 속 간식이 나오고
-선두 상고대 통과 눈꽃이 끝내 줍니다....-
-여기 잠시 휴식 고구마 맛이 끝내 줍니다!-
12:00 설화제는 시작되었다.
-2009년 정월 그믐날 정오 지리산을
-찾은 모든 이의 가슴에
-환희와 탄성과 행복이
-가득하소서
여기저기 나도 너도 영화배우 주인공 되어보고
걸음은 뒤로 가고 시간은 어디로 가는지
12:30 개선문
여기가 설계가? 선계가?
천국이 이보다 나을까?
선계와 무엣 다를고?
이 하얀 설화밭 그 어디 어느곳에
무슨 아픔과 다툼이 미움과 욕심이 있으리요?
다-만 아름다움과 멋과 감탄사와 기쁨과 희망
그리고 무한한 환희와 축복만이 넘칠 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지리산과 설화들 그 어느 한 풍경이랄지라도
-이 순간의 색채와 형상이
-어찌 또 다시 같이 나타날 것이며 영원할 수 있으리오만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의 가슴에 더운 피가 흐르는 한
-가슴에 뇌리에 남게 하소서
-천지자연의 보이지 않는 신(神)만이
-이 아름다운 설화(雪畵)를 우리에게 보이사
-짧은 찰라만이라도 삶의 희열을 자연에 감탄을
-느끼게 하고 말할 수 있게 하여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이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모든 이에게도
-말로써, 그림으로써, 느낌으로써 나마 쬐금만이라도
-전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나의 자연 예찬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말없이 혼자이고 싶어
셔터만 누른다.
여기 저기 휭 돌아
혼백은 다 거덜나고 無我唯白雪이로다.
......ㅈㅈㅈㅈ zzzz
-후미 나오세요! 후미 어디십니까?
-여기는 설계! 여기는 천국!......
-후미 나오세요. 어디시라고요? 선두는 장터목휴게소에서 점심 먹습니다....-
-여기는 천왕봉! -50M 후미 천왕봉에서 점심 먹겠습니다.-
오늘은 점심
설화제 봉송으로도 배고프지 않다.
13:35 천황봉 다다르니
덕지덕지 흐드러지게 만발한 설화(雪花)
푸짐하게 빻아 내려주신 백설기 떡가루
듬뿍 듬뿍 가득 가득 한 아름 온 아름 머금은
고산 침엽 군락들 마치
옥황상제 설화제상에 진설한 각양단백색 제식(祭食)들이요
구름 걷히며 휘날리는 비설(飛雪)들 마치
하늘나라 선녀님들 무도회(舞蹈會) 같아라
통천문은 온누리 만설들 다모여
이미 입구는 통제되었다,
내리막 장터목엔
흰정장복 갖춘 지리산 호위무사들
열병이 장관이로다
살아천년 죽어서까지 천년 지켜온
고사목 고스락 패기가 만만하구나
설악산 대청봉 호위암봉들
3500 알프스 만년설
눈보라속을 장엄하게 지켜온 융프라흐
그 위용과 뭐이 다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