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밀별회 여름 여행-거창 금원산 휴양림을 중심으로
2016년 7월 26∼27일 밀별회원님들의 여름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지인 거창 금원산 휴양림으로 가기 위해 진영 공설운동장에서 우리 일행은 만났다. 멀리 대구에서 오신 안정준 회원님, 회장 박노길, 총무 박창희, 최차랑, 심용보 회원님, 그리고 김해를 출발해 창원을 들러 노홍도 회원님과 함께한 손명규, 모두 일곱 분이 만나 진주로 출발했다. 그곳에는 늘 참석하는 박윤철 회원님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달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라 만남의 즐거움이 얼굴에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승차하여 대진 고속도로로 달려 함양읍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 이름은 ‘예다믄’이었다. 함양군에서 야심차게 마련한 식당으로 종가음식점이다. 하동 정씨와 남원양씨를 비롯한 지역의 대표적인 종가들의 상차림을 현대식에 맞춰 만든 음식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거창 수승대(搜勝臺)를 향해 갔다. 날씨가 너무 더워 에어컨을 틀어 놓아도 앞부분만 시원하고 뒷좌석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관계로 더위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수승대 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고 수승대 경관을 즐기기도 하였다. 수승대의 내력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관계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렀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 수승대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퇴계(퇴계) 이황(이황)의 명명시(命名詩)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
搜勝名新換 逢春景益佳(수승명신환 봉춘경익가)
遠林花欲動 陰壑雪猶埋(원림화욕동 음학설유매)
未寓搜尋眼 惟增想像懷(미우수심안 유증상상회)
他年一樽酒 巨筆寫丹崖(타년일준주 거필사단애)
수승대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맞이 경치 더더욱 아름다워
멀리 숲에서 꽃들이 망울지는데 그늘진 골짜기 흰 눈 쌓여있네
두 눈으로 찾아가 볼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뿐이라네
다음 해에 술 한 병 차고 와서 큰 붓으로 붉은 절벽 그려야지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화답시(和答詩) 해수송시(解愁送詩)
花滿江皐酒滿樽 遊人聯袂謾紛紛(화만강고주만준 유인연몌만분분)
春將慕處君將去 不獨愁春愁送君(춘장모처군장거 불독수춘수송군)
강 언덕에 꽃이 만발 두루미엔 술이 가득 상춘객은 어울려서 흥겹게 놀고 있네
봄은 저물어 가고 그대 떠나려 하니 봄만 아쉬운 게 아니라 그대 보냄이 근심이네
수승대 양쪽에 위치하는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잘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를 알 수 있다. 요수정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강학당이며 관수루는 조선 중기의 문인인 성팽년(成彭年 1540~1594)과 신수이(愼守彛), 신권(愼權)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구연서원(龜淵書院)의 문루(門樓)이다. 우리는 요수정에는 가지 않았고 관수루 주변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우리의 목적지인 금원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금원산에 들어가니 계곡의 물소리와 숲이 주는 신선함은 먼 길을 달려온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산림문화휴양관에 도착해 우리가 예약한 103호실에 각자 가지고 온 소지품과 위천농협하나로마트에서 산 물과 맥주를 내려놓았다. 계곡으로 내려가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저녁 식사는 수승대에 있는 임정은 가든에서 오리불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우리 나이에 좋은 오리고기를 먹으면서 약주 일 배를 하였다.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주인집 아주머니의 웃음 머금은 얼굴빛도 괜찮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주인집 아저씨가 운전하는 봉고를 타고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주인집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분의 고향이 밀양이었다. 밀양 어디냐고 물으니 무안이라고 한다. 무안에는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농사일 때문에 종종 간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맑은 공기가 우리 몸을 감싸고 물소리 청량하게 들리는 밤이다. 숙소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피곤해서 옆으로 누웠다. 누군가 나의 뱃살을 보더니 걱정을 해 주었다. 70대 형님들은 다른 방으로 가고 60대 또래들은 한 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세상에 태어나 밥 한 끼 하는 것도 큰 인연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만남은 수십 년이 흘렀고 함께한 잠자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큰 인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분들은 인물로나 능력 면으로 보나 모두가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도 나에게 다가온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이튿날 아침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을 감상하기 잠시 차로 이동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숲속 길을 걸어갔다. 맑은 공기와 계곡의 물소리는 더위에 지친 우리의 일상을 씻어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얼마간 걸어가니 큰 바위가 나타났다. 이 바위가 문바위이다. 옛 가섭사 일주문에 해당하는 가람 수호신으로 우리나라에서 단일바위로 가장 큰 바위로 알려져 있다. 문바위는 수천 년 세월 동안 호신암, 가섭암, 금달암, 두문암, 지우암, 용의 여의주 등 주변 여건에 따라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명성 있는 바위이다.

이 바위를 지나면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골짜기가 나온다. 지금은 계단으로 해 놓았지만 15년 전에는 자연 그대로 사람들이 다닌 골짜기였다. 골짜기 안에 들어서면 벽면에 마애여래삼존입상이 보인다. 바위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풍우의 영향을 덜 받아서 그러한지 모습이 뚜렷하다.

우리는 이 불상을 마지막으로 감상하고 위천면으로 내려왔다. 위천면에서 좀 알려진 구구추어탕을 먹고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농월정으로 갔다.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67세 때인 1637년에 건립했다. 박명부는 병자호란 때 굴욕적인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자연을 벗삼아 평생을 보내고자 이 정자를 건립했다고 한다. 정자 이름이 말해주듯 밝은 달밤에 계곡 위에 비친 달을 희롱한다는 이 정자는 안타깝게도 2003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된 것을 2015년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농월정 관광을 마지막으로 하고 어느 찻집에 들러 차 한 잔씩 마시면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밀양 팀은 팔팔고속도로로 향하고 진주, 창원팀은 대진 고속도로로 내려와 진주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모두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건강해야 다시 만나고 웃음꽃 피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모두들 건강하게 사십시오.
첫댓글 수고 했오^^
근데 함양에서 먹은 종가 점심(예다믄) 사진이 빠져 섭하오ㅠㅠ
글을 쓰려고 사진을 정리하다가 날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혹시 사진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올리겠습니다.
관록 있는 글솜씨에 다시한번 멀지 않은 추억이 되살아 나는 구랴 총무가 해야 할 일을 이리 해주니 고맙수다. 수고 많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