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캄보디아 데일리 편집장 Jodie DeJonge) 캄보디아 최장수 영자지이자, 아시아권 전체적으로도 최고의 정론지였던 <캄보디아 데일리>가 훈센 정권의 탄압으로 오늘(9.4 월) 부로 폐간됐다. 오늘 발행된 마지막 종이신문은 하루 전 심야에 진행된<제1야당 총재를 "반란죄"로 체포한 사건>을 1면에 담고 있어서 더욱 깊은 상념에 젖게 한다. '크메르의 세계'는 캄보디아 내전 종식과 동시에 창간돼 지난 24년 동안 캄보디아의 진실을 전해온 <캄보디아 데일리>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마지막 공지사항"을 번역했다.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 이후 1993년 평화체제가 출범하면서 수많은 국제 원조제공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찾아온 덕분에,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급 저널리즘을 표방한 영자 정론지 및 타협없는 인권/시민사회가 출현했다.
'크메르의 세계'는 타협하지 않는 캄보디아의 영자 언론 문화야말로, 오랜 역사를 지닌 언어이자 고대문명의 살아있는 박물관인 크메르어, 그리고 선명한 투쟁전선을 지닌 야당 및 시민사회와 더불어 "캄보디아의 3대 보물"로 평가해왔다. 이제 야권/시민사회 탄압 및 <캄보디아 데일리>의 폐간을 기점으로 또 다시 "캄보디아의 암흑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크세]
세금을 부과할 권력이 바로 파괴를 할 수 있는 권력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24년 15일 동안 이어져온 본 <캄보디아 데일리>(The Cambodia Daily)를 파괴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신문은 캄보디아의 언론자유에 있어서 특별하고도 독특한 한 부분이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본 신문을 폐간시키기 위해 초법적 위협을 가했고, 그 결과 새로운 사주인 '버나드 크리셔 지무쇼 사[社]'(The Bernard Krisher Jimusho Co.)는 이전 사주 시대에 행해진 일들 때문에 자산을 동결당했고, 사법적 기소를 당했습니다. '버나드 크리셔 지무쇼 사'는 더 이상 <캄보디아 데일리>를 운영할 수 없게 됐고, 2017년 9월 4일 부로 발행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데보라 크리셔-스틸(Deborah Krisher-Steele) 여사 소유의 '버나드 크리셔 지무쇼 사'는 2017년 4월 버나드 크리셔(Bernard Krisher) 씨로부터 <캄보디아 데일리>의 자산을 인수했습니다. 이 기업은 크리셔 씨에게 해당 자산을 반납하고 문제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크리셔 씨는 자신이 <캄보디아 데일리>를 적법하게 경영했었다면서, 만일 캄보디아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기소하면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캄보디아 정부가 그를 입건한다면, 그는 캄보디아로 돌아올 것입니다.
세금의 징수시기 및 액수를 두고 캄보디아 국세청과 <캄보디아 데일리> 소유주들 사이에 적법한 이견이 존재하는 일도 무리는 아닙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문제가 회계감사 및 민사적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캄보디아 데일리>를 표적삼아 천문학적인 세금(630만 달러)을 부과하면서 거짓 정보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고, 국가의 수장마저 감사도 받기 전에 공개적인 비방을 해댔습니다. 이것은 법적인 절차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지난 8월 29일자로 국세청장이 보내온 공문 및 그와 동시에 친정부 매체 <프레시 뉴스>(Fresh News)에 유출된 성명서에서, 국세청은 본 <캄보디아 데일리>가 여러 해 동안 "광고주들로부터 수십만 달러의 부가가치세를 착복하여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데보라 크리셔-스틸 씨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부가가치세 착복은 절도인데, 이 같은 고발은 훈센(Hun Sen) 총리가 지난 8월 22일의 연설에서 <캄보디아 데일리>가 "주된 도둑"이라고 발언한 데 기반을 두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같은 고발을 논박할 증거는 캄보디아 정부의 모든 부처들 및 프놈펜(Phnom Penh)에 주재하는 모든 외국 대사관들이 [본 신문을] 구매한 기록들 속에 남아 있습니다. 본 신문은 데보라 크리셔-스틸 여사의 기업이 설립된 이래 이 기업이 납부한 세금의 마지막 1달러까지도 모두 입증할 수 있습니다. 본 신문사가 여러 해 동안 부가가치세를 착복했다는 국세청의 주장이 진실이 되려면, 먼저 프놈펜 주변에서 부가가치세가 수수됐는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오래된 청구서들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만일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캄보디아 국세청은 이미 <프레시 뉴스>를 통해 폭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수수되지도 않은 돈을 훔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 신문사가 "도둑"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명예훼손입니다. 캄보디아 정부의 거짓정보 유출을 통한 공작은 전문성도 결여됐고 불법입니다.
캄보디아의 모든 영자지들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 데일리> 역시 적자 속에서 운영돼 왔습니다. 자금 부족은 어어져왔지만, 사주인 크리셔 가문은 캄보디아에서 언론자유와 독립 언론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자, 그러한 손실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월요일(9.4), 캄보디아 국민들을 위한 본 신문사의 봉사가 끝이 납니다. 오랜 기간 언론자유를 지지해준 광고주들과 유료 독자들께 감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본사의 임직원들은 모든 뉴스를 공정하게 보도하고자 열성적이고 용감한 싸움을 벌여왔다는 말씀도 아뢰는 바입니다.
<재팬 타임스>(The Japan Times)의 2007년 3월 10일 보도에 첨부된 버나드 크리셔의 모습.
1931년 독일에서 출생한 버나드 크레셔는 부모를 따라 프랑스와 포르투갈을 거쳐 12세에 미국에 정착했다. 청소년기부터 신문 제작에 재능이 있었고, 1980년대에는 <타임>(Time) 지의 일본 지국장을 지냈다.
캄보디아 내전이 끝난 1990년대 초, 그는 캄보디아를 지원하는 NGO를 설립하여 이후 캄보디아의 전후 복구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이민 경험에서 기인한 공감 때문이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및 '세계은행'(월드뱅크)의 지원 하에, 그는 시하눅빌에 빈곤층을 위한 무료 병원을 개설하고 550여곳에 달하는 학교의 개교에도 기여했다.
그가 <캄보디아 데일리>를 창간한 것은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의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고 하는데, 이 신문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닌 품위 있는 정론지였을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언론계의 유능한 인재들을 양성되는 요람 역할도 담당했다. 2008년에는 <캄보디아 데일리>의 노선과 노하우를 미얀마에서도 이어가기 위해 <버마 데일리>(The Burma Daily)를 창간하기도 했다.
은퇴 이후인 2000년대부터 가족 모두가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고, "하나의 일본 기관"이나 "원맨 유엔"이라 불릴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과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동영상) 버나드 크리셔의 캄보디아 활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동영상) 버나드 크리셔는 북한의 식량원조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활동도 했다.
화보 : <캄보디아 데일리> 편집실의 마지막 하루
* <캄보디아 데일리>의 라이벌 영자지 <프놈펜 포스트>(The Phnom Penh Post)도 이들의 마지막 하루를 상세히 취재하고 보도했다.
(사진: Ananth Baliga/The Phnom Penh Post) 마지막으로 발행될 종이신문의 기사목록을 살펴보고 있는 <캄보디아 데일리>의 임직원들.
* 미국의 공영방송 <미국의 소리>(VoA) 크메르어판 역시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고 있는 언론인데, <캄보디아 데일리>의 마지막 하루를 화보집으로 소개했다.
첫댓글 이럴수가,,,
정말 가슴아픈 소식이네요.
야당총재 체포, 공신력있는 언론사 폐간....
훈센정권이 정말 크나큰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도 불과 3-40년 전 비슷한 일을 겪었지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버나드 크리셔 씨(86세)가 훈센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이 직접 캄보디아를 방문해서 떳떳하게 사실관계를 살펴보자고 했군요..
에효...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