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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3일(일)
오늘은 남산의 오십여 계곡 가운데 가장 크다 하는 용장골을 따라 올랐다.
넓고 밝고 물흐르는 소리가 좋았다.
물소리가 시원하니 마음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가벼우니 몸은 힘이 난다.
종일 걸어도 피곤할 것 같지 않다.
차를 몰아, 시내에서 삼릉을 지나고 내남 교도소를 벗어나니 용장골 자그마한 주차장이 보인다.
삼릉 주차장보다 훨씬 조용하다.
그만큼 등산객이 적어 용장골 모두 내세상 같은 푸근함을 느낀다.
용장골 주차장
마을 어귀에서 용장마을 할머니가 냉이랑 하루나 등을 팔고 있다.
뿌리 굵은 냉이와 유채나물이 먹고 싶어진다.
내려올 때 사겠다 생각하고 그냥 길을 제촉했다.
(내려올 때 보니 다 팔리고 하나 없었다)
이거 저거 가격을 묻는다.
여자들은 가격이 문제이고, 나는 먹고 싶은 게 있나 없나가 문제이다. ㅎㅎ.
길을 따라 더 오른다.
좀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용장사터로 오르려면 좌측 계곡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바로 가면 고위봉 오르는 길이지만 오늘은 용장사터를 살펴보고 싶었다.
이 계곡을 용장계라 부른다.
용장계(茸長溪)란 말은 신라의 사찰인 용장사가 있었던 계곡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의 많은 골짜기 중 하나인 이곳은 계곡의 길이가 3km 되는 남산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골짜기란다.
산에서 흐르는 물은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마을 사람이 식수로 사용하는 물이란다.
'금오신화'의 저자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용장계에서 오래 머물렀단다.
용장계에서는 지금까지 22개소의 절터가 확인 되었다지만, 이름은 용장사 하나만 알아냈을 뿐 다른 절의
이름은 전해내려 오지 않고 찾을 수 없단다.
지금은 모두 볼 수 없는 절이라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계곡의 물소리는 요란할 정도다.
작은 폭포도 있고 맑은 소도 함께 있다.
물과 연관해서는 늘 메마르게만 느껴졌던 남산에 이렇게 풍요로운 물이 있을 줄이야.
또 땀흘려 오른다.
보인다. 멋진 풍경들이. 마음 속에 담는다.
단을 이뤄 흐르는 작은 폭포도 보고.
그러다가는 평온하게 흐르는 냇물도 보인다.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려니 항상 혼자 뒤떨어지게 된다.
일행을 따라 허겁지겁 뛰어 올라간다.
길 옆에는 삼릉 소나무를 옮겨 심어놓은 듯 굵은 소나무가 멋지게 솟아 있다.
자주 삼릉 소나무 사진을 찍었던 터라 소나무 풍경은 늘 살피게 된다.
큰 바위 위에 오가는 사람이 돌탑을 많이 쌓아 놓았다.
아마 하나하나 쌓으면서 소원를 빌었을 게다.
집 식구도 무엇을 비는지 돌탑을 몇개 쌓아 본다.
돌탑 아래를 살펴보니 옛 흔적이 보인다.
돌 쪼게낸 흔적.
큰 큰 바위에는 이렇게 홈을 파놓은 흔적이 있다.
쪼개내려다가 왜 포기하고 그냥 뒀을까?
정으로 나란히 판 홈에 나무를 두들겨 박아 물을 부어 놓으면 목재가 팽창하여 바위가 갈라지는 원리로 돌을
쪼갰을 거라 잠작해 본다.
이렇게 쪼갠낸 돌로 불상도 만들고 혹은 돌탑도, 기둥 주춧돌도 만들었을 것이다.
큰 돌을 어떻게 운반했을까? 이런 저런 궁금함이 깊어진다.
계곡을 또 오른다. 용장계를.
넓고 밝으며 맑은 물이 흐르는 용장골.
그 속에 연인들이 함께 오르고 내리고 있다.
그 옆엔 기암 절벽이 용장골을 지키고 있다.
하나 같이 모두 정원수요 분재들이다.
나는 그저 모두가 탐이 난다.
저런 정원수를 앞 마당에 심어 봤으면... 그리고 저 걸 늘 다듬어며 보며 살았으면...
멍하니 상상의 나래만 펴볼 뿐이다.
소나무 사진만 찍어댄다.
어디 유명한 명산유곡, 그 부럽지 않은 풍경이다.
사진으로 담고 마음에 품고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또다시 뒤돌아 보곤 한다.
갈림길인 설잠교에 이른다.
이조 김시습의 설잠(雪岑)이란 법호를 따서 다리 이름을 지었단다.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가면 용장사지, 바로 가면 건위봉.
어디로 갈가 망설이다가 오늘은 용자사터를 보기로 마음먹어 다리를 건넜다.
김시습의 시 한 수를 여기에 적어 본다(한시 생략)
용장골에서
용장골 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가을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깰 줄 모르는구나 억새 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설잠교
설잠교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지나는 길, 디딜방아 돌인지, 기둥을 세우는 주춧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딩굴어져 있다.
어느덧 용장사지에 다다랐다.
앞이 확 트여 시원한 곳이다.
그래서 절을 세웠었나? 물은 어디에?
내내 이런 궁금증만 생긴다.
호기심, 탐구심이 많은 내 습성인가 보다.
석조물이 나뒹굴어져 있다.
좀 오르니 삼륜대좌불 보인다.
원형의 석탑 위에 좌불이 보이지만 아쉽게도 머리 부분은 없어졌다.
아름다운 곡선의 탑을 어쩌면 이런 산등성이 높은 곳에 세웠을까?
삼륜대좌불 석탑
멀리 보이는 산등성의 곡선도 아릅답다.
한 켠을 더 오르니 '용장사곡 삼층 석탑'이 보인다.
역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용장사 법당터보다 더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남산의 서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서쪽 붉은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여기서 찍은 노을 사진. 누군가의 사진만 보아오다가 오늘 실체를 보니 아하 이곳이였구나 싶다.
저 보이는 하늘이 붉게 물든 노을이라면...
나는 언젠가 꼭 이곳에서 저녁 노을 사진을 찍어 봐야겠다.
해가 지는 노을 사진을 찍고는 한 시간쯤은 내려가야 되니 야간 등반 장비 잘 챙기고 와봐야겠다.
잘 생긴 소나무 아래에서 기념 사진 한 컷 찍고.
이 소나무 한 그루만 내 곁에 있어도 늘 행복해지겠다.
남산은 온통 소나무 뿐이다.
그리고 디디는 땅은 모두 마사토이다.
소나무와 마사토는 엄마와 자식 같다.
나는 소나무를 좋아하기에 그 마사토 또한 좋아한다.
바위 틈 결에서 굳건히 자라는 소나무.
그런데 사람한테 너무 시달린다.
등산로 옆에 있는 작은 소나무는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고 다 죽어간다. 이미 죽은 것도 많다.
살아 있는 놈이라도 뿌리는 완전히 노출되었고 그 위를 등산화로 마구 밟고 짖눌러 댄다.
이왕이면 밟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옆으로 누워 자라기도 하고.
꼿꼿히 서서 자라기도 한다.
모두가 빼어난 모습들이다.
용장사지에 오르면 금오산까지는 지척이다.
금오산은 많이 올랐기에 오른쪽 고위봉 쪽으로 길을 돌려 이영재로 향했다.
이영재로 가는 길 중간에 삼호령이란 곳이 있다.
남산은 세 군데 높은 곳이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그 삼각의 가운데 삼화령이 있다.
삼국유사에도 잠깐 언급된 이곳 삼화령.
꼭대기에는 지금은 비록 미륵불이 없지만 그 연좌는 남아 있다.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 이곳을 나는 부지런히 또 올라 확인해 본다.
일행을 둔채 나혼자만 올라가 확인한다.
높은 곳 그 아래는 절벽이다.
부처가 앉아 있었을 이 바위 미륵불 연화좌대
연꽃 무늬와 불상을 세웠던 기초 홈은 아직 남아 있다.
이영재에서 종주 큰길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반대편 통일전에 이른다.
똑 바로가면 칠불암. 그리고 우측으로 틀면 용장사 계곡으로 다시 내려 가게 된다.
고위봉은 다음에 오르기로 하고 설잠교 쪽으로 가 왔던 길로 다시 내려 간다.
오늘은 쉬염쉬염 가는 길이니까. 이만큼만 오르고 만다.
김시습 시에도 나오는 대나무 밭도 지난다.
사진은 신우대이다.
겨울 산속에 파랗게 돋아나 있는 것은 노루발풀.
그리고 넉줄 고사리, 여기저기 이끼(수태)만이 파랗다.
어서 봄이 오면 더 파란 풀들을 볼 수 있으련만...
어서 봄이 오면 더 붉은 꽃들을 볼 수 있으련만...
그런데 한편...
세상은 왜 이렇게 메마른가
나 같은 운명의 소나무인가.
흙이 다 씻겨나가 발가 벗은 몸둥아리로 버티고 있는 소나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을 해 본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가 보다.
이런 문구가 하나 떠오른다.
'I'm OK, you're OK'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나는
'I'm not OK, you're OK' 나는 괜찮지만 너는 좋아라. 이런 타입인 것 같다.
반대인 '너는 잘못되도 나는 좋아라' 하는 것보다야 좀 나은 편이지만, 글도 둘다 OK보다는 못하다.
'I'm not OK, I'm not OK' 니 죽고 나도 죽자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글 적다 내가 별 애기를 다하는 것 같네.. 각설하고...
또 아래 사진을 봅시다.
개 눈엔 뭐밖에 안 보인다고...
죽은 나무 모가지 잘라 안 됐지만 그래도 내 품에 와 오래도록 빛나리.
국화를 키울 괴목 하나를 챙긴다.
내려 오는 길 다시 폭포 구경을 한다.
예전부터 나는 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하면서 남보다 두배나 힘들게 다니곤 했다.
뒷모습 사진 찍고 또 숨이 차도록 앞서 달려 올라 가, 앞 모습 사진 찍고... 이렇게.
생고생하며 산을 다녔다. 사진 취미 땜에. 인화해 준다고 내돈도 들이고...
머지 않아 외국 관광을 가는데 또 걱정이다.
사진찍느라 민폐끼칠까봐...
마을 어귀에 이르니 봄 이른 미나리를 팔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두어 단 샀다.
미나리에 삼겹살. 봄이면 청도에 가 즐겨먹는 풍취 음식이다.
파는 이는 사는 사람더러 보약이란다.
보약이 될련지 술 더 많이 먹게 되어 해가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아지매. 인터넷에 올려 선전 많이 해 줄께유~
하니 좋아 한다.
누가 사는지는 모르지만 덩그른 기와집.
담장이 너무 높아 마음에 좀 들지 않는다.
아니 이런 집에 살 형편이 못 돼서 이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오를 거라 생각하고 점심도 싸가지 않은 터,
대신 과일이랑 보온병의 누룽지 국물 많이 마셔대 배고픈 줄은 모르겠다.
오는 길.
천북에 가 소고기 한 점 묵고 가자하니 마누라가 역성을 낸다.
돈도 못 벌면서 쓸 돈 어딨느냐고...
가만히 생각하니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해 그냥 집으로 페달을 밟았다.
며칠 있다 또 올라야겠다.
다시 용장계곡을 통해 칠불암으로 고위봉으로...
오십 계곡이니 최소한 50번은 올라야 한다. 아니 100번을 올라 봐야겠다.
포박/박희용
첫댓글 죽은 나무 모가지 잘라 안 됐지만 그래도 내 품에 와 오래도록 빛나리. 명언입니다!! ( 이 괴목도 포박님한테 와서 행복할 겁니다..)
글과 사진 너무 재미있게 읽고 보고... (포박님은 매력덩어리네요..) 담에도 사진과 글 부탁합니다.. !!!
네~ 매력이 있다면 사랑도 좀 주어요. ㅎㅎ. 게시글 쓰는 것도 그리 만만한 게 아닙니다. 찍은 사진 골라 자르고 편집하고, 사진에 맞게 글도 꾸미고, 모르는 건 조사도 하고 등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얼렁뚱당 사진만 쭈르륵 올려 놓는 건 너무 성의가 없는 거 같아 제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입니다. 갱상도 사람이라 철자가 틀려 늘 신경이 쓰이지만 우리말 공부 열심히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