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게임에 대한 단상
근래 카카오톡 출시 이후 스마트폰 내의 게임어플이 인기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최신게임, 인기게임, 추천게임으로 분류되어 날로 스마트폰 내 게임어플 경쟁은 치열한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PC방"이 "게임방"이었다면 근래에는 스마트폰이 "걸어 다니는 게임방"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 생활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분에 넘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게임어플이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던져야할 질문은 "이 게임이 성경에 준하여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 유익한가?" 하는 것과
두 번째 질문으로는 "이 게임이 성도의 신앙중심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단순히 "재미"와 "스트레스 해소" 등을 위해 즐기는 게임에 이토록 심각(?)하게 접근해야 하는 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신앙에서 있어서는 전혀 다릅니다.
지난 3년 동안 "성종"(고등부)에서 "문서선교부"로 함께하며 주보로써 섬길 때 일입니다.
"SORI"(문서선교부 공식명칭)의 중심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믿음의 글을 실을 때 중요한 지침
1. 글의 내용이 성경말씀에 부합되는가? 성경에 위배되는 가르침은 없는가?
2. 글의 내용과 중심이 고등부 학생들의 신앙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위 두 지침을 중심으로 매주 주보를 만들 때, 믿음의 글이나 신앙적 글을 옮기고, 실을 때 그 내용이 성경에 준하여 바른 내용인지, 성경에 위배되는 가르침은 없는지 살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삶이나 신앙에 그릇된 신앙중심을 들려줄 가르침은 아닌지, 배워서는 안 될 비속어와 그릇된 언어들은 없는 지 살피고 또한 깊이 생각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에 부합되지 않거나 위배될 경우 우리는 그릇된 신앙을 전하는 전파자가 되고, 고등부 학생들은 그릇된 신앙을 배우는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도로서 배우거나 사용하지 말아야할 욕들과 그릇된 언어들이 들어갔을 경우 그 여파는 매우 커서 학생들의 신앙과 삶에 악한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더욱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3년간 "문서선교부(SORI)"로 함께하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때는 학생들의 시험기간 이었는데, 시험에 준하여 합당한 글과 그림을 생각하며 찾던 중 정말 적절한 그림을 찾았는데,
그 그림에는 시험내용과 맞물려 "제기랄"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이 그림을 한 번 더 검증하여 걸러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제기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그림은 그 주간 주보에 인쇄되어 학생들의 손에 들려졌고, 고등부 예배 전 "교사모임"에서는
몸둘 바 모르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성종"고등부 Staff 선생님 주 한 분 그 그림에 인쇄된 "제기랄"이라는 단어를 보시고
정색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단어가 적힌 그림이 주보에 나와도 되는 것입니까?"
그 말씀을 듣고 즉시 교사모임에서 사과드렸고, 이러한 내용이 들어간 부분에 대하여 "고등부 예배 후
광고시간에 잠시 시간을 빌려 "문서선교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를 드렸고, 다음 주에는 "주보"에 공식 사과문을 실었습니다.
누군가 보기에는 이런 단어들이 들어간 그림이 욕도 아닌 거 같고, 사실 세상에서는
별 의미 없이 막(?)쓰는 용어들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은 후 더욱 글의 내용과 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데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등부 학생들이 읽는 주보인지라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하는 친근한 용어를 쓰면 더 좋을 것 같고
재미도 있을 것 같지만 "성종"고등부의 주보는 "신앙"이 중심임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다만 학생들의 이야기에 욕, 비속어,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는 단어가 있으면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는 글들은 언어를 정화하거나 아예 제외시킨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단어의 사용한 작은(?)부분 같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게임이야기를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와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만
우리가 접하는 많은 게임들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게임들은 성도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주의해야할 게임은 "상금" "돈" 등이 들어간 게임들입니다.
대체적으로 "상금"을 걸고 하는 경쟁적으로 게임에 임하게 되는 데, 이러한 게임의 폐해는 게임 그 자체보다
"돈"에 사람의 마음을 옮겨가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애통하게도 일부의 집회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데, 예배 후 "경품추첨"으로
"자동차", "노트북", "TV" 등을 내 걸고 예배를 광고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 "구원에 대한 추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보다는 예배 후 있을
뭔가 하나 얻을 생각에 마음이 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말씀의 내용을 빌리자면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오병이어"사건에서 잘 드러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병이어" 사건이후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며, 이로 인해 예수님을 당시 임금 삼으려 했던 것"이었지,
"영생"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6:1~40)
이와 같이 "상금"이 걸린 게임들은 게임이 가지는 "즐거움, 재미"자체보다는 "돈"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향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인생 한번 펴보자", "인생한방, 인생역전",
"수고의 땀이 없는 공짜", "돈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돈"에 관심을 두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두 번째로 주의해야할 게임으로는 "피흘림", "생명"을 죽이는 게임들입니다. 게임이 가상이라지만 이 영향은 우 큽니다.
오늘날 가상의 영화내용이 실제현실에서 경악할 뉴스거리로 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요즘의 세태를 볼 태 결코 가벼이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01년 영화흥행작인 "친구"의 내용을 동기로 하여 "학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게임의 내용, 영화의 내용 등을 동기삼아
실제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어 더욱 주의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생명경시풍조"와 더불어 한국의 자살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게임에서 가공인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그 모습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흘림"을 미워하시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과(잠 6:16~17)
언젠가 "앵그리 버드"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게임의 내용은 새가 멀리 날아가서
벽돌이 깨어짐으로 점수를 얻는 방식인데, 사실 이 게임을 하면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그 마음을 가진 이후로 이 게임을 지웠습니다.
가상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일부, "새"가 벽돌에 부딪혀
죽음으로 점수를 얻는 것이 과연 기쁜 일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가상세계가 현실화 되어감을 볼 때 실제로 "참새"들을 벽에 던져 피흘려 죽게 함으로
점수 올리기 경쟁을 하고 있다면 과연 바른 성도의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나친(?) 논리가 아닌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배운대로 행하는 것"을 볼 때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게임인데? 가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모든 종류의 악)이라도 버려라(살전 5:22)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었던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3~14)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 성도로서 무엇이 깨끗한 행실인지, 무엇이 죄악 된 길인지,
무엇이 탐욕으로 향하게 하는지, 무엇이 선하고 의로운 길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우리의 삶에서 항상 성도로서 자신이 하는 행실과 삶이 어떠한지 살피라고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던지 무슨 기림이 있던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게 계시리라(빌 4:8~9)
오늘 성도로서 우리게 가까이 있는 게임들이 우리로 하여금 참된 행실로 인도하게 하는지,
성도로서 경건한 삶에 유익을 주는지, 옳은 것을 가르쳐주는지, 우리의 깨끗한 행실에 도움이 되는 지
한번 더 생각하고, 경계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합니다.
배병두
deosolapide@hanmail.net
국제청소년사역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