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보전 서문(達摩寶傳 序文)
達摩寶傳 釋氏遺文 通達之謂 廣大之稱
달마보전 석씨유문 통달지위 광대지칭
括盡要道至德 不外三敎正理 鋤完異端邪說
괄진요도지덕 불외삼교정리 서완이단사설
以及四果旁門 乃修性了 命之至道
이급사과방문 내수성료 명지지도
달마보전은 불가에서 남긴 글로서, 법의 진리가 막힘이 없고
그 범위가 광대하다는 뜻이다. 요긴하고 지극한 도덕을 다포괄
하니 삼교가 바른 진리와 다를 바 없고 이단사설과 사과방문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뽑아 없애니, 이것이 곧 성품을 닦고 천명을
다하는 지극한 도가 될 것이요,
至在有情下種 爲返本還原之眞經 道在順死逆生 寔無愧
지재유정하종 위반본환원지진경 도재순사역생 식무괴
西天二十八菩提尊 尊奉天命 玆以爲東林第一達摩祖 接續道根
서천이십팔보리존 존봉천명 자이위동림제일달마조 접속도근
정이 있어 씨를 뿌리는 것은 반본환원의 진리이다. 도가 세속에
순응하면 죽음이 되고 조류에 역행하면 삶이 된다는 것,
이것은 틀림없는 말이다.서역국 이십팔대 보리존께서 천명을 받으시고
동방제일대 달마조가 되시어 도의 뿌리를 이어 주셨다.
口授心法 不在文字經中論 性悟神通 勿許形色身外尋
구수심법 부재문자경중론 성오신통 물허형색신외심
三歸五戒 作修道之把柄 一花五葉 留收圓之定憑
삼귀오계 작수도지파병 일화오엽 류수원지정빙
입으로 전하신 심법은 경 가운데서 의론되는 문자에 있지 아니하고,
性을 깨닫고 신을 움직이는 이치는 몸 밖의 사물에서 구할 바가 아니다.
삼귀와 오계는 수도하는 방법이요,
일화와 오거는 수원하는 빙거가 된다.
初渡武帝不識 由宿孼以未盡 次指神光大悟 辛續燈而有人
초도무제불식 유숙얼이미진 차지신광대오 신속등이유인
授胭脂以偈言 因釣坎陽 須用离陰爲導引
수연지이게언 인조감양 수용리음위도인
收宗橫而改正 凡渡後學 全賴先生以曲成
수종횡이개정 범도후학 전뢰선생이곡성
처음에 양무제를 제도하려는데, 그가 깨닫지 못한것은 전생에 진 빛을
아직 갚지 못한 까닭이요, 다음에 신광을 지점하여 크게 깨달으니 다행히
도맥을 있는 사람이 되었다.양연지에게 게송으로 주신 것은 감괘의 양을 낚으려면
이괘의 음으로 도인력을 삼아야 하기 때문이요, 종회을 거두어 사도를 버리고
정도를 걷게 하니, 무릇 후학을 제도하려면 전혀 스승의 간곡하신
정성을 힘입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埋履過江設殿 一切變端 本老祖神通顯應
매리과강설전 일체변단 본로조신통현응
受辱含齒拜師 幾番忍耐 喩後世低心化人
수욕함치배사 기번인내 유후세저심화인
미투리를 묻고 강을 건너 신전을 세우니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조사의 신통한
감응력을 나타낸 것이요, 욕을 당하고 상한 이빨을 머금고, 스승으로 섬기며
몇 번이나 참고 참은 것은,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낮추어 중생을
제도하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다
記心印來歷(기심인래력)
심법의 내력
嘗思性根命蒂 道有体用 木本水源 道有由來 無極以生太極
상사성근명체 도유체용 목본수원 도유유래 무극이생태극
老君而化釋迦 卽先天大道根也
노군이하석가 즉선천대도근야
일찍이 생각하여 보니, 本性(본성)은 뿌리요 命(명)은 그 줄기이다.
도에는 체용이 있고 나무는 뿌리가 있고 물은 근원이 있음과 같이
도는 유래가 있으니 無極(무극)太極(태극)을 낳고,
노군이 석가로 화함은 곧 선천대도의 뿌리가 된것이다.
然達摩爲西天二十八祖者然釋迦佛一脈流傳世世承接其統 代代仔肩其緖耳
연달마위서천이십팔조자연석가불일맥류전세세승접기통 대대자견기서이
夫佛出自西域笠乾國 父曰 淨飯王 母后摩耶氏 秉性慈善 老子見愛
부불출자서역립건국 부왈 정반왕 모후마야씨 병성자선 노자견애
分性放光 國母見光 感而有孕 於周昭王二十四年四月初八日 午時降世
분성방광 국모견광 감이유잉 어주소왕이십사년사월초팔일 오시강세
그러므로 달마가 서천 이십팔대 조사가 된 것은
석가불의 한 맥이 유전하여 대대로 統(통)해 내려온 것이다.
석가불은 서역 천축국에 나셨으니 아버지는 정반왕이오, 어머니는
마야 부인 이시다. 천성이 자성하니, 노군께서 어여삐 보시고 性(성)을
나우어 빛을 놓으시므로 마야부인이 빛을 보고 감동하여 잉태한지라
주소왕 이십사년 사월 초팔일 오시에 탄생 하시었다.
姓刹利 名悉達多 太子, 自幼大有威德 專務淸靜
성찰리 명실달다 태자, 자유대유위덕 전무청정
時遊四門 見生老病死苦 切欲出家修道 父母苦阻不從
시유사문 견생노병사고 절욕출가수도 부모고조불종
誠格神人指示.踰城而出其年十九歲
성격신인지시.유성이출기년십구세
성은 찰리요, 이름은 싯달타이다. 태자는 어려서부터
크게 위덕이 있고 오로지 청정함을 힘쓰더라.
하루는 문밖에 나아가 놀으시다가 생노병사의 고를 보시고 간절히 출가
수도코자 하여 부모가 괴로이 막으시되 쫒지 않으셨다. 지성에 감응했음인지
신인의 지시로 성을 넘어 나가니, 그나이 열아홉살이었다.
居檀持山中 修道三載 心知有形非道 遂復學於阿藍迦葉三年
거단지산중 수도삼재 심지유형비도 수부학어아람가섭삼년
不得定靜 又便往蔚頭藍參學一年 亦不明其性宗 自傷嘆不巳
불득정정 우편왕울두람참학일년 역불명기성종 자상탄불사
又得聞號 燃燈古佛頗有至道
우득문호 연등고불파유지도
단지 산중에 거하여 수도한지 삼년에 형상있는 것이 도 아님을 느끼고
다시 아람가섭에 배운지 삼년에 定靜(정정)을 얻지 못하고
다시 울두람에 가서 배운지 일년에 또한 그 본성을 밝히지 못하고
스스로 탄식하여 마지 못하고 연등고불이라 칭하는
이가 자못 도가있다함을 듣고,
時至中夏 周穆王二十一年 訪至東梁山 拜見燃燈
시지중하 주목왕이십일년 방지동양산 배견연등
講道十三日 語下徹悟 始明萬法歸一 至善之道
강도십삼일 어하철오 시명만법귀일 지선지도
때는 한 여름이었다. 주목왕 이십팔년 동양산에 이르러 연등을 뵙고
설법을 들은지 십삼일 만에 크게 깨달아 비로소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至善(지선)의 도를 알게 되었다.
辭別燃燈 走滕泗二水 留雪山一宿 思其尼山靈透所鐘
사별연등 주등사이수 유설산일숙 사기니산영투소종
知中國文彩方盛 遂歸西方與敎 自號釋迦牟尼
지중국문채방성 수귀서방여교 자호석가모니
연등불을 작별하고 등수와 사수를 지나 설산에서 하룻밤을 유하시며
이구산의 영기가 환하게 모인 것을 헤아려 중국에 공자의
문채가 성할 것을 아시고, 드디어 서방으로 돌아가 교를 이르켜
스스로 석가모니라 이름하고
始至舍衛國 大開法門 著經說法 覺悟群生 称名曰佛 闡道說法三十一年
시지사위국 대개법문 저경설법 각오군생 칭명왈불 천도설법삼십일년
法付 一祖摩訶迦葉尊者 姓婆羅門 孝帝五年 持僧袈裟衣入雲南鷄足山開道
법부 일조마하가섭존자 성파라문 효제오년 지승가사의입운남계족산개도
비로소 사위국에 이르러 크게 법문을 열어 경을 저술하고 법을 설하여
중생을 깨우치니 부처님이라 불렀다. 도를 열고 법을 설한지 삼십일년
법을 일조 마하가섭에게 전하시니. 성은 파라문이다.
효제 오년에 중의 가사를 가지고 운남 계족산에 들어가서 도장을 열으셨다.
일조 마하가섭존자 이조 아난존자
삼조 상나화수존자 사조 우파국다존자
오조 제다가존자 육조 미차가존자
칠조 파수밀존자 팔조 불타난제존자
구조 복태밀다존자 십조 협존자
십일조 부나야사존자 십이조 마명대사
십삼조 가비마라존자 십사조 용수존자
십오조 가나데바존자 십륙조 나후라다존자
십칠조 승가난데존자 십팔조 가사사다존자
십구조 구마라다존자 이십조 사야다존자
이십일조 바수반두존자 이십이조 마나라존자
이십삼조 학륵나존자 이십오조 파사사다존자
이십육조 불여밀다존자 이십칠조 반야다라존자
이십팔조 보리달마
菩提達摩尊者 爲西天二十八代心印之祖 作東林初代道統之尊
보리달마존자 위서천이십팔대심인지조 작동림초대도통지존
聊記來歷明賢再證 菩提達摩尊者 上觀天時下律地理 道盤又轉還東林
료기래역명현재증 보리달마존자 상관천시하률지리 도반우전환동림
隨之東渡 名曰老水還潮 爲東土初祖也
수지동도 명왈노수환조 위동토초조야
보리달마 존자는 서천 이십팔대 조사로서 동토에 그 도통을 만드신
어른이 되셨는데 내력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보리달마 존자께서는
위로 천시를 보시고 아래로 지리를 살펴서 도반이
또한 동토로 돌아 온 것을 알으시고 따라서 동으로 오시어 제도하신 것인데.
이를 가리켜 노수화조라 하고 동방의 초대 조사가 되신 것이다.
初渡梁武帝 有緣無彬 後渡神光 至東緣關遇陽胭脂毒婦 卒被藥毒 幸佛
초도양무제 유연무빈 후도신광 지동연관우양연지독부 졸피약독 행불
法脫之危 又濟神光爲接續道統 二代祖向下傳之至六代 則道脉暗入火宅
법탈지위 우제신광위접속도통 이대조향하전지지육대 즉도맥암입화택
처음에 양무제를 제도하여 하였으나 연분이 없고 뒤에 신광을
제도하려다 미치지 못하고, 동록관에 이르러 양연지라는
독부를 만나 졸연히 약독을 입었으나 요행히 위험을 벗어났고,
결국 신광을 제도하시어, 도통을 잇고 이대조는 아래로 전하여
육대에 이르러서는 도맥이 화택에 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