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콩 꽃보다 더 푸른 남강의 고장
길을 나선다는 것은 항상 마음 설렘으로 시작하는 즐거움이 있다. 여행은 항상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즐거움이 많아진다. 자연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분주함 속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남강이 흐르는 곳으로 나들이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강과 산 그리고 들판이 있어 행복하다.
성전암·은헌고택
성전암은 이반성면 장안리 나지막한 오봉산(524.7m)중턱에 있다. 예전에는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완행열차를 타고 평촌역에서 내려 꽃과 들판의 행복한 어울림이 주는 시골길을 따라 산행을 하면서 성전암을 거쳐 갔다. 절집 아래까지 가파른 도로가 개설되고부터는 걸어가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작아졌다.
성전암(☏754-7056)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국사는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인조임금이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인조각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에는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한데. 머리에 상투 모양과 구슬이 표현되어 있고 입은 꼭 다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불상의 수인은 아미타여래의 9품 중에서 중품중생인(中品中生印)을 하고 있다. 대웅전을 등지고 바라보는 풍광도 더없이 아름답지만. 새벽 대웅전 아래까지 피어오르는 안개 바다는 자연만이 주는 기막힌 아름다움이다.
암자를 찾아가 후덕한 후원보살이나 도안 스님과 찻잔을 두고 마주 앉아 대화에 묻혀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암자 주변 대숲에서 주는 바람을 따라 내려와 철길을 건너면 평촌리 은헌고택이다.
좁은 돌담장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전·후에 툇마루를 두었고. 5량 구조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은 은헌 고택이 반겨준다. 안채 정면을 6칸으로 구성한 것은 민가에서 보기 드문 경우로 전면 반 칸을 모두 툇간으로 구성하고 방 부분은 반 칸의 후퇴까지 공간을 확장하였다.
용암사터. 문수사. 경남수목원
이반성면 소재지로 들어서는 들판에는 가축 사료로 쓰이는 짚더미가 군데군데 겨울채비를 하고 있었고. 은행나무 가로수에는 은행잎이 만추의 계절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곡교 부근에서 새밭골 방향으로 들어서면 작은 농촌마을이다. 이정표는 없지만 마을 앞을 지나 이어지는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500m쯤 따라가면 끝자락에 쇠락해 가는 고택이 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집 뒤로 돌아가면 용암사 터이다.
이곳에는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용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이수와 귀부. 사리탑. 석등. 석불이 있다. 사리탑은 전체적으로 비례가 잘 맞고 모든 부재가 8각으로 조성되어 기본형을 따르고 있다.
서북쪽에 파손된 채 있던 것을 1962년에 원래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면서 바닥돌. 기단(基壇)의 가운데 부분. 탑신(塔身) 등이 파손된 것은 새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기단의 가운데 돌에는 구름과 용이 조각되어 있었으나 새로 보충된 것에는 간략하게 모서리기둥만 새겨 아쉬움을 주고 있다. 사리탑 근처에 작은 보호각에 지장보살을 표현한 불상이 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까지 내려왔으며. 이목구비가 단정한 타원형의 얼굴은 오른쪽 뺨이 깨졌으나 눈가에 어린 미소가 온화하다.
용암사터를 나와 국도 2호선과 만나는 곳에서 좌회전하면 발산저수지가 반겨준다. 저수지 둑을 따라 오리쯤 산비탈을 따라가면 작은 절집 문수사(☏758-9797)가 있다. 절집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절집처럼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민간 신앙에서 마을입구에 세우는 장승과 솟대가 반겨준다.
풍경소리마저 잠들어버린 듯 고요와 적막이 감도는 절집에는 계절따라 꽃들의 잔치가 이어진다. 요사채 문을 밀고 인기척을 하니. 영안스님이 반겨 맞으며 따뜻한 메밀차를 내놓는다. 절집에는 부처님을 찾아가는 것이겠지만.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는 스님을 만나면 왔던 길이 힘들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국도 2호선으로 오르면 경상남도 수목원이 반겨준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꽃과 이국적인 열대식물. 나무와 숲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17만평의 면적에 우리나라 온대 남부지방의 자생종과 외국에서 들어온 수종 중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식물 1천5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 산림박물관을 비롯한 열대식물원. 야생동물원. 무궁화공원. 화목원 등이 주제별로 조성되어 있다. 길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한가롭게 걸어가는 연인들 모습에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새발자국 화석. 마진리 이씨고가. 용강서당
남해고속도로 반성 나들목에서 지방도로 1007번을 따라가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경남과학고등학교가 있다. 새발자국 화석지는 경남과학교육원 신축 공사장에서 발견되었다.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의 물떼새. 공룡. 익룡의 발자국이 혼합해 발견되어 발굴을 실시하였다.
10년간 발굴한 결과 5개 지역에서 도요물떼새발자국 2천500개. 공룡발자국 80개. 익룡발자국 20개. 30 ×40㎝ 크기의 새발자국 화석 365개가 수집되었다. 안내판마저도 없는 화석지에는 발굴된 화석은 대부분 어디론가 이전해 가고 남은 것은 공사장 현장사무소 1층 창고에 있었다. 창고에 있는 화석조각들은 초등학교 과학실로 보내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나오니 추수를 끝낸 논에는 파란 마늘모종 싹이 삭막함으로 가득한 들판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남강을 가르는 1007번 지방도로 월강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그림 같은 강 풍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차창을 열고 달리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울창한 대나무 숲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대곡면 마진리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아람드리 은행나무 앞에 마진리 이씨 고가가 있다. 이 집은 조선 숙종 40년(1714)에 이덕관이 사랑채인 마호당을 짓기 시작하여. 숙종 44년(1718)에 안채. 중사랑채. 사당. 솟을대문 등을 완공하였다.
13대를 이어온 종가였으나. 중 사랑채와 사당은 허물어져 없어지고 사랑채 대문만 남아 1865년 현 소유자의 증조부가 사랑채를 다시 짓고. 1937년에 안채를 고쳐 지었다. 국화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집안에는 관리의 손길이 아쉬운 곳이 여러 곳 있었다. 남해고속도로 진수 나들목에서 압사리 방향으로 들어서면 남강의 치맛자락이 옥토를 만들어준 들판 끝머리에 용강서당이 있다. 용강서당은 대제학과 경연관을 지낸 동강 김우옹(1540∼1603)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902년에 세워졌으며. 1922년에는 ‘굉정각’이란 서고를 만들어 청주서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선생의 문집 판각 600매를 옮겨 왔다. 서당의 전체적인 구조는. 배우는 공간인 서당이 앞쪽에 있고 그 뒤로 사당과 판각을 보관하는 전각이 나란히 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여름이면 커다란 배롱나무 1그루가 꽃을 피워 마당을 가득 채워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왔다. [마산제일고등학교.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 회장]
맛집
▲차밭골= 김종호. 진성면 월아산 고개너머 황토집. ☏758-2706. 011-9524-2796.
다슬기깨죽수제비. 다슬기깨죽칼국수- 6천원. 우리콩국수-5천원. 각종 차와 다기가 준비되어 있다. 후식으로 향긋한 메밀차를 준다. 찻집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고즈넉하다.
▲황토맛집= 구숙자. 명석면 계원리 광제산 자락. ☏745-6092. 011-9313-2351.
소생등심(2만원)과 돼지생삼겹살. 생목살(6천원)을 생숯불에 구워내고. 인근 텃밭에서 가꾼 콩으로 된장찌개. 생비지 찌개. 청국장을 끓여낸다. 모든 채소와 김치. 된장. 고추장도 주인이 직접 담가서 내놓는다. 황토방에서 휴식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