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8월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6월과 8월이 되면 통일선교와 관련된 행사들이 참 많았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날과 광복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이 잠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코로나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통일선교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모여서 하는 기도는 지금 엄격한 규제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기도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때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코로나의 태풍이 지나간 뒤에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 말고, “코로나 때문에 더 열심히 기도했다”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건국에도 큰 역할을 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입니다.
북한은 9월 9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구구절)’이지요.
우리는 한국교회가 개화와 민족운동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교회가 정부수립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고, 남로당의 방해 공작이 심해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정부를 수립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이승만 박사를 비롯해서 기독교 인사들이 힘써서 이 일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는 개화, 민족운동 등 이 민족이 그 때 필요로 하는 일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민족에게 꼭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통일이다. 그같은 전통을 이어 받은 한국교회는 통일선교에 앞장서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정부수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8월에 같은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주간의 금요일(7월 30일) 저녁에 세종쥬빌리 첫 기도회가 세종하나침례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세종하나교회는 세종특별자치시 집현동에 있습니다.
집현동은 훈민정음을 만든 기관인 집현전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설교를 하면서 “기독교를 통해 훈민정음이 힘을 얻고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기독교가 한글을 위해 많은 일을 한 것처럼, 집현동에 있는 세종하나교회는 이 민족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8월에, 한국교회는 건국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지금 이 민족이 제일 힘써야 할 통일선교에서도 그래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쥬빌리언들이 되어야 합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했는데...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지금 우리 형편이 어렵다’고 여러 번 말한 일이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식량사정이 크게 염려된다고 합니다.
자연재해 때문에 농작물 수확이 감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18년 9월 7일 자「로동신문」은 2면과 3면 거의 전부를 감자농사에 힘쓰자는 기사로 채웠습니다.
2면의 기사 제목은 “감자 농사혁명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리자”, 3면은 “감자 농사에서 전환을 일으켜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에 적극 이바지하자” 였습니다.
「로동시문」은 체제선전의 중요한 도구인데 이런 기사로 두 면을 채우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올해 필요한 식량은 548만 톤인데 100만 톤이 부족하여 북한은보리와 감자 40만 톤 가량을 수확하여 추수 때까지 버틸 것이며 전시비축미까지 방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국경 봉쇄를 오랫동안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겠지만 만일 남한이 그렇게 오래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있다면 우리 형편이 어떨지 생각해 보면 지금 북한의 곤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됩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도 장기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어떤 제재를 받고 있나?’를 한 번 검색해 보았는데 여러 형태의 제재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통 문제가 아니로구나’ 했습니다.
사회주의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평등’입니다.
북한에 “고르롭다”는 말이 있는데 “한결같이 고른 느낌이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이 말을 찾아보면 용례가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하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일하고 고르롭게 잘 산다”고 나옵니다.
북한은 그만큼 평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은 평등하지 못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돈주(자본주)”와 서민, 도시민과 농촌 거주자간의 격차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본가치관의 이같은 붕괴가 북한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의 선배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도 한 때 어려움과 혼란을 겪은 때가 있었습니다.
중국은 1970년대 말에 덩사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으로 이를 극복했고, 러시아는 1980년대 후반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새 국면을 열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교회의 문을 열게 해서 중국선교, 러시아선교가 가능해졌습니다.
북한에서 이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망상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고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고 하셨습니다.
“주님, 북녘의 정세를 잘 파악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