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_열네 살의 나에게도 밍기뉴가 있었다
가야독서토론회 발제문 | J. 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당시 학교에서 무슨 검사를 했는데 사회성과 리더십이 99점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그 결과가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도 사회성과 리더십이 높다는 것이 왜 걱정할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선생님은 아버지를 학교로 부르셨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셨다. 단순히 가난해서라기보다는 집안에 여러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제가 많이 배우지 못해서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열네 살이었으니 아버지는 서른세 살이셨다. 생각해 보니 나는 서른세 살에 결혼을 했다. 내가 결혼하던 나이에 아버지는 이미 중학생 딸을 키우며 그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고 계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아버지께 책 세 권을 추천해 주셨다.
마침 우리 집은 부산 영광도서와 가까웠다. 아버지는 나를 서점에 데리고 가셔서 선생님이 추천하신 세 권을 사주시고, 내가 읽고 싶은 책도 네 권이나 고르게 해주셨다.
그 일곱 권의 책 가운데 한 권이 바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였다.
그렇게 제제를 만났다.
제제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장난꾸러기 소년이다. 영리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늘 말썽을 부리는 아이로 보인다. 집에서도 마음 둘 곳이 마땅치 않았던 제제는 작은 라임 오렌지나무에 밍기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 제제에게 밍기뉴는 친구였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였으며, 때로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열네 살의 나는 제제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 마음만큼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에게도 밍기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기장에 '제이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이나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감정들을 제이제이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라디오가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음악이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었다. 때로는 그 목소리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제제가 밍기뉴에게 말을 걸었다면 나는 제이제이에게 글을 썼고,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제제에게 밍기뉴가 필요했던 이유도, 나에게 일기장과 라디오가 필요했던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고, 나를 평가하지 않아도 좋고, 그저 내 마음을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제제는 뽀르뚜가를 만나면서 또 다른 사랑을 경험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장난꾸러기라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어른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제제에게 찾아온 그 따뜻한 시간이 오래 이어지지는 못한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상실이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생각하면서 제제가 겪었던 가난이나 슬픔보다도 그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태도에 더 마음이 쓰였다.
제제는 정말 나쁜 아이였을까?
어른들이 조금만 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제제는 그렇게 아프게 성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내게 왜 그 책을 추천하셨는지는 이제 와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책이 내게 왔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당시 서른세 살의 아버지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서점으로 가셨다.
어쩌면 아버지는 책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다 알지 못하셨을 수도 있다. 그래도 딸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셨기에 일곱 권의 책을 사주셨을 것이다.
그날 아버지가 내게 주신 것은 책 일곱 권만이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고, 혼자서도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신 것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열네 살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서른세 살이던 아버지도 어느덧 일흔을 넘기셨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라디오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열네 살에 라디오에 기대어 사춘기를 보내던 소녀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시 펼치며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제제의 밍기뉴는 어린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밍기뉴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을까.
이번 독서토론회에서는 책의 줄거리보다도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고 싶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들-
첫 번째. 아이들은 왜 자신만의 밍기뉴를 만들까?
제제에게는 라임 오렌지나무가 있었고, 나에게는 제이제이라는 일기장과 라디오가 있었다. 여러분에게도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을 털어놓던 특별한 대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제제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정당했을까?
우리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쉽게 성격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 행동 뒤에 있는 아이의 마음과 환경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세 번째. 어린 시절 만난 책 한 권, 혹은 어른 한 사람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네 번째.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야기를 마치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래전에 읽은 성장소설 한 권일 수 있겠지만, 내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열네 살의 나와 서른세 살의 아버지, 그리고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함께 들어 있는 인생책이다.
내가 다 읽고 난 책은 또, 열네 살의 내 딸이 읽고 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열네 살의 나에게 밍기뉴가 되어주었던 제이제이와 라디오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