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3, ( 항주, 그 곳에서의 아침 )

[마리오네뜨]

세 시간이면 도착한다는 항주
여섯 시간을 달려 왔으니 밤이 잠에 취해 스스로도 깨어나기 어려운 시간
어둠이 잠으로 불러들인 호텔의 로비는 고즈넉하기조차 했습니다.

제때 잠을 이루지 못한 낯빛이 초췌한 안내원들에게 방의 키를 받던 로비엔
하얀 수염의 산타 얼굴이 입구 천장에 일정한 열에 맞춰 줄지어 걸려 있고
작은 츄리도 인기척에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듯 느리게 반짝이고 있었지요.
객실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어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안내원들이 중국말을 하는 외에 생김이나 체구가 한국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생각의 걸림이 없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

얼마나 잤는지, 잠이 충분했었는지? 잠을 이룬 시간을 따져보면 불과 두 어 시간?
잠이 터무니도 없이 부족한 걸 몸이 제대로 느끼고 있다면 오늘의 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
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부족한 잠에도 눈도 따금거리지 않을 뿐 아니라
여느 아침과 같은 기분으로 다음 행선지로의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행으로 휴가거나 마음의 쉼을 갖는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몸이 이토록 긴장되어 정상적으로 느껴야할 피로감을 미뤄두고 있는 것으로 봐선 말입니다.

8층 객실의 방범창이 없는 창문은 머리 하나 들어갈 틈도 두지 않은 상태에서 멈춰집니다.
안개때문인지, 잠시 잠든 사이 비라도 왔던 것인지....
창밖의 풍경은 낮게 내려 앉은 구름과 안개비가 개이듯
해 뜰녁의 아침이지만 시간을 분간할 수 없는 흐린 날의 저물녁과 같습니다.
낮잠끝에 아침인줄 알고 가방을 들고 학교로 나서던 어린시절의 어느 날 같다는 생각이 들었
거든요.

한치 앞도 분간키 어렵게 하던 안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한때, 멈칫거리며 세상의 모든 것에서 단절된 곳에 있게 하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새로운 아침은 안개의 기억도 가져가 버렸습니다.
너무도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오래된 것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안타깝고 슬프고 가슴 져미게 하는 이별이 아름답다 말하는
인생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이별을 하기 위해 간절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인지 모릅니다.

천천히 오르막인 언덕 좌편 멀리에 공장인듯한 건물이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뒤에 꽁꽁 옷을 끼어입은 여자를 태우고 가는 사람이 보이기도 합니다.
호텔 뒤 바로 오른편으로 건물을 올리기 위한 철근들이 네모나게 헤쳐진 땅바닥에 꽂혀 있고
컨테이너 박스가 나란히 줄지어선 곳에서 하나 둘 사람이 빠져 나오며
넓적한 그릇을 들고 나와 양치를 하고 있기도 하고 식당인듯한 네모난 박스속으로 사람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공사장하면 밤새 세워둔 흙을 실어나르기 위한 화물차나 포크레인이든지, 콘크리트 믹서래든지,
여러가지 연장과 기구들이 보여야할 텐데 짓다 철수한 현장처럼 조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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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가고 단조롭고 한가롭게 흐르는 풀륫과 피아노의 선율이 아름다운
뉴에지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 평온합니다.

넓고 가늠할 수 없이 깊던 나락의 벼린 절벽들과
꾸밈을 가질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눈빛과
농한기의 햇볕아래 옹기종기 모여 마작판에 둘러 앉은 사람들
햇볕에 쪼그려 앉아 빛바라기를 하던 사람들이 선합니다.
기골이 장대한 장수의 거역할 수 없는 위엄에 기세가 꺽인 사람처럼
거대한 대자연앞에 환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길가를 서성이다 쓰레기라고 보이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쓰레받이에 먹이를 감추듯
비질을 하던 남루한 차림의 사람이 눈에 선하고
우리네 유원지에서 함지박에 소소한 물건들을 벌여놓고 행상을 하는 것처럼
밤이며 귤이며 그릇에 담긴 체로 손님들에게 구매를 구걸하던 아낙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산다는 것은
느리게 가거나 빠르게 달려가거나 자연의 흐름에 소진되어 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하루가 모자르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사는 사람이나
햇볕에 앉아 해그림자가 지나는 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주어져 있고 우리가 가진 시간은 한계가 있어
흐르는 물처럼, 부서져 나간 바위의 조각처럼 작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릴테니까요.


Ernesto Cortazar - Drea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