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숲에서 띄운 편지 - 2월 23일(금)
어느덧 익숙해진 나무 위 생활이다. 긴장도 많이 풀렸다.
첫날 밤을 떠올린다. 잠을 자려 누웠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잠을 자려 해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대나무로 엮고
그 위에 합판 석장을 이어 지어진 집이라 누우니 꿀렁꿀렁하다.
'혹시, 이게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드니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 다시 일어나 앉아 생각을 하는데, 평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변화일 뿐이다.'라고 외쳐댔던 설교가 떠오르는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혹여 사로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염려 사이에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자책한 밤이다. 그러나 어찌 잠을 잤는데, 이제는 누우면 그냥 잔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저녁 10시만 되면 잠자리 준비하고 누우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밑에 있을 때, 저녁 10시면 한참 떠들 때다.
무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무에 그리 논의할 일들이 많은지,
그리 안하고 살아도 잘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이곳으로 와서 저녁 8시 이후부터 아침 8시까지 거의 말없이 지내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이 생각 저 생각 하기도 하고, FM 음악 방송을 듣기도 하고, 요즈음은 주로 기도한다.
말 없이 차분하게 앉아 어둠이 짙은 숲을 바라보며 지내는 묘미가 더해지는 나날이다.
심심하거나 무료하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안든다.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것도 없다. 내 생각에도 이런 체질 아닌데 하며 고개 갸우뚱할 뿐이다.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깊이 느끼고 깨닫는 체험을
하고 있다. 번잡하고 소란스런 곳을 떠나 보는 것이 우리네 삶에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지를 생체험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람 많이 만나고, 많이 떠들며 사는 사람일수록
그만큼 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머물러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향'을 풍기는 삶이 아니라, '독'을 내뿜고 살 수도 있다.
내 안에 기쁨이 넘칠 때 기쁨이 베어 나온다. 내 안에 평화가 가득할 때 그 기운을
내어 놓을 수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답답하고 속상한 사람이 맑은 기운 내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소리 한다면, '이 생활 너무 좋다.'...
특별히 나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진정으로 나를 생각해 준다면,
'나를 여기 이곳에 그대로 있게끔 하기를' 청한다. 언제, 어디서, 이런 시기를 맛볼 것인가?
이 숲은 참으로 은혜의 도가니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양태윤 목사님과 총무 윤길수 목사님이 실로 먼 길 오셨다.
무어라 감사를 드릴지 모르겠다. '성심성의껏 주어진 몫'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 여긴다.
총회장님의 기도에 새 힘을 얻는다. 기도가 쌓이면 하늘이 감동할 것을 믿는다.
인천노회 박승태 목사님, 류재성 목사님, 김영섭 목사님, 이진권 목사님께서 감사드린다.
김일회 신부님과 김정대 신부님이 집례하는 계양산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미사'가
솔밭 뜰에서 있었다. 권창식, 젬마, 김종운 대표 등 가톨릭환경연대 식구들과 장기동 성당에서
오신 성도님들, 수녀님들이 함께 했다.
나무 위에서 내려 보는 정경이 그리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인천참여자치연대 김민서와 이상권 교수님, 이종일이 소나무숲의 낮과 밤을 이어지켰다.
김상근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어떡하냐!고 염려하신다. 안산 배동교회 이병훈 목사의
목소리도 반가웠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특별히 지원활동하는 인천지역 여러 동지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다.
그리고 롯데건설과 계양구, 인천시에 간곡히 당부한다.
'이제라도 멈추시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첫댓글 참으로 오랫만에 성호 긋고, 기도도 하고 미사에 참여했네요..그리고 젬마가 3월4일 결혼한대요...
23일(금)자 편지입니다.
토요일날 주셔서 토요일 편지인줄 알았네요.ㅋㅋ 그래서 바로 수정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