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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英陽) 일월산(日月山 1,218m)을 가다.
글 쓴 이 都 寅 高 枓 永
2월22일, 기축년(己丑年) 들어 첫 산행이다.
오늘은 시산제(始山祭)를 겸한 산행이라, 여느 때 보다 준비물이 많다. 홍총무(부회장 겸임)와 이태만 부총무(부회장 겸임)님의 수고 가 특별 하시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흐릿한데... 날씨는 새초롬히 차다. 차에 오르니 처음 오신분도 많으시고 두달 여 만에 뵙는 님들이라 반갑기 그지없다.(43명)
군위 휴게소에서 간단한 조반(朝飯)을 드시고는 줄곧 내달으니... 어느새 안동 임하댐 아래 조정지댐의 물이 넘실~ 넘실~ 해빙(解氷)의 조짐이 완연(完然)하다. 동해안 일대에는 가물음으로 식수가 모자라 난리인데... 안동은 축복받은 곳이로다!
우측으로는 반변천의 물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왼편 내앞마을(川前里)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하며, 그 옆으로는 새로 조성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잘 가꾸어진 정원과 조화롭게 다가 온다.
내앞 마을은 삼남의 사대길지(四大吉地) 중의 하나인 의성김씨(義城金氏) 대종가(大宗家)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오래 전에 답사의 기억을 떠 올리며...
의성김씨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석(錫)을 시조로 모시며, 그 가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져 본관이 의성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의성김씨 대종가는 김만근의 손자인 '청계 김진(靑溪 金璡 1500~1580)'을 불천위(不遷位)로 모시는 종가이며, 그는 자손들의 가르침에 열정이 남달라 다섯 아들 모두가 과거에 급제하여, 세간에서 이르기를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고 불리워 졌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넷째 아들인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을 비롯하여 의성김씨 가운데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24명, 생원이나 진사에 나간 사람이 64명에 이른다고 하니, 명문대가(名門大家)라는 이름이 과연 허명(虛名)이 아님을 알겠슴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사념(思念)은 끝없이 이어 지는데... 어느새 영양군 입암면(立岩面)에 이른다.
잠시 쉬어 가자며 입암 휴게소에 들려 주위를 둘러 보니, 저만큼 반변천과 동천이 만나는 합수(合水) 지점에 선바위가 우뚝하고, 맞은편 벼랑끝에는 8각정(八角亭)이 날아갈 듯 사뿐하다.
넓은 광장에는 ‘영양 고추축제행사’를 치를 주 무대가 보이고, 그 옆으로 수석전시관, 울 안으로는 논밭을 가는 쟁기와 일소가 전시돼 있으며, 앞쪽으로는 고추밭을 메는 아낙의 모습도 보인다.
정형화 됀 도시 공간에서 해방된 듯... 회원님들은 저마다 기지개를 켜며 전시된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으시다.
날씨는 흐리나 기분은 상쾌하며... 입춘 우수를 지났건만 나목(裸木)들에 봄 소식을 전하기는 아직도 이르다.
영양 읍내에 이르니 구윤서 회원님이 고향 친구와 친지들에게 연락하여 바카스 4통을 선물로 주셨고, 또 시산제 제물을 일월산 정상까지 차로 운반해 주시겠다고 도움 주셔서 회원님들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황망히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귀가시에는 또 그의 옛 친구분께서 맥주 2박스를 선물로 주셨으니... 고향의 따뜻함을 다 함께 느꼈으며,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31번 국도를 따라 다시 30여 분을 더 달려 나아 가니 깊은 山中 임을 알겠고, 동화재로 넘어가는 길은 구~불 구~불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출발 기점인 용화계곡(龍華溪谷) 입구에 이르니, 인적은 드물고 산천은 황량하다. 넓은 주차장 공터에서 간단한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고 일렬로 걸어 오른다.
선두는 최대장(최연식)이, 중간에는 선배님(정국진 부대장)이, 후미에는 필자와 최형달 부대장이 맡아 진행 한다.
계곡 입구에는 무속인들의 기도처 인가? 기이한 돌탑들이 즐비하고, 엊그제 내린 눈으로 하얀 면사포를 걸친 듯... 신비로움을 더 해 주신다.
지난 겨울 산행은 안전을 기 한다는 이유로 11월에 밀양의 천태산과 송년 산행으로 양산의 토곡산을 등산 한지라 눈 구경을 할 수 없었는데... 오늘에사 쌓인 눈을 밟으며 오르니 겨울 산행 멋을 늦게나마 보는 셈이다.
큰 산 깊은 골짜기라! 얼어 붙은 계곡은 해빙(解氷)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얼음 위로 살짝 덮여 있는 백설(白雪)은 걷기에 더욱 조심 스럽다.
얼마를 올랐을까? 선두와 중간 후미에서 무전(워키토키) 연락이 쉽지 않다. 수일전에 밧데리를 갈고 수리 했다 던데... 통신이 서로 원만 하지 못하다. 달리 방도가 없어 선두와 후미간에 간격을 좁히고 육성으로 연락한다.
등산로 옆으로는 여러 곳에서 광산을 캤던 굴이 보인다. 지금은 폐광이 되어 시커멓고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오염된 폐수만 쏟아 내고 있다. 당국의 안전 조치가 절실히 요망됩니다 그려!
정상에서 시산제(始山祭)를 모신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열심히 오르시니, 여유로운 낭만을 즐길 시간도 없는 것인가? 오늘도 디카맨 황부회장님과 정국진님이 번갈아 사진촬영에 분주 하시다.
저만큼 눈 쌓인 얼음 위에서 윤영숙 회원님이 포즈를 취하신다. 생활에 바쁘시다드니... 모처럼 만에 동참 하셨도다!
8부 능선쯤 올랐을까? 조덕현 회원님의 부인께서 어지럼을 호소 하며 주저 앉는다. 더는 못 걷겠다 하시면서... 갈길은 먼데...
간단히 응급처치를 해 드리며 편히 쉬게 하시니... 한참후에 다시 기운을 차리신다. 오르다가 쉬고, 쉬다가 오르면서...
30여 분을 올랐을까? 정상에서 시산제를 모셔야 하는데, 어디쯤 오느냐고 전화(핸드폰)가 빗발친다. 이놈의 휴대폰이 없으면 되려 편안 할 텐데... 문명의 이기가 우리들을 꼼짝 없이 옭아 매는 구나!
후미는 최형달 회원님에게 맡기고, 바쁜 걸음으로 정상을 향하니 숨이 다 차다. 기다리는 님들에게도 미안하고, 힘겹게 오르는 후미의 회원님들에게도 송구하다!
일월산(日月山) 정상 비석 앞에 준비된 제물을 진설하고 제(祭)를 올립니다. 남산의 모든님들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고, 시방세계(十方世界) 산행의 무사(無事)를 기원 기원 하옵니다.
모든 회원님들이 참배가 끝나고 골 고루 제물을 나누어 드시니... 흩날리던 눈발도 멎고 일기도 고요 합니다.
백두(白頭)의 정기가 일월산에 모여 있으니
만물의 보금 자리요 생명의 원천이로다!
해와 달의 정기(精氣)를 한몸에 지녔으니
오고 간 인걸(人傑)도 셀 수 없어라!
하늘의 日月이 영양(英陽) 땅에 오셨으니
우주의 광명이 일월산에서 찬란 하도다!
점심후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산으로 싸여 천지가 아득하고,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이 겹겹으로 흘러 흘러 운무에 휩 싸여 시계(視界)가 멀지 않음이 아쉽구나!
이 곳 일월산(日月山.1218m)은 낙동정맥상의 칠보산 기점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린 덕산지맥의 첫 기점에 자리 하고 있으며, 영양군 일대에서는 가장 먼저 동해 일출을 볼 수 있는 山 이라 하여 일월산(日月山)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日자봉, 月자봉이 나란히 있어 일월(日月)의 정기(精氣)가 함께 하고 있는 山이라 기도처로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山川의 정기 또한 빼어나서 오고 간 인걸(人傑)들도 수 없이 많으시니...
일월면 주실(注谷) 마을에는 한양 조씨 집성촌으로서, 조선 인조때 사화를 피해 들어 와 정착하게 된 입향 시조 조전의 둘째 아들 조정형이 지은 주실마을 대종가 호은종택(壺隱宗宅:경북기념물 제78호)이 있다.
그의 후손으로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선생이 출생하여 박목월, 박두진과 더불어 ‘청록파’ 시인으로 활약 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역사 앞에서] 등이 있고, [지조론(志操論)], [한국문화사서설] 등의 저술도 남겼다.
1947년 부터는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적 활동도 활발 하였으며, 잠시 그의 대표작 “승무(僧舞)” 시(詩)를 옮겨 봅니다.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나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이하 생략 ~
이 외에도 반변천의 지류인 하원천가의 옛 집인 사월종택(沙月宗宅:경북유형문화재 제52호)이 있고, 입암면 연당리에는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1577~1650)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조성한 서석지(瑞石池)가 있어, 조선시대 민가 정원으로서는 백미(白眉)라고 불리워 진다.
또한 군 (郡)내에는 불교유적도 많아서 입암면 산해리에는 '봉감모전오층석탑(국보187호)'이 있고, 읍내 현1동에 십이지삼층석탑(보물609호), 현2동에 모전5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12호)이 있어 끝이 없다.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하산길로 접어 든다. 갈림길에서 일부(17명)는 개념도와는 달리 오리마을 방향으로 내려 가고, 나머지 회원님들은 월자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20여 분을 걸었을까? 우측 정상에는 공군부대가 주둔하여 북에 미사일 발사를 감시하고 있다는 정보를 누군가 가 전해 주신다.
그렇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북이 분단된 국가가 아닌가! 참으로 부끄럽고도 통탄 할 일이로다! 우리는 언제 쯤 하나되어 평화를 누릴것 인가? 하늘이시여! 한민족(韓民族)을 돌보소서!
군부대 아래 넓은 주차장에 이르러니... 왼쪽으로는 월자봉이 단아 하고도 수려하다. 그 아래 황씨부인당(黃氏婦人堂)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어 일월(日月)의 정기를 함초롬히 받고 있도다!
3~40여 분을 걸어 나려 천화사(天化寺)에 이르니, 깊은 협곡에 지은 절집이라 가람이 단촐하다.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전부다.
간단한 참배를 마치고 한시간 여를 걸어 당리 마을에 이르니, 시계는 16시 30분을 조금 지나 있다.
들리는 뉴~스 에 대구와 안동에는 종일토록 비와 눈이 내렸지만, 이 곳 일월산 주위로는 날씨가 좋아 즐거운 산행이 되었으니... 시산제를 잘 모신 덕분인가?
등산로를 잘못들어 오리 마을로 4명이 하산하고, 나머지(13명)는 하산 中 이라는 연락을 받으면서... 금민자 회원님이 찬조하신 수정과 한잔으로 목을 축이니... 기다리는 시간도 오늘따라 즐겁도다!
일월산(日月山)의 정기는 크고도 밝아서
어둔 맘 밝혀주고 작은가슴 열어 주시네!
곤륜산이 높다 하나 日月山에 비히리요!
해동(海東)의 명산이요 영양의 요람 이로다!
단기 4342년(서기2009) 2월22일
영양(英陽) 일월산(日月山.1218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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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를 때 힘이 들어도 생생한 산행 후기가 다시 산으로 이끌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황 까페지기님 고맙슴니다.언제나 추억의 사진들을 까페에 올려 주셔서... 더욱 좋은 산행이 되도록 많이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