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밝혀야만 할 분위기란걸 앨범 보다가 문득 쏴르르... 느꼈습니다.
하여 컴퓨터에 있는 사진들을 좀 긁어보겠습니다. 전 아직 어린 애송이 입니다.
게다가 축복 받은 유전자라... 주름살도 안 생기는 특수 동안을 지니고 있어서 종종 민증을 보여야만 합니다.
사실은 제가 키가 작습니다만, 반대로 옆남자는 엄청 꺽다리지요, 발꿈치 안 들어도 선 채로 아파트 천장을 만지는 키라죠.
커다란 옛 사진들은 근자에 디카로 접사를 해 본 것들이라, 조금은 촛점이 뿌옇긴 합니다.
↑ 1974년도 이맘 때, 첫 돌 기념샷.
아버지는 15개월 위의 언니 아영을 안고 계시고,
엄마는 돌쟁이 당사자인 하얀 옷의 저, 진영을 안고 계신다죠.
엄마가 한 미모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부친은 70대 중반, 모친은 10살 아래셔서 60대 중반이십니다.
↑ 한국 나이 3살, 그러니까 75년이고 만 두 살.
세째 이모네 언니 오빠와, 남색 누비 월남 치마인 친 언니와.
저 맛있던 과자는 빨간 봉다리의 '딱다구리' 과자라는.
↑ 윗 사진과 엇 비슷한 시기고,
좌측은 큰 이모님, 우측은 둘째 이모네 작은 언니.
아마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온 친척이 모이던 때라고 압니다.
자궁경부암으로 예순 넷에 가셨고, 제 아버지께서 마지막을 지켜드려서 다 여기로 모이셨다는.
↑ 요거, 한 75년 아님, 76년인거 같습니다.
네째 이모네 염리동 집 앞은 기찻길이 있어서
옥수수 하모니카 노래를 사촌 언니들이 가르쳐 줬더랬죠.
그림자가 참 귀여워서 맘에 드는 사진입니다.
주로 저의 빠숀은 사촌 언니들과 친언니들 대물림이죠.
↑ 1979년 3월 초, 유치원 첫 날 첫 그림 그리던 날.
↑ 그 해. 어디론가 가서 땅콩밭, 고구마밭을 가 본 날.
제일 오른 쪽의 주황색 치마의 갈래머리 소녀입니다.
신기한건 이 친구들 이름이 전부 기억난다는.
저 때는 몹시 마른 어린이였죠, 뺨만 때때로 통통해지고 대체로 마른 아이.
↑ 이것도 저 고구마밭 갔던 날의 사진 중에서 발췌한 사진입니다.
뺨은 피곤하면 홀쪽해지고, 겨울이건 집에 있음 아래처럼 급 통통해집니다.
↑ 요거는 79년 12월, 모래내 50번 버스 종점께 럭키 사진관에
아버지랑 둘이서 국민학교 입학 사진 찍으러 갔었던 날입니다.
옷 색깔도 다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걸음이 빠르셔서 숨 차서 헉헉 거렸더니
귀엽게 이마 땀은 씻겨주셨는데, 목도리를 바짝 둘러주시곤
그건 갑갑하게도 안 풀어주셔서 울먹이며 찍은 샷입니다.
볼이 통통해지면 국민학교 저학년은 주로 볼만 저랬다는.
↑ 요건 1980년 국민학교 1학년생.
학교 댕기기가 힘좀 든답시고 바짝 말라버리고 새카맣게 탔다는.
사진은 한국 나이 3살부터 13살까지 살던 윗 사진들 그 집.
↑ 같은 80년, 1학년 본인과 3학년인 언니.
옷은 75년 사진 속의 그 사촌 언니가 다 물려준 원피스들.
강서구 인공 폭포는 사진에 안 나오는 경향이 있다는.
좌측 본인, 우측 연년생 언니마마.
↑ 이듬해인 1981년, 국민학교 2학년 여름방학인 7월.
위는 2000년도 핸드스캐너 본, 아래는 근자 디카 접사 원본.
세째 이모네가 놀러오던 날 밤, 부모님과.
입고 있는 흰 잠옷과 뒤의 커텐은 엄마의 미싱 작품.
자러 가기 전에... 어쩌다가 아버지께 잡혀서 간지럼 공격 받은 직후에
이모부께서 찍으신걸로 추정되는 사진.
언니는 화장실을 갔거나 이미 방에서 뒹굴대며 잘 준비 하던 중일듯.
↑ 81년 8월, 엄마의 사촌 남동생... 즉 본인의 외당숙부님 댁에서.
좌측 언니, 우측 본인. 각각 4학년과 2학년 어린이.
↑ 1982년 5월 말.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소재, 가좌동 성당 성모의 밤.
모든 행사가 끝난 직후, 꽃 드레스 5학년인 언니와,
분홍 원피스의 볼이 통실하게 살 쪘던 3학년인 본인의 연출샷.
성모의 밤이 끝나면 누구나 다 성당 마당의 루르드 성모님 앞에서
기념샷을 신나게 찍고 가는 것이 그 성당 관행임.
↑ 1982년 그해 7월말, 예로니모 수녀님과, 첫 영성체 받던 날.
좌측 교리 경시대회 보라색 메달까지 걸고 있는 3학년이 본인,
우측은 5학년인 언니마마. 분홍 메달은 첫영성체 기념 메달.
여자 아이는 하얀 공주님 드레스를 자유로이 사서 입고 오라했슴.
성체성사 전날, 본인의 왼쪽 눈등(화면상 우측 수녀님쪽 눈등)
거기에 하필 뭔가 모기같은 놈이 쏴버려서 눈을 줄여뜬 좋지 않던 기억.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엔 말짱하게 사라진 독충 자국이 웬수였다는.
↑ 이미 하모니카를 섭렵하고 있던 1983년 6학년과 4학년.
노란 원피스가 언니, 모자가 본인.
동네에 살던 아주머니가 자매를 불러 세우셔서
둘이 참 이쁘다시며 찍어주신 기념 사진.
↑ 1983년 4학년때는 이미 언니의 그 드레스를 물려 받았슴.
어린이 성모의 밤 행사에 학년 대표로 엘리사벳 친구와.
옆 남학생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느라 활을 쥐고 있다는.
우측의 그림같이 이쁜 로사리아 선생님은
알고 보니 엄마와 친하시고 엄마가 '형님'이라시던
베로니카 아줌마네 세 딸 중 가장 이쁘다고 소문난 둘째딸이었다는.
↑ 1984년 2월, 4학년 후미이자 6학년인 언니의 졸업식날.
언니를 찾으러 가기 전에 아버지께서 조퇴하시고 오셔서 모녀를 찍어주신 샷.
언니를 찾으러 합주부 교실로 가던 중이었슴.
언니는 마침 담임 선생님이 학교 합주부를 만드신 바람에
거기서 리코오더로 아주 날리던, 리코오더 신동 수준이었슴.
그 후 이 영향으로 인해, 본인이 6학년이 됐을 때 합주부에 들어갔으나
할 줄 아는게 하모니카밖에 없자, 우겨서 하모니카 파트를 만들게 됨.
원래 연년생은 질투하며 자라는지라... 허헛.
↑ 1984년 봄쯤, 5학년 3월 중에 소년 기자로 뽑힌 직후.
우측의 언니님은 이미 여중1학년, 사진만 찍으면 저 때부터 표정 씀.
엄마와 더 붙어있고 사내 아이같기도 한 노란 덧신이 본인.
↑ 1985년 6월 29일. 그 학교 역사상 첫 학교 야영 실시한 운 좋은 학년.
달랑 두 장 있다는 하모니카 연주 사진의 하나가 이 6학년 1학기 사진임.
반 대표로 장기자랑 파트에 나가서 전교생 앞에서 로렐라이를 연주하던 중.
사용하던 이 때의 영창밴드 C 트레몰로는 지금 원형만 유지한 채로
전체가 대체로 리드들이 나갔어도 간직하고 있다는.
본인 인생의 첫 하모니카로서의 의미 때문이랄 수 있슴.
이 때의 기억을 간직한 동창들에겐 아직도 '우주인'으로 불리우는 중.
전교생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아이는 혼자였던걸로 기억함.
첫댓글 추억의 사진 잘 보았습니다. 유복한 시절을 보내셨군요^.^
예, 부모님 두 분 모두 자신의 형제들 중에선
가장 자수성가하신 분들이셔서 저희 자매는 복을 받은거죠.
딸만 둘이 있으니, 참 자상하게 아버지께서 챙겨주셨습니다.
학자셨는데 대학이 싫으시다고 고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지요.
교편 잡으시면서 교과서를쓰신 바람에, 참고서 인세로 인해
다른 선생님들 집 보다도 과외따위 안 하시는 분 치곤
참 넉넉하게 다 누려본듯도 합니다.
그래서 언니가 피아노를 잘 치는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니
나중에 하모니카들을 여러 종류로 사 주시기도 하셨더랬죠.
늘 감사스럴 뿐입니다.
귀여운 천사입니다~ 평화로운 자매님 이구요~ 항상 행복 하시구~ 늘 가까히 오세요~ 반갑습니다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