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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37회
하늘재-모래산-탄항산-평천재-주흘산삼거리-
부봉삼거리-부봉-동암문-모봉-북암문-마패봉-
조령3관문-연풍새재 옛길-연풍레포츠공원
20230618
1-1.산행의 고통과 지명 알아보기
백두대간 하늘재-탄항산-마패봉-조령3관문 구간을 산행하기 위해 하늘재 아래 경북 문경시 문경읍 하늘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다녀와 산행을 준비하여 하늘재 주차장에서 하늘재로 올라갔다. 일행들은 꼬리도 보이지 않고 벌써 산 속으로 들어갔고, 남쪽 지역에서 온 산악회원들이 포암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날은 맑다. 바람은 잔잔하다. 하늘재에 온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가장 최근은 2020년 9월 20일 포암산 구간을 산행했을 때이다. 그때 하늘재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전 2020년 6월 7일 이 구간을 북진 방향으로 산행하여 하늘재로 내려왔었다. 오늘은 하늘재에서 남진하여 조령3관문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고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연풍레포츠공원으로 하산한다.
하늘재는 지릅재, 계립령이라 이르는 곳으로 신라가 북진할 때 가장 먼저 개척한 고개라고 한다. 하늘재를 넘어가면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지가 있는 곳이다. 일행 모두가 떠나간 뒤 혼자가 되어 하늘재에서 탄항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번 산행의 어려운 곳은 세 군데가 있다. 하늘재에서 탄항산까지 2km 오르기가 세 번째로 어렵고, 평천재에서 주흘산 삼거리에 오르는 게 두 번째로 힘겹고, 북암문에서 마패봉 오르는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 밖의 산길은 대체로 쉽다.
탄항산과 월항삼봉 그리고 평천재에 대하여 알아본다. 하늘재로부터 서쪽으로 충주와 문경 사이를 가르는 백두대간 능선에 뾰족한 봉우리 세 개를 월항삼봉(月項三峰) 또는 산삼이 많이 난다고 하여 월항삼봉(月項蔘峰)으로도 불리는데, 그 세 산봉의 상봉이 해발 856m 탄항산(炭項山)이다.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경계에 있는 탄항산을 월항삼봉(月項蔘峰)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탄항산 남쪽 아래에 문경읍 평천리(平川里) 월항(月項)마을이 위치하고 있어서, 탄항산 서쪽 아래의 고개를 平川재, 평천재 동쪽의 탄항산을 월항삼봉이라고도 이르는 것 같다.
1-2.풍경과 산줄기 조망이 빛나는 곳
1.모래산에서 삼각점이 두 개 설치된 삼각점을 지나 철계단을 오른 곳에서 북쪽 방향의 전망이 활짝 열려 있다. 월악산 영봉과 만수봉, 포암산, 대미산 등의 산봉을 확인하는 조망, 동쪽 아래로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평천리를 내려볼 수 있다.
2.하늘재 1.5km 지점의 이정목을 통과하여 탄항산 정상 직전의 고사목 한 그루가 멋지게 솟아 있는 바위전망대가 동남쪽, 특히 주흘산 최고의 조망지이다. 주흘산 능선 조망이 탁 트여 있으며 주흘산 관봉과 주흘산 주봉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3.부봉삼거리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멋진 입석이 서있는데 그 입석 직전의 전망지에서 조령산 산줄기와 부봉을 조망하는 게 아름답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조령산이 하얀 화강암을 드러낸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그리고 바로 눈앞에 부봉(釜峰) 중 1봉과 2봉을 조망할 수 있다.
4.부봉은 백두대간에서 비껴나 있지만 부봉에 오르지 않으면 산행의 진수를 놓치는 꼴이다. 부봉(釜峰)에서의 북동쪽 조망이 단연 압권이다. 북쪽으로 확 트인 월악산 하봉, 중봉, 영봉과 만수봉 산줄기와 하늘재 위 포암산은 장쾌하다. 포암산 아래 하늘재에서 출발하여 걸어온 백두대간 능선, 주흘산 능선의 주흘산 주봉과 관봉 등을 거칠 것이 없이 조망하여 속이 뻥 뚫린다.
5.마패봉 삼거리를 올라 마패봉 정상 직전의 전망바위, 이곳에서는 서북쪽 충주 지역의 조망이 활짝 열려 있어서 월악산 조망지로서 으뜸이다.월악산 하봉, 중봉, 영봉, 마애봉, 만수봉, 용마산과 북바위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강암 바위봉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6.마패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번에 산행한 전체 산줄기를 총결산하는 최고의 전망지이다. 포암산 아래 하늘재에서 시작하여 마패봉까지 이어지는 산줄기 조망은 이번 산행을 총정리해 준다. 다음으로 부봉 능선 전체를 조망하는 즐거움, 그 다음으로 조령산에서 마패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를 조망하는 건 가슴이 벅차며 숨이 멎는 것 같다. 마패봉은 신선지맥 분기점으로 서쪽 신선봉으로 이어지고 백두대간은 남쪽 조령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남쪽의 이만봉과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어림하는 마패봉은 이번 산행 최고의 전망지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지 않는 산행은 헛똑똑이의 산행일 것이다.
1-3.꼬리진달래꽃과 흰숙은노루오줌꽃
하늘재에서 탄항산까지는 계속해서 고도를 높인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른다. 오르막 능선은 칠판 같은 바위가 있는 곳에서 평탄해진다. 호흡을 고르며 탄항산으로 향하는데 하얀 꽃이 눈길을 끈다. 꼬리진달래꽃이었다. 오래간만에 예쁜 꼬리진달래꽃을 만나 흥분했다. 한 곳에서만이 아니라 능선 여기저기에서 꽃망울을 가득 달고서 꼬리진달래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마음이 감동하니 몸도 감동하여 고통은 모두 사라졌다. 몽실몽실한 꽃잎들이 동그란 모양을 이루고 꽃술을 내밀고 있다. 길쭉하게 내민 수술 머리의 갈색 꽃밥이 아름답다. 이 수술 모양이 꼬리처럼 보여서 꼬리진달래라는 이름을 얻은 것 같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꽃말은 ‘절제,’ 신념’이라고 한다.
탄항산에서 평천재로 내려가는 산비탈에 흰숙은노루오줌 꽃들이 피어 있다. 흰-숙은-노루오줌, 분홍빛 노루오줌 꽃이 고개를 숙여서 숙은노루오줌, 꽃이 흰색이어서 흰숙은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노루오줌은 노루가 다닐 만한 산에 사는데,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줌 냄새를 내는 이유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흰숙은노루오줌은 일반적으로 숙은노루오줌이라고 통용되며, 흰꽃이 피면서 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다. 힘겹게 탄항산에 올라와서 숨을 고른 뒤 평천재로 내려가는 비탈길에서 흰숙은노루오줌 꽃들을 만나 마음이 그냥 가벼워진다.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것에 행복하다. 삶은 너와 나의 무한한 소통의 길이다. 그 소통 속에 너와 나는 소중한 존재, 생명체로서 상대적 존귀함을 지니게 된다. 흰노루오줌 꽃이여, 안녕! 그대는 내 소중한 존재로서의 생명체이다.
1.4.산행의 보람
마패봉 정상에서 이번 산행의 풍경 조망을 마무리하고 위태로운 암릉지대를 통과하여 문경새재 조령3관으로 내려간다. 제한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속도를 낸다. 드디어 문경새재 조령3관에 도착하였다. 문경새재 세 개의 관문은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다. 조령 제3관문 연풍 쪽 문루 현판은 조령관, 문경 쪽 문루 현판은 영남제3관,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제1관문 주흘관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적을 막기 위한 것, 그래서 주흘관과 영남제1관 현판의 위치가 조령관과 다르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이 천혜의 요새를 왜 이용하지 못하고 탄금대로 퇴각했을까? 문경 새재에서는 늘 이 의문이 떠오른다.
조령3관문에서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마쳤다. 올해 4월 2일 이화령에서 조령산과 신선암봉을 거쳐 조령3관까자 봄바람을 타고 산행을 마쳤다. 그날은 문경새재 옛길을 따라 조령2관문, 1관문을 통과하여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조곡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푸른 초록 물결을 타고 산행을 마쳤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조령3관문을 통과하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연풍레포츠공원으로 내려간다.
연풍새재 옛길을 따라가며 길가에 조성된 설치물들을 살폈다. '새재를 노래한 시' 漢詩 게시판에 임억령(1496~1568)의 漢詩가 원시와 함께 번역되어 있다. "功名眞墮甑(공명진타증) 공명이란 깨진 떡시루 같고/ 聚散一浮雲(취산일부운) 모였다 흩어지는 뜬구름 같은 것/ 獨向空山裏(독향공산리) 홀로 텅 빈 산 속을 향해 가니/ 蒼蒼落日曉(창창락일훈) 푸르고 푸른 숲 사이로 가만히 노을이 지네." 공명(功名)이란 깨진 떡시루나 뜬구름과 같은 것, 삶이란 홀로 산길을 걷고 푸른 숲을 노닐며 살다가 인생의 노을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이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삶의 보람이 무엇인가? 왜 산행을 하고 뿌듯해 하는가? 그것이 삶의 보람이고 행복일까? 이것이 나의 소확행(小確幸)이라고 위로한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2.91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32분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하늘재 주차장에서 포암산을 올려본다.
높이는 962m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주능선상에 있으며 월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속한다. 옛날에는 이 산을 베바우산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듯한 암벽이 키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다.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인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산세가 험하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산 밑 고개인 하늘재는 신라시대부터 사용한 옛고개로 북방의 문화를 영남지방에 전해주던 관문이었고 지금도 성벽이 남아 있다.(두산백과)
안내도의 글을 옮겨 적는다.
하늘재 옛길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25m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하였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이전에는 계립령(鷄立嶺),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 불렀으나 요즘에는 거의 모든 지도에 하늘재라 표기하고 있다. 오래된 세월만큼 길 양쪽에는 전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하늘재 왼쪽에 산신각이 있다. 하늘재에는 하늘재 표석과 계립령 유허비(鷄立嶺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계립령 유허비(鷄立嶺遺墟碑) 비문을 옮겨 놓는다.
청아(淸雅)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 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太初)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風霜)과 애환(哀歡)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鷄立嶺)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재, 대원령(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년) 4월에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곳부터는 남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 지방을 교두보로 한강 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온달 장군과 연개소문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하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御馬)가 남쪽으로 몽진(蒙塵)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高麗時代) 불교의 성지(聖地)인 충북과 문경 지방에 이르는 계립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전란(戰亂)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과 사지(寺址)만 전한다. 조선조(朝鮮朝) 태종 14년(1414년)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지세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자 계립령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지난 역사의 향취(香臭)를 전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운다.
2001년 1월 문경시장
하늘재에서 백두대간 동북쪽 능선은 포암산 방향, 서남쪽 능선은 탄항산 방향이다. 직진하면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방향이다.
탄항산 방향으로 남진한다. 탄항산 2km 지점이다.
하늘재에서는 계속 고도를 높여야 하기에 초반 산행이 힘들다.
모래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산비탈이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늘재 0.6km, 부봉삼거리 4.0km 지점이다.
모래산 앞에서 월항삼봉(月項三峰)이라고도 불리는 탄항산((炭項山) 산줄기를 올려보았다.
삼각점이 두 개나 설치되어 있다.
탄항산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길이며 군데군데 계단이 설치되어 예전 산행보다 쉬운 것처럼 느껴졌다.
철계단을 올라서 북쪽을 조망하였다. 거쳐온 산봉이 바로 앞에 있으며, 그 뒤에 포암산, 그 왼쪽 뒤가 만수봉, 맨 왼쪽 뒤는 월악산 영봉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거쳐온 바로 앞 암봉 뒤에 포암산, 오른쪽 뒤가 대미산일 것이라 짐작한다. 앞쪽 아래에 보이는 곳은 문경읍 관음리이다.
중앙 왼쪽 뒤가 대미산 왼쪽 계곡 아래는 문경읍 관음리, 오른쪽 계곡 아래는 문경읍 평천리일 것이다.
조망을 마치고 철계단 2개를 통과해 올라와 돌아서면 넙적한 칠판에 글씨가 적힌 것 같은 글씨바위가 있다.
글씨바위를 돌아 능선에 올라서서 글씨 칠판바위를 뒤돌아보았다.
해발 804m, 하늘재 1.5km, 부봉삼거리 3.1km 지점이다.
아름다운 꼬리진달래 꽃을 모처럼 만났다.
저곳에서 주흘산 능선 조망이 탁 트여 있으며 바위의 고사목 한 그루가 멋지다.
올 때마다 죽어 천 년의 이 고사목 풍경에 감탄한다. 뒤쪽에 주흘산 관봉과 그 오른쪽에 주봉이 보인다.
주흘산 주봉과 왼쪽 뒤에 주흘산 관봉이 보인다.
주흘산(主屹山) 높이는 1,108.4m이다. 소백산맥의 주봉으로서 북동쪽의 소백산(1,440m)ㆍ문수봉(文繡峰, 1,162m), 남쪽의 속리산(1,058m)ㆍ황학산(黃鶴山, 1,111m)과 함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를 이룬다. 고려 때 공민왕이 이 산에 피난했다하여 임금님이 머문 산이란 뜻으로 주흘산이라 칭하였다. 주봉은 돔(dome)상으로 옹립하고 있어 기복이 심하며, 이 돔 상의 산정을 정점으로 방사상으로 지릉이 발달하고 있다. 주흘산은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를 이루었던 산이며, 북동쪽사면은 급사면이나 서쪽사면은 이보다 완만하다. 산록에는 846년(문성왕 8)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한 혜국사(惠國寺)가 있다. 또 서쪽 상초리에는 주흘산사(主屹山祠)가 있어 나라에서 봄ㆍ가을로 향(香)과 축(祝)을 내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영남과 기호ㆍ서울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조선시대의 애사가 깃든 유서깊은 곳이다. 서쪽의 조령산(鳥嶺山, 1,017m)과의 사이에 조령 제1ㆍ2ㆍ3관문(사적, 1966년 지정)을 끼고 있고, 조령일대는 1981년 6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하늘재 1.9km, 부봉삼거리 2.9km 지점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에 있는 산으로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포암산(962m)과 마주하고 있다. 높이 857m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 능선에는 넓은 암반들이 겹쳐 있고 오래된 소나무 숲이 들어서 있다. 정상에는 2002년도에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으며 그 아래로 평천리 마을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정상에서 하늘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조선시대 통신수단이었던 탄항봉수대의 터가 남아있다. 탄항산은 오르는 길이 단조롭고 짧아 이곳만을 찾는 이는 드물지만 인근의 포암산, 부봉과 연결하여 산행하는 이들이 중간 쉼터로 종종 이용하는 곳이다. 탄항산만을 산행하기 위해서는 하늘재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수월하며, 평천리에서 평천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가 있다.(두산백과)
해발 831m, 하늘재 2.7km, 부봉삼거리 1.9km 지점이다.
일반적으로 숙은노루오줌꽃으로 통합되어 불리고 있다.
해발 758m, 하늘재 3km, 부봉삼거리 1.6km 지점이다. 평천재에서 주흘산삼거리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오르기가 힘겹다.
이 철계단과 또 하나의 고무계단을 힘겹게 올라 주흘산삼거리에 이른다.
하늘재 3.6km, 부봉삼거리 1km 지점이다.
부봉삼거리로 가는 도중 조망 좋은 곳에서 부봉(釜峰)을 올려본다. 오른쪽이 1봉, 왼쪽이 2봉이다.
높이는 935m이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모두 6개봉으로 이루어졌고 제2봉이 제일 높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으로, 하늘재에서 조령(鳥嶺)까지 이어진 주능선에서 가지를 뻗은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主屹山, 1,106m)과 이어져 있다. 조령산(1,017m)에서 동쪽으로 보이며, 주흘산의 북서쪽에 바위벽으로 솟아 있다. 이화령에서 하초리로 흐르는 조령천이 산 옆으로 지나간다. 6개 암봉이 한 줄로 이어져 있어 험준한 암릉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옛날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제3관문을 비롯하여 제1, 2관문이 자리잡고 있다. 일대는 물박달나무·자란초·미치광이풀·냉초 등 희귀 동식물이 많아 지방기념물(地方記念物)로 지정되었고, 문경시는 1987년부터 10만 그루 이상의 묘목을 심어 박달나무 군락지로서의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다.(두산백과)
중앙에 조령산, 그 맨 오른쪽에 하얀 화강암을 드러낸 신선암봉이 살짝 보인다.
조령산(鳥嶺山)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높이 1,017m 산이다. 소백산맥 줄기에 있는 산으로, 산맥의 시발점인 태백산부터 소백산·문수봉·월악산을 지나 조령산에 이르는 구간은 고봉이 연속되나 조령산을 지나면서 산들이 차차 낮아져 속리산에 이른다. 조령은 높이 642m로서 조령산의 안부(鞍部)이며 산정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있다. 옛날에는 서울에서 영남지방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며 ‘문경새재’ 또는 ‘새재’라고 불리었다. 또 산 남쪽의 낮은 능선에는 이화령(梨花嶺)이 있는데, 현재 국도가 통과하여 문경과 연결되고 있다. 산릉은 남북으로 뻗고 있으며, 동쪽 산곡에는 조령천을 따라 영남로의 옛길에 조령 제1·2·3관문이 있으며, 험준하고 수려한 산세를 나타내고 있다. 산에는 1708년(숙종 34)에 길이 6척, 너비 4척, 두께 2척 되는 돌로 둘레 18,509보의 산성을 쌓았는데 현재 200m 가량 남아 있다. 수안보온천·월악산국립공원과 근접하고, 조령관문을 비롯한 많은 사적지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봉삼거리 가는 도중에 입석이 멋지게 서 있다.
부봉은 백두대간 산줄기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 꼬리진달래가 꽃망울들을 맺고 있다.
해발 848m, 하늘재 4.6km, 마패봉 4km 지점이다. 이곳에서 0.5km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올라 부봉에 다녀온다.
부봉 정상의 이 무덤은 명물이다. 수많은 산객들이 참배하러 오지 않는가.
왼쪽에 월악산 영봉, 중앙에 만수봉, 오른쪽에 포암산, 맨 오른쪽 뒤는 대미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왼쪽에 포암산, 그 오른쪽 뒤는 대미산일 것이라 짐작한다. 포암산 아래 하늘재에서 출발하여 걸어온 능선이 중앙에 있다.
오른쪽 뒤에 주흘산 관봉, 그 앞 왼쪽에 듬직한 주흘산 주봉, 왼쪽 앞 뾰족한 산봉이 주흘산 삼거리봉이다.
부봉 제1봉에 다녀온 시간이 15분 정도 걸렸다. 동암문 0.4km 방향으로 진행한다.
동암문 내려가는 계단에서 마패봉을 바라보았다. 마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드럽다가 마지막에 무척 가파르다.
마패봉(馬牌峰)이라고도 부르는 마역봉(馬驛峰) 높이는 940m이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충청북도 쪽으로는 신선봉과 맞닿아 있다. 조령 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명칭의 유래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 조령 제3관문에서 쉬었을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놓았다고 하여 이 지방에서는 마패봉이라 부른다.(두산백과)
왼쪽은 동화원 내려가는 길이다.
동화원 1.3km 지점이다.
해발 737m, 마패봉 3.1km 지점이다.
트랭글에서 모봉이라는 표시가 나오는데 이곳이 모봉인지는 불분명하다.
월악 04-08 해발 754m, 마패봉 2.1km 지점이다.
제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숨차게 걸어왔다. 이곳에서 10분 동안 휴식을 취하며 요기를 하고 재출발한다.
해발 734m, 마패봉 1.1km 지점이다.
헐어진 성곽을 따라 북암문으로 내려간다.
동화원 1.3km, 백두대간은 위쪽 마패봉으로 0.7km를 올라야 한다.
해발 785m, 마패봉 0.6km 지점이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른다.
마패봉 오르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철계단을 오른다.
철계단 중간 지점에서 부봉 제1봉에서 6봉까지 6개 봉우리를 조망한다.
또 다시 철계단이 나와 철계단을 오른다. 바로 위 이정목이 있는곳은 사문리 탐방지원센터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2.2km 지점에 충주시 수안보면 寺門里 사문리탐방지원센터가 있다. 100m 거리에 마패봉 정상이 있다.
북쪽 충주 지역으로 전망이 좋다.
오른쪽 맨 뒤에 월악산 하봉, 중봉, 영봉, 중앙에 용마산, 바로 앞 왼쪽에 북바위산일 것이라 짐작한다.
월악산 하봉, 중봉, 영봉, 그 오른쪽에 마애봉, 맨 오른쪽에 만수봉을 어림한다. 왼쪽 앞은 용마산일 것이다.
마패봉은 하늘재 8.6km, 조령3관문 0.9km 지점이다.
맨 왼쪽에 포암산, 맨 오른쪽에 주흘산 관봉, 그 앞 왼쪽에 주흘산 주봉, 하늘재로부터 걸어온 능선이 분명히 확인된다.
중앙에 주흘산 주봉과 그 오른쪽 뒤 주흘산 관봉, 주봉 앞쪽에 부봉 능선의 6개 산봉의 끝봉 제6봉, 부봉 제1봉에서 왼쪽 능선으로 걸어온 백두대간 능선이 분명히 확인된다.
중앙 왼쪽에 솟은 조령산에서 그 앞 오른쪽 신선암봉, 그 왼쪽으로 위태로운 암릉을 거쳐거 백두대간 능선이 앞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 앞에 솟은 산봉은 깃대봉으로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일대가 펼쳐져 있다. 오른쪽 맨 뒤의 산봉이 이만봉인 것 같다.
마패봉은 신선지맥 분기점으로 오른쪽 신선봉으로 이어지고, 이 아래 지역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일대이다.
정상에서 내려가며 다시 조령산 산줄기를 조망한다. 중앙 뒤 조령산에서 그 오른쪽 앞 신선암봉을 거쳐 조령3관문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멋지다.
아주 위태롭지는 않다. 북진할 때 올라갈 때는 어려웠는데 내려오는 것은 쉬웠다.
선돌에 산객들이 정성을 들여서 돌을 올려놓았다.
꽃터널길이 조성되어 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은 꽃터널을 통과하여 바로 왼쪽으로 꺾는다.
조령관을 지키던 군사들의 대기소인 군막터에서 오른쪽 조령3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마패봉 0.9km, 조령산 6.1km 지점, 조령3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뒤쪽에 부봉 제6봉이 보인다.
길손들이 문경새재길을 올라 조령3관문 방향으로 오르고 있다. 뒤에는 부봉 능선의 끝산봉 제6봉이 우뚝하다.
조령3관문 남쪽 방향의 현판은 영남제3관문이라고 적혀 있다. 관문을 통과하여 충북 괴산 연풍새재 옛길로 나간다.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마치고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레포츠공원으로 하산한다.
조령3관문 천정에 용틀임하는 용이그려져 있다. 관문을 통과하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로 하산한다.
관문을 통과하여 충북 괴산군 방향에서 조령3관문을 바라보면 조령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문경관문' 설명안내판과 '문경새재 과거길' 표석 앞에서 조령3관문을 뒤돌아 보았다. '문경관문' 설명안내판을 옮겨 적는다.
문경관문(聞慶關門) 사적 제147호,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은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선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 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을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 오는 가토 기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예상했지만 신립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이름한다.
'백두대간 조령' 표석 기단에 새겨진 '조령의 유래' 내용을 옮겨 적는다.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를 넘는 이 고개는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어원은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사이)재 혹은 새(新)로 된 고개라서 새(新)재라고도 한다. 조령은 조선시대에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 영남대로(嶺南大路)라 불렸으며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연풍새재비 비문을 옮겨 적는다.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마역봉 사이를 넘는 새재는 고려사지리지에 초점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새재의 유래는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섀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고개, 하늘재인 옛 계립령은 대신하여 새로 만든 길,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에 있다고 하여 새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연풍새재는 조선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도로인 영남대로(한양-부산 350km)의 중요한 분수령이자 군사적 요충지이며 한강과 낙동강 수계를 연결하면서 문물교류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왕래할 때에도 주로 연풍새재를 경유하였다. 새재와 접한 마역봉에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놓고 쉬어갔다는 전설이 남아있 으며 고사리 마을 입구에 있는 소나무는 어사송이라 불리고 있다. 고개 아래 기슭에는 역원과 마방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주막문화가 발달하기도 하였다. 3관문인 조령관에서 소조령까지를 연풍새재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 이화령이 신작로로 확장되면서 중요도로의 기능이 상실되어 옛 모습을 잃었다. 2013년 충청북도에서 연풍새재길을 흙길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17. 9. 충청북도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마패 한 쌍 등의 모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암행어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인장을 이르던 마패(馬牌) 모형물 한 쌍이 전시되어 있다.
'시화연풍' 길 이야기碑, '청풍명월' 고개 이야기碑, 과거(科擧) 길 선비像 등이 연풍조령정 입구에 세워져 있다.
1.시화연풍(時和年豊) 길 이야기 -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걷는다. 그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갈무리된다. 더 넓은 대륙으로, 더 푸른 해양으로 향하던 문명과 소통의 길, 세상의 중심으로 나서는 연풍새재길을 그대와 함께 걷고 싶다.
2.청풍명월(淸風明月) 고개 이야기 - 주춤주춤 일어서는 산과 이마를 맞된 곳에서 우리는 고개와 만나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은 연풍새재를 넘는 인연들의 유일한 벗이다. 단양 죽령, 영동 추풍령과 함께 한반도 문화의 중심을 품에 안고서 드넓은 산천으로 내달리게 한 충북 제일의 고개가 바로 연풍새재이다.
3.과거길 - 옛부터 영남에서는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갔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쪽의 추풍령과 북쪽의 죽령 그리고 가운데 새재가 있는데 영남의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선비들의 금기가 있어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급제를 위하여 넘던 과거길이다.
연풍새재 옛길을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 쉼터정자들이 세워져 있고, 입구 양쪽에 새재를 노래한 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임억령(1496~1568), 「석천집」
功名眞墮甑(공명진타증) 공명이란 깨진 떡시루 같고/ 聚散一浮雲(취산일부운) 모였다 흩어지는 뜬구름 같은 것
獨向空山裏(독향공산리) 홀로 텅 빈 산 속을 향해 가니/ 蒼蒼落日曉(창창락일훈) 푸르고 푸른 숲 사이로 가만히 노을이 지네
※ 임억령 : 조선 중기의 무신. 동부승지, 병조참지, 강원도관찰사, 담양부사를 지냈다.
연풍새재 옛길을 내려가는데 길 양 옆에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내려가서 살펴 보니 옛길의 의미와 풍경 감상 게시판이다.
옛길의 의미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4측면에서 느끼며 연풍새재를 올라보기를 바라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1.경제 : 살림의 길 - 옛길을 통해 삶에 필요한 물산들이 전국으로 퍼져 나갑니다. 모험심 가득한 보부상의 걸음으로 고갯길을 올라 보세요. 2.정치 : 다스림의 길 - 옛길을 통해 중앙의 다스림이 지방으로 펼쳐져 나갑니다. 관찰사와 암행어사의 걸음으로 고갯길을 올라보세요. 3.사회 : 정의 길 - 옛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 사이 끈끈한 정이 흐릅니다. 옛 선인들의 푸짐한 인심을 느끼면서 고갯길을 올라보세요. 4.문화 : 멋의 길 - 옛길을 통해 문학과 멋, 흥이 흐릅니다. 시 한 수의 여유와 예술적 정취를 느끼며 완만한 고갯길을 올라보세요.
엣길의 사계절 풍경을 제시하고 그 풍경을 감상하기를 부탁하는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1.春 : 꽃길 - 옛길의 봄은 따뜻한 햇살과 더불어 진달래와 철쭉을 감상할 수 있는 꽃길이 펼쳐집니다. 보리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상상하며 걸어 보세요. 2.夏 : 물길 - 옛길의 여름은 푸른 풍경 속 물길이 펼쳐집니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박꽃을 즐겨 보세요. 밭농사에 여념이 없던 마을 사람들도 나무 그늘 아래 같이 앉아 땀을 닦았습니다. 3.秋 : 단풍길 - 옛길의 가을 단풍은 어디를 바라보아도 장관입니다. 가을걷이에 한창인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화려한 색채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 보세요. 4.冬 : 눈길 - 옛길의 눈길에는 온 세상에 하얀 눈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눈 속에 평온하게 파묻혀 있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에 몸을 녹여 보세요.
중앙의 백두대간 산줄기가 조령3관문으로 이어져 마패봉으로 올라간다. 오른쪽 깃대봉은 백두대간에서 비켜나 있다.
이화여대 총장과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故 김옥길 여사가 삶의 마지막 10년을 살다 세상과 하직한 곳이다. 대문 왼쪽 기둥에는 '이화학당(梨花學堂)', 오른쪽 기둥에는 '금란서원(金蘭書院)' 명패가 붙어 있다.
접시꽃이 피어있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마을에서 마패봉(오른쪽 뒤)과 신선봉(중앙)을 올려보았다.
버스정류소 아래에 '어사또가 쉬어간 자리' 표석과 '연풍옛길 서낭나무'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어사또가 쉬어간 자리' 표석과 '연풍옛길 서낭나무'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뒤의 서낭나무를 '어사송(御史松)'이라 이른다.
소원을 들어주는 연풍옛길 서낭나무 : 고사리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서낭나무는 호랑이가 자주 내려와 쉬던 영험한 나무입니다. 치유의 마을로 유명한 이곳 고사리마을 서낭나무에서 건강을 기원하면 무병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장수를 책임지던 서낭나무에서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해 보세요.
이 소나무가 고사리마을 서낭나무이며 '어사송(御史松)'이라 불린다.
이화여자대학교 고사리수련관 운동장에서 마패봉과 신선봉 능선을 다시 올려보았다.
신선봉 높이는 967m이다. 바위산으로 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5㎞ 지점에 우뚝 솟아 있다. 주위의 월악산·주흘산·조령산 같은 유명한 산들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예로부터 산 북쪽과 남쪽에 두 줄기 길이 있었는데, 북쪽 길은 신라가 북진정책을 위해 백두대간에 처음으로 뚫은 하늘재(지릅재)이고, 남쪽 길은 조선시대에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문경새재이다. 산세가 아름다운 높은 산으로, 산행 기점이 해발 450m 지점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등반할 수 있다. 산행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조령산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기점으로 안부(鞍部)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마역봉(일명 마패봉, 940m)·폭포 위를 지나고 치마바위를 거쳐 휴양림 매표소로 내려오는 코스가 경치가 좋고 길이 편한 탓에 흔히 이용된다.(두산백과)
산악회 임시본부가 있는 연풍레포츠공원에 제한 시각 안에 도착하였다.
연풍새재 옛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연풍새재 옛길은 조선시대 한양(서울)에서 동래(부산)를 최단거리로 이어준 '조선의 경부고속도로'인 영남대로의 중요한 분수령이었습니다. 연풍옛길은 조선 태종 14년(1414년도)에 새로 난 고갯길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풍옛길에서는 민족의 역사와 삶의 발자취,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청북도의 문화적 저력과 괴산군의 수려하고 청정한 자연을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연풍레포츠공원에서 마패봉과 신선봉 능선을 다시 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