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추홀의 유래.
인천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 태종 13년(1413)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인천을 미추홀(彌鄒忽)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지리지』에 "매소홀(買召忽)현을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있는데, 매소홀은 고구려시대의 인천의 이름이다. 고려사지리지』에 "인주(仁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이며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미추홀의 "미"나 매소홀의 "매"는 물(水)의 뜻이며 "홀"은 성(城)이나 골로 해석되고 "추"나 "소"는 모두 사잇소리 "ㅅ"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매소홀이라 불리던 인천이 후기 신라의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소성현(邵城縣)으로 바뀌었다.
경덕왕이 신라의 제도나 관직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편, 토박이 말로 되어 있는 땅이름을 모두 그 뜻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고려 숙종(1095∼1105)에 이르러 소성현은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 승격되었는데 이는 인천이 숙종의 어머니 인예(仁睿) 순덕태후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인종(1122∼1146)때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仁州李氏)의 고향이 됨으로 "인주(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말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인천은 경원부로 개칭, 승격되었는데, 이는 인천이 7대 어향(七代御鄕)이었기 때문이다. 7대어향이란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동안 인천이 왕의 외향이거나 왕비의 고향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초기 태조원년(1392)에 인주로 환원되고 태종 13년(1413)에 이르러 모든 군이나 현에 '州'자로 바꾸는 바람에 인주가 물에 가깝다하여 '인천'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천의 명칭은 한자풀이식의 '어진내(仁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인주이씨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